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채취 및 풍수지리 보완하려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 많아
따뜻한 남쪽에 주로 식생, 나무 재질도 좋아 바둑판 만들어

전남 해남의 녹우당 뒷산에는 바위의 기운을 막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림한 비자나무숲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는 뽀족하면서 서로 맞보고 있는 이파리가 20~40개 정도 나있다.
전남 해남의 녹우당 뒷산에는 바위의 기운을 막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림한 비자나무숲이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는 뽀족하면서 서로 맞보고 있는 이파리가 20~40개 정도 나있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이글거리는 태양에 초록은 지칠 틈도 없이 짙은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온산을 덮고 있는 녹색의 나무들이 근육질 몸매와  키 높이를 자랑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8월은 잎 넓은 나무들의 세상이다.

윤선도의 고향 해남의 산들도 온통 녹색의 갑옷을 차려입은 무사의 모습을 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산도 그렇지만 마을 입구에 장승처럼 서 있는 500년 된 은행나무도, 300년을 훌쩍 넘긴 늘 푸른 해송도 짙은 녹색으로 채워져 있다.

집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밤나무와 느티나무도 한창 제멋을 부리고 있다.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가 수원에서 해남으로 이사하면서 수원 집의 일부를 뜯어와 지은 사랑채의 당호다. 한자를 풀면 ‘초록비’라는 뜻이다. 굳이 수원집을 뜯어온 까닭은 그 집이 임금(효종)의 하사품이었기 때문이다.

녹우당에서 산으로 조금 오르면 울창한 숲속에서 유난히 짙은 녹색의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을 만나게 된다.

이 숲에 바람이 일면, 마치 빗소리처럼 ‘쏴아’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 윤선도는 사랑채의 이름을 ‘녹우당’으로 칭한 것이다.

이 비자나무 숲은 인공적인 조림이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심은 마을 숲인 셈이다. 보통의 경우 바람을 막거나 홍수를 방지하는 목적으로 마을 앞에 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비자나무들은 마을 뒤편 산속에 심겨 있다. 이유는 풍수적 목적을 갖고 조림을 했기 때문이다.

녹우당 뒤에 있는 덕음산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기운을 막을 목적으로 숲을 가꾸었다고 한다.

마을은 산의 기운을 받아야 하는데, 바위는 그 기운이 사람을 압도한다. 그런 까닭에 선비들은 직접 바위를 바라보는 것을 삼간다.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는 물론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도 사용했다. 장성 백양사, 고흥 금탑사, 장흥 보림사, 화순 개천사 등은 ‘비자 보시’를 위해 절에서 인공적으로 비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사진은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의 열매다.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는 물론 기름을 짜서 식용유로도 사용했다. 장성 백양사, 고흥 금탑사, 장흥 보림사, 화순 개천사 등은 ‘비자 보시’를 위해 절에서 인공적으로 비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사진은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의 열매다.

병산서원이 자리한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의 소나무도 북쪽 부용대 바위의 기운을 막기 위해 심어진 것이다.

녹우당 덕음산의 비자나무는 500살을 넘었다고 한다. 녹우당은 효종이 죽고(1660년), 윤선도가 낙향하면서 지었으므로, 비자나무는 고산의 선조들이 심은 나무인 셈이다.

윤선도는 이미 울창해진 비자나무숲을 보면서 ‘녹우’라는 당호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500년이 넘은 나무의 키는 20미터를 넘지 않는다.

더디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자나무숲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녹우당의 비자나무숲은 물론 장성 백양사의 비자림과 제주도 구좌읍의 비자림도 그렇다.

아기단풍으로 유명한 장성 백양사의 비자림(천연기념물 153호)은 백양사에서 백학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만날 수 있고, 700년이 넘은 갈참나무가 서 있는 백양사 들머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백양사 들머리의 비자나무숲은 그래서 백학봉을 오른 길이나 녹우당 덕음산의 비자나무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갈참나무의 위용을 감상하다 보면 아기 손처럼 작은 이파리가 나무 전체에 꽃처럼 매달려 있는 아기단풍 나무를 만나게 된다.

그 순간 고개를 돌려 산비탈을 쳐다보면 두어 걸음 위쪽으로 보통의 나무보다 줄기가 더 많이 달린 나무들이 보이고 그 줄기에서 뻗은 가지에 이파리가 산을 이룬 나무들을 보게 된다.

특히 백양사의 비자림은 이 수종의 북한한계선이기도 하다.

비자나무의 이파리는 짧고 뾰족한 모양으로 가지를 가운데 두고 좌우로 20~40개씩 마치 아까시나무 잎처럼 서로 마주 보며 붙어있다.

그 모양이 마치 한자 아닐 비(非)자처럼 보인다. 게다가 비자나무는 상자를 만들기 좋은 나무여서 나무 목(木)자와 상자 방(匚)자를 합쳐 비자나무 비(榧)가 되었다.

또 이 나무의 열매는 구충제로 쓰여서 마을에서 귀하게 여겼으며, 근육을 강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는 약효가 있다고 전해진다.

장성의 백양사는 물론 고흥 금탑사, 장흥 보림사, 화순 개천사 등의 비자림은 모두 약성을 취할 수 있도록 절에서 이웃 주민들에게 ‘비자 보시’를 위해 승려들이 일부러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비자나무의 목재는 질이 뛰어나고 뒤틀림이 적어 각종 가구재로도 사용한다고 한다. 이 나무의 주요한 쓰임새는 바둑판이다.

나무판은 흰색과 검은색의 바둑돌과 잘 어우러지고 향기까지 있어 고급 바둑판 재료로 취급된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