술은 숙성기간이 길어질수록 술맛이 더 좋아진다고 흔히 말한다.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알코올 분자를 포함한 다양한 성분들이 안정화되고 분자 수준에서 잘 섞이기 때문이다. 특히 숙성과정에서 알코올 분자들이 휘발성 분자를 잡고 있어, 안 좋은 향을 덜 느끼게 해준다. 숙성주를 마신 뒤 ‘목 넘김이 편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이유다. 최근 등장하는 증류식 소주는 대체로 숙성을 거친다. 감압식 증류를 한 경우에도 숙성을 거친 제품이 늘고 있다. 감압식은 증류기 안의 기압을 평상기압 보다 낮춰 증류하는 것으로 평상 기압의 조건에서 증류한 상압
증류식 소주의 생산량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출고액 기준으로 646억원, 그런데 2022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1,412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도 증류 소주는 성장세를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량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해서 증류식 소주 붐이 일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회 현상이 갑작스레 유행하거나 번성하는 일”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판매 증가도 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만,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증류식 소주의 통계수치는 아직 유의미할 만큼
전통주를 포함한 우리 술은 취급하는 유통 매장이 많지 않아 소비자들이 쉽게 구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에서 일부 전통주와 지역특산주를 판매하고 있지만, 갓 문을 연 양조장으로서 마트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신생양조장들은 SNS 같은 ‘입소문 마케팅’과 각종 축제와 행사장을 찾아다니면서 ‘경험 공유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그런데 경험의 공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소문만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하는 술이 만들어졌다. 3년 전 인천에 둥지를 튼 양조장 ‘탁브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0월 탁브루의
증류주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광풍처럼 불고 있는 위스키 붐이 이를 확인시켜준다. 물론 젊은 층의 하이볼 수요가 합쳐진 결과지만, 어찌 됐든 최근 술 트렌드는 향을 즐기는 증류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 같은 추세는 증류소의 증가와 증류기를 도입하는 양조장의 움직임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런 움직임은 하나의 ‘운동’처럼 번져가고 있다. 마치 크래프트맥주 시장의 성장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북미지역 양조장들이 선택한 ‘크래프트 증류소’ 붐의 한국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
인천을 대표하는 전통주 양조장 ‘송도향전통주조(대표 강학모, 이하 송도향)’는 인천 남동공단에 자리하고 있다. 도심 양조장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다. 아파트형 공장의 8층을 찾았다. 한 층의 높이가 족히 4m는 넘어 보였다. 처음부터 농촌에 자리한 양조장의 경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도시 양조장들이 가질 수 없는 경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면서 든 생각은 경관이 수려한 지방의 일부 양조장에 절대 밀리지 않는 최적화된 양조장이라는 점이었다. 8층 양조장의 공간은 복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아래는 발효와 숙성의
제사와 손님맞이는 술 빚는 데서 시작한다. ‘봉제사접빈객’의 중심이 술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종가들도 그렇다. 그 덕분에 안동 음식문화의 결정체를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 술을 세상과 연결하는데 발 벗고 나선 이가 있다. 안동에서 ‘올소안동소주’를 만들던 신형서 대표다. 지난해 양조장의 이름도 아예 ‘안동디스틸러리’로 바꾸었다. 종가의 술을 생산하는 대표 증류소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술, 특히 종가의 술이 사라졌다. 하지만 70~80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고 술이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낙동강이 모래톱을 감싸 안으며 밖으로 휘돌아 흐르는 모습을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가져온 안동 하회(河回)마을에서 가양주 방식으로 빚은 우리 술이 지난해 출시되었다. 술 이름은 ‘옥연(玉淵)’이다. 풀어쓰면 ‘옥빛 연못’이라는 뜻이다. 하회마을을 가본 사람이라면 어디에 연못이 있느냐며 말을 건넬 수도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의 모래톱은 갈대밭을 끌어안으며 흐르는 강물이 수백 년 동안 만들어낸 퇴적물이라는 것을 고려하고 봐야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하회마을은 강물 주변 저지대에 여러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하회마을 최고의
맥주는 맥아(몰트)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양조장은 보리를 발아한 맥아보다 우리가 매일같이 먹고 있는 ‘쌀’을 더 넣어 맥주를 만든다. 그리고 그 맥주로 해마다 상을 받고 있다. 1인당 쌀소비량에 붉은색 경고등이 들어온 지 한참인지라 농정당국 입장에선 반가운 양조장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에잇피플브루어리(대표 조준휘, 이하 에잇피플). 양조장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양조장의 주주는 여덟 명이다. 모두 음식을 좋아해서 만나게 되었고, 음식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술로 연결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조준휘
사전에 약속도 없이 다른 이의 집을 찾는 것은 무척이나 큰 결례다. ‘안동의 술’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이 글을 통해 필자의 예의 없음을 고백하는 까닭은 자상하고 살뜰히 챙겨 준 종손과 종부의 얼굴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여든 네댓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으로 집안을 찾는 손님들을 일일이 살피는 그분들의 섬세함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생경한 풍경이 자아낸 감정일 것이다. 종택은 한 집안의 장손이 중심이 되어 지켜나가는 가족의 생활 터전이자 문화공간이다. 제사와
치열하다. 대개의 양조장이 온 힘을 기울여 술을 빚고 있지만, 이곳의 치열함은 한겨울 영하의 추위도 무색하게 만들고있다. 1톤짜리 상압증류기에선 연신 증류를 마친 본류가 흘러나오고, 양조자는 이를 10ℓ짜리 병에 소분해서 군대 열병식에 참석한 군인처럼 줄 세워 놓는다. 각각의 병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경기도 파주에 둥지를 튼 미음넷증류소(대표 송충성, 이하 미음넷)를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한참 증류기가 돌고있다. 증류기 앞에선 성민창 이사가 소분한 병들을 정리하고 있다. 증류 원액을 소분하는 까닭을 물으니 “본류 중에서 어
알코올 도수 4.5%의 맥주만 생각하는 사람에게 증류주에서나 볼 수 있는 30%가 넘는 맥주 이야기는 믿기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맥주가 실재한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양조장 ‘크래머리(대표 이원기·이지공)’에선 알코올 도수 17%와 25%, 그리고 31.5%의 맥주 3종류가 셰리 오크통에서 1년 넘게 숙성 중이다. 그렇다면 발효주인 맥주가 어떻게 증류주의 도수까지 낼 수 있는 것일까. 방법은 ‘동결증류’다. 물과 알코올의 어는 온도가 다른 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쉽게 말해 맥주를 얼려서 얼음을 제거하는 형태로 만들면 얼지
미국에서 만들어 이름을 알렸고, 술맛이 궁금한 얼리어답터 덕분에 국내에 널리 알려져 결국 2020년에는 한국에 양조장을 차리고 국내산 쌀로 소주를 만들어 젊은 소비자에게 호평받으며 성장하는 소주가 있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레이블부터 젊은 감성을 자극한 ‘토끼소주’가 그 주인공이다. 새로운 변화를 도모하는 토끼소주의 지난 4년을 취재하기 위해 더글라스 박 대표를 지난 연말 만났다. 더글라스 박은 양조를 책임지는 브랜 힐이 뉴욕에서 소주를 만들었던 2016년 8월부터 팀에 합류해 2018년 9월 대표가 되어 충주 양조장을 추진하고, 이
그동안의 맥주양조장은 평균의 입맛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양조장은 맥덕(맥주덕후), 그것도 산미를 즐기는 매니아에 시선을 고정하고 맥주를 만들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생산에 들어갔으니, 양조장(태평브루잉)의 이력은 짧기 그지없다. 하지만 맥주를 생산하는 시설이나 양조 레시피와 양조인의 자세는 내공이 차고 넘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안동에서 6년 동안 브루어리를 운영하던 양준석 대표가 자신이 원하는 맥주를 생산하기 위해 문경에 새롭게 차린 양조장이기 때문이다.양조장의 위치는 경상북도 문경에서 상주로 넘어가기 직전 뭉우리고개에서
“남들은 안된다며 쳐다보지도 않을 때, 저는 그 고정관념을 깨는 술을 빚었습니다.” 오미자로 와인을 만들고, 그 술을 증류해서 최고급 브랜디를 만들면서 한국술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의 말이다.양조 전문가들도 안된다고 말한 오미자로 와인을 만들어 새로운 술의 장르를 개척한 이종기 대표는 우리나라 고급술과 관련해 최고의 생산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OB시그램과 디아지오코리아 등을 거치면서 ‘마스터블랜더’라는 칭호를 얻었을 만큼 20세기 후반 한국 양조사의 한축을 담당해왔다. 1980년 OB에서 시작한 양조 인생은
맛있는 술을 만나고 싶으면 충청남도 공주에 있는 ‘석장리미더리(대표 이재천)’를 찾아가면 된다.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석기시대 유물이 많이 출토된 그 ‘석장리’가 맞다.양조장을 찾아가다 보면 이정표마다 석기시대 상징물을 알리는 표지판이 사방에 깔려 있다.그런데, 양조장을 찾는 길에서 드는 생각 하나는 석장리와 벌꿀술을 만든 양조장인 ‘미더리’가 잘 어울린다는 사실이다.벌꿀은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분을 모두 갖춘 완전식품이다. 이를 석기시대를 살았던 인류도 잘 알고 있었는지, 침에 쏘일 각오를 하고 벌집을 터는(?) 암각화가 세계 곳곳
전남 광양은 매실의 고장이다. 3월이면 여지없이 봄을 알리는 상춘의 매화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한 해에 대략 7000톤(ton) 안팎의 매실을 수확한다. 전국 생산량의 23% 정도가 이곳에서 나오니 대표적인 매실 산지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이곳에서 1년에 한 달 정도만 매실로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이 있다. 백운주가(대표 최창석)다. 이때 만든 막걸리는 거의 전부 매화축제 기간에 판매된다. 축제 기간 열흘 동안 대략 15만병 정도가 판매된다고 하니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축제장에서 소비되는 것은 물론 선물용으로 사는 사람들이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2월에 이슬을 맞고 처음 돋아난 방풍 싹으로 끓인 방풍죽은 사흘이 지나도 단맛과 향이 가득하다.”조선 최고의 미식가였던 허균이 자신의 책 《도문대작》에 쓴 첫 문장이다. 그만큼 향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덕분에 봄을 담은 나물 중 지금까지도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나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특히 바닷가에서 자란 갯방풍을 사람들은 좋아한다.전국 방풍나물 생산의 80% 정도가 여수에 있는 금오도에서 나온다. 유명한 기도처인 여수 향일암에서 남쪽으로 내다보면 바로 앞에 있는 섬이다. 2016년 기준 1,579명
‘째보선창’은 전국에 두 군데 있다. 목포와 군산이다. 째보, 언청이의 놀림말이다. 장애인 비하 의미를 담고 있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다.그런 개념이 없을 때 붙여진 이름이라 별칭처럼 사용됐고 소설에도 인용됐던 것이다.군산의 째보선창은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1930년대 군산을 담아낸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는 다음처럼 째보선창이 소개되고 있다.“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옹긋중긋 떠받고 물이 안 보이게 선창가로 빡빡이 들이밀렸다. 칠산 바다에서 잡아
황진이에게 ‘청산녹수’는 나의 정과 님의 정을 연결하는 시의 대상이었다면, 김진만 대표에게 ‘청산녹수’는 미생물로 연결된 과학자와 양조인의 마음 둘 모두를 담았던 희망의 대상이었다. 전남대학교 미생물학과 교수로서 겸직이 가능한 벤처기업, ‘청산녹수’ 양조장을 만든 것은 지난 2009년. 지금으로부터 햇수로 15년 전의 일이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한 폐교(장성북초)를 인수해 우리 술을 빚는 양조장을 만들고, 다양한 스토리를 쌓아가면서 2017년에는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됐다.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스파클링 막걸리 등 다양한 술
지난 9월까지 맥주용 맥아 수입량은 지난해보다 30% 이상 늘어난 15.5만t에 이른다. 4분기까지 포함하면 20만t은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오늘 소개할 곳은 올해 30t, 그리고 내년에 100t의 맥아를 만들 예정이다. 비교하기에도 민망한 수치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손으로 만드는 맥주용 맥아 시장의 현실이다. ‘군산맥아’.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맥주용 보리를 가공하는 곳이다. 지난 2017년 30억원의 예산을 들여 만든 시설이다.목적은 군산 지역 보리재배 농가의 수입 증대다. 맥주용 두줄보리를 재배하는 농가들이 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