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에 봄이 왔다. 매화와 산수유가 첨병이 되어 봄을 안내하고 있다. 지자체에선 꽃축제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심지어 남도의 꽃축제는 끝났는데도 꽃은 여전했다. 3월이 다할 때까지는 찾는 사람들이 이어질 듯하다. 그 매화가 서울 필자의 집 앞에도 꽃이 핀 것을 보면 봄은 벌써 저만큼 앞서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남 광양 다압면에 있는 쫓비산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매화마을을 품 안에 안고 있다. 홍쌍리 여사의 매실농원을 중심으로 올해 23번째 축제가 진행됐다. 백매와 홍매, 그리고 청매와 흑매가 가지마다 구름처럼 꽃을
술은 숙성기간이 길어질수록 술맛이 더 좋아진다고 흔히 말한다. 숙성과정을 거치면서 알코올 분자를 포함한 다양한 성분들이 안정화되고 분자 수준에서 잘 섞이기 때문이다. 특히 숙성과정에서 알코올 분자들이 휘발성 분자를 잡고 있어, 안 좋은 향을 덜 느끼게 해준다. 숙성주를 마신 뒤 ‘목 넘김이 편하다’라는 말을 하게 되는 이유다. 최근 등장하는 증류식 소주는 대체로 숙성을 거친다. 감압식 증류를 한 경우에도 숙성을 거친 제품이 늘고 있다. 감압식은 증류기 안의 기압을 평상기압 보다 낮춰 증류하는 것으로 평상 기압의 조건에서 증류한 상압
극장을 찾는 관객이 하루에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지난 3월 1일에는 124만 명이 찾았단다. 영화 ‘파묘’와 ‘듄:파트2’의 인기몰이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학로 극장가도 젊은 관객으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지난해 공연 시장의 티켓 판매액이 2019년을 상회하는 5,600억 원이라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즉 공연예술계의 숫자를 보면 코로나 펜데믹은 확실히 벗어난 듯하다. 지난주 창작뮤지컬 한 편을 보기 위해 대학로 극장을 찾았다. 작품 제목은 ‘비아 에어 메일(Via Air Ma
증류식 소주의 생산량이 해마다 늘고 있다. 지난 2021년 출고액 기준으로 646억원, 그런데 2022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한 1,412억원을 기록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에도 증류 소주는 성장세를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생산량이 2배 이상 늘었다고 해서 증류식 소주 붐이 일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사회 현상이 갑작스레 유행하거나 번성하는 일”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판매 증가도 붐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만, ‘지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증류식 소주의 통계수치는 아직 유의미할 만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들은 이맘때가 되면 산불 예방을 이유로 입산 통제에 들어간다. 산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2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의 기간이다. 이렇게 큰 산들의 입산이 묶이면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봄을 느낄 수 있는 산을 찾아 나선다. 산수유와 매화가 봄을 재촉하는 이 계절엔 남쪽이 가장 먼저 붐빈다. 그리고 ‘100대 명산’식의 인증을 받는 산들이 인기를 끌게 된다. 여기에 보태 새롭게 인증 명단에 오른 산들도 덩달아 사람들 발길이 분주하게 닿는다. 회문산. 전라북도 임실과 순창에 걸쳐 있는 산이다. 최근 한 등산복 업
전통주를 포함한 우리 술은 취급하는 유통 매장이 많지 않아 소비자들이 쉽게 구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대형마트에서 일부 전통주와 지역특산주를 판매하고 있지만, 갓 문을 연 양조장으로서 마트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신생양조장들은 SNS 같은 ‘입소문 마케팅’과 각종 축제와 행사장을 찾아다니면서 ‘경험 공유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그런데 경험의 공유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입소문만으로 안정적인 매출을 기록하는 술이 만들어졌다. 3년 전 인천에 둥지를 튼 양조장 ‘탁브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10월 탁브루의
처음 박물관에서 ‘먹감나무’로 만든 전통 목가구를 봤을 때, 그 무늬에 많이 놀랐다. 어떻게 나무에 이런 무늬가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자연이 그려놓은 먹 무늬의 추상성이 무척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때는 먹감나무를 하나의 독립된 나무 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자료를 확인해보니, 먹감나무는 별도의 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감나무 중 수묵 무늬를 가진 나무를 따로 부르는 이름이었다. 마치 검은 먹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콩을 ‘선비잡이콩’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증류주를 즐기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광풍처럼 불고 있는 위스키 붐이 이를 확인시켜준다. 물론 젊은 층의 하이볼 수요가 합쳐진 결과지만, 어찌 됐든 최근 술 트렌드는 향을 즐기는 증류주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 같은 추세는 증류소의 증가와 증류기를 도입하는 양조장의 움직임에서도 포착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이런 움직임은 하나의 ‘운동’처럼 번져가고 있다. 마치 크래프트맥주 시장의 성장 둔화를 타개하기 위해 북미지역 양조장들이 선택한 ‘크래프트 증류소’ 붐의 한국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물론 현재의 흐름을 ‘
한반도의 남쪽 해안지역은 위도가 낮은데다 난류의 영향까지 받아 난대성 수목이 잘 자란다. 동백, 후박, 비자 등 잎이 두꺼운 나무들은 상록을 자랑하며 남쪽 해안지역의 숲을 풍성하게 만든다. 오늘 소개하는 나무도 상록의 난대성 식물로 남부 해안지역에서만 자란다. 잎의 모양이 손바닥을 펼친 것처럼 생겼는데, 여덟 개로 갈라져 있어 ‘팔손이나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서울 대학로에서 마주치는 마로니에 나무가 잎의 모양 덕분에 칠엽수라고 부르는 것처럼 팔손이도 잎의 모양에서 이름이 만들어졌다. 팔손이는 하나의 잎이 8개로 갈라져 있지만
인천을 대표하는 전통주 양조장 ‘송도향전통주조(대표 강학모, 이하 송도향)’는 인천 남동공단에 자리하고 있다. 도심 양조장이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다. 아파트형 공장의 8층을 찾았다. 한 층의 높이가 족히 4m는 넘어 보였다. 처음부터 농촌에 자리한 양조장의 경관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도시 양조장들이 가질 수 없는 경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취재를 마치면서 든 생각은 경관이 수려한 지방의 일부 양조장에 절대 밀리지 않는 최적화된 양조장이라는 점이었다. 8층 양조장의 공간은 복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아래는 발효와 숙성의
2월 들어 설악산이 무척 성이 났는지 좀처럼 속살을 보여주지 않는다.연이어 폭설이 내렸기 때문이다. 오색 약수에서 대청봉까지, 그리고 천불동을 거쳐 소공원으로 가는 길과 봉정암을 거쳐 백담사로 하산하는 길만 겨우 열렸다. 공룡능선이나 서북주능선은 아예 발을 디딜 수 없을 만큼 눈 속에 파묻혀 있다.설악은 모든 계절이 다 볼거리이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겨울 설악은 눈 내린 풍경이 장관이다. 산속에 들어와 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산밖에서 눈 덮인 산의 능선과 골짜기를 보고 있으면, 눈길 가는 곳 모두가 다 진경산수화가 된다. 설악
제사와 손님맞이는 술 빚는 데서 시작한다. ‘봉제사접빈객’의 중심이 술이기 때문이다. 안동의 종가들도 그렇다. 그 덕분에 안동 음식문화의 결정체를 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이 술을 세상과 연결하는데 발 벗고 나선 이가 있다. 안동에서 ‘올소안동소주’를 만들던 신형서 대표다. 지난해 양조장의 이름도 아예 ‘안동디스틸러리’로 바꾸었다. 종가의 술을 생산하는 대표 증류소가 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다.“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술, 특히 종가의 술이 사라졌다. 하지만 70~80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고 술이 사라졌던 것은 아니다.
설을 전후해서 매화의 꽃망울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남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다. 아직 찬 바람이 매섭게 부는 한겨울이지만, 이 소식은 곧 봄꽃들이 경쟁적으로 고개를 들고 힘찬 행진을 벌인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겨울이 추울수록 이 같은 소식은 귀에 더 잘 들려온다. 물론 겨울 동안 우리가 꽃을 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겨우내 남쪽 해안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동백꽃은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이 꽃으로 봄을 체감하지 못한다. 이름에서 상상력이 차단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진하는 봄꽃과 달리 남쪽에 발목을 잡혀
낙동강이 모래톱을 감싸 안으며 밖으로 휘돌아 흐르는 모습을 그대로 마을 이름으로 가져온 안동 하회(河回)마을에서 가양주 방식으로 빚은 우리 술이 지난해 출시되었다. 술 이름은 ‘옥연(玉淵)’이다. 풀어쓰면 ‘옥빛 연못’이라는 뜻이다. 하회마을을 가본 사람이라면 어디에 연못이 있느냐며 말을 건넬 수도 있다. 하지만 하회마을의 모래톱은 갈대밭을 끌어안으며 흐르는 강물이 수백 년 동안 만들어낸 퇴적물이라는 것을 고려하고 봐야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하회마을은 강물 주변 저지대에 여러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하회마을 최고의
산을 자주 가는 사람에게도 산을 오르는 과정은 매번 고된 일이다. 그래서 등산을 즐기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산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광을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쉽게 높이를 취할 수 있는 케이블카에 사람들은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높이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것은 높이를 권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게 되면 눈 아래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찮게 보이게 된다. 땅에서 바라보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빌딩들도 산에서 보면 작은 장난감처럼 보
맥주는 맥아(몰트)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그런데 이 양조장은 보리를 발아한 맥아보다 우리가 매일같이 먹고 있는 ‘쌀’을 더 넣어 맥주를 만든다. 그리고 그 맥주로 해마다 상을 받고 있다. 1인당 쌀소비량에 붉은색 경고등이 들어온 지 한참인지라 농정당국 입장에선 반가운 양조장이 아닐 수 없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에잇피플브루어리(대표 조준휘, 이하 에잇피플). 양조장 이름에서 느껴지듯 이 양조장의 주주는 여덟 명이다. 모두 음식을 좋아해서 만나게 되었고, 음식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레 술로 연결되었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이 조준휘
동해안을 따라 곧게 내려오던 산의 흐름이 소백산에서 방향을 틀면서 백두대간의 대열에서 빠지게 되었지만, 경북 봉화와 안동에 걸쳐 넓게 자리를 잡고 태백에서 시작한 낙동강을 품고 있어 명승지로 손꼽히는 산이 있다. ‘청량산’이다. 높이는 870m밖에 되지 않지만, 12개의 봉우리가 연꽃 모양으로 자리 잡아 경치는 물론 풍수적으로도 좋은 지형을 가진 곳이라는 평판을 받는 산이다.유·불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이 산과 인연을 맺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은 금강산과 지리산 다음으로 이 산을 찾은 뒤 ‘유산기’로 청량산을 찬미하기도 했다.
사전에 약속도 없이 다른 이의 집을 찾는 것은 무척이나 큰 결례다. ‘안동의 술’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무례를 범하고 말았다. 이 글을 통해 필자의 예의 없음을 고백하는 까닭은 자상하고 살뜰히 챙겨 준 종손과 종부의 얼굴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여든 네댓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으로 집안을 찾는 손님들을 일일이 살피는 그분들의 섬세함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생경한 풍경이 자아낸 감정일 것이다. 종택은 한 집안의 장손이 중심이 되어 지켜나가는 가족의 생활 터전이자 문화공간이다. 제사와
겨울이 돼도 낙엽을 떨구지 않는 나무들이 있다. 수분을 공급받지 못해 이파리는 만지면 바로 부서질 만큼 뒤틀리고 메말라 있지만, 모질게 부는 겨울 북서풍도 이겨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나무 여섯 형제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떡갈나무와 신갈나무는 특히 더 그렇다.잎은 식물의 핵심 생명 활동인 광합성을 하는 공장이다. 하지만 식물의 생육에 가장 큰 적인 추위가 올 기미가 느껴지면 나무는 바로 잎을 포기하기 시작한다. 떨켜 세포를 만들어 수분공급을 차단하고 광합성으로 만든 양분을 나무에 보내는 일도 서서히 멈춘다. 따뜻한 날씨를 기약
치열하다. 대개의 양조장이 온 힘을 기울여 술을 빚고 있지만, 이곳의 치열함은 한겨울 영하의 추위도 무색하게 만들고있다. 1톤짜리 상압증류기에선 연신 증류를 마친 본류가 흘러나오고, 양조자는 이를 10ℓ짜리 병에 소분해서 군대 열병식에 참석한 군인처럼 줄 세워 놓는다. 각각의 병에는 번호가 붙어 있다.경기도 파주에 둥지를 튼 미음넷증류소(대표 송충성, 이하 미음넷)를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한참 증류기가 돌고있다. 증류기 앞에선 성민창 이사가 소분한 병들을 정리하고 있다. 증류 원액을 소분하는 까닭을 물으니 “본류 중에서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