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연구원 정찬우 연구위원


신용위험 부담 경감과 수익성 보전 절실

도덕적 해이 기반한 역선택 문제 풀어야
 
 
경기획복이 지연되고 경기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서민층의 경제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그 결과 제도권 금융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하위 서민층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자영업자 중에서 신용도 기준 하위 20%에 해당하는 계층은 제도권 금융기관 이용이 불가능해 고금리 대부업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이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저신용계층이 제도권으로부터 금융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이들의 경제력은 더욱 악화되고 이는 거시경제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경제력이 취약한 서민층을 위한 새로운 서민금융체계 확립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민금융기관의 문제점
 
 
저축은행, 농수협 지역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등 제도권 서민금융기관은 외환 위기 이후 극심한 구조조정 과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업세가 회복되는 추세에 있으며 이에 따라 수익성 및 건전성도 개선되고 있으나 서민층에 대한 금융서비스 공급 능력은 취약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어 신협의 경우 대폭적인 구조조정과 공적자금 지원으로 수익성 및 자본적정성이 개선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으나 지역신협을 중심으로 아직까지 높은 부실률이 유지되고 있는 등 건전성은 여전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마을금고는 성장성, 수익성, 건전성 등이 전반적으로 개선되고 있으나 주 수익기반인 여신의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어 향후 자산운용의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지역수협과 산림조합은 외환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객기반이 다른 상호금융기관에 비해 협소한 상황이며 구조조정도 지연되고 있는 등 여러면에서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다.

서민금융기관의 기능이 취약해진 데에는 고객층의 신용위험이 상승한 것도 작용하고 있다.

즉 과거에는 은행 등 대형금융기관이 대기업 위주로 금융자원을 공급함으로써 소규모 기업 및 개인 등은 실제로 신용위험이 크지 않은 경우에도 금융공급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서민금융기관이 이들을 고객 기반으로 해 활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03년의 신용카드 사태에서 보듯이 은행 등 대형금융기관의 급속한 가계 및 중소기업 금융 확대에 따라 서민금융기관의 주 고객층 중 신용위험이 비교적 낮은 계층이 이탈하고 잔류고객들의 평균적인 신용위험이 상승하게 됐다.

이는 은행 등에 비해 신용위험관리 능력이 취약한 서민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들 서민금융기관은 대부분 여수신 중심의 단순한 수익구조와 제한된 고객기반(조합형 금융기관의 경우)으로 인해 은행 등 대형금융기관이 가계부문 영업확대로 인한 경쟁격화에 적절히 대응하기 힘들어 수익성은 낮고 그 결과 서민금융의 높은 신용위험을 감당할 여력이 고갈돼 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들의 수익성 증대를 위한 규제완화가 일부 진행중에 있으나 이로 인해 수익성이 개선되더라도 건전성 규제의 강화 추세로 인해 실질적으로 신용위험이 높은 서민금융의 확대로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하위 서민층, 즉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서민금융기관의 신용공급은 신용위험 추가 부담에 따른 건전성 훼손을 보완할 수 있는 적절한 장치가 강구되지 않는 한 급속한 확대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시장 완전성 측면의 문제점
 
 
모든 고객이 자신의 신용도에 맞는 금융서비스를 제공받는 경우를 금융시장이 완전하다고 정의한다면 저신용계층에 대한 금융서비스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완전성이 매우 낮음을 의미한다.

금융시장의 완전성이 낮은 것은 서민금융기관의 담보대출금리와 대부시장금리 사이에서 운용되는 대출상품의 부재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신용자영업자 가운데 대부시장을 이용하지 않아도 될 수준의 신용도를 지닌 계층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러나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은 신용평가능력 부족, 신용측정에 따른 높은 비용 등으로 이들에 대한 신용대출을 거의 취급하지 않고 은행보다는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동산 등을 대상으로 담보대출에 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외국계 대부업체 중심의 소액 신용대출은 대출금리가 상한(연 66%)선에서 운용되고 있어 일반적인 서민층이 이용하기에는 과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자생력이 있는 저신용계층을 고객으로 해 10~66% 사이의 금리로 운용되는 신용대출상품과 취급기관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 제도권 금융기관의 고객군별 계층화가 완전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부 지원제도의 문제점
 
 
정부 각 부처에 의한 서민층 지원제도에도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소상공인에 대해 사업자금을 융자해주는 자금지원제도는 중소기업청, 여성가족부, 노동부 등으로 주관기관이 분산돼 일관성 있는 정책의 수립 및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저금리라는 이점 이외에는 여성가장, 장기실업자, 장애인 등 자격요건이 엄격하고 상환기간 및 거치기간이 비교적 짧기 때문에 그 성과가 제한적이다.

주로 지역신용보증재단이 담당하는 보증지원의 경우 대출금융기관에 대해 15%의 신용위험을 부담하게 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억제하고 있으나 사업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영세 소상공인의 수혜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서울, 경기, 부산, 대구 등 4개 지역의 보증실적이 전체의 65%에 달하는 등 대도시 중심의 지역집중도가 매우 심해 여타 지역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정이다.
 
 
정책 시사점
 

서민금융의 대상이 되는 영세기업과 소상공인, 영세상인 및 빈민 등은 객관적으로 신용도를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정상적인 여신상환 능력을 갖췄다고 보기 힘든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금리의 문제 △자금조달의 문제 △건전성 규제의 문제 등 세가지 요인으로 인해 상업적 원리에 의한 금융지원 활성화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리 측면에서는 대손 가능성을 감안하면 고금리를 적용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이는 실질적으로 상환 능력을 저하시킴으로써 신용위험을 증폭시키고 결과적으로 상업적 원리에 의거한 금융공급을 더욱 위축시키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자금조달 측면의 경우 서민대출은 높은 신용위험으로 인해 유동화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금융기관이 자신의 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나 서민금융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금융기관 자체의 안전성이 하락해 수신 이외의 자금조달이 곤란하게 된다.

그리고 금융감독 측면에서 볼 때 단순히 서민금융이라는 이유만으로 건전성 규제를 완화시킬 경우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성을 저해할 수 있다.

시장원리에 의한 서민금융은 취급기관의 건전성이 취약해 실제로는 오히려 보다 강화된 모니터링이 필요하기 때문에 감독비용이 상승하게 되므로 금융기관의 공급확대 유인을 하락시킨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서민금융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부담해야 할 신용위험의 경감을 위한 특별한 장치를 마련하거나 만약 이것이 불가능할 경우 금리, 자금조달, 금융감독 측면에서 별도의 지원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원은 수요자 및 공급자 모두에게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되는 역선택의 문제를 가져올 개연성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서민금융에 대한 금리보조는 정상적으로 제도권 금융의 수혜가 가능한 소규모 기업 및 개인사업자가 금리혜택을 얻기 위해 자격을 위장할 유인을 제공한다.

그리고 서민금융 공급자의 규제부담 완화를 위한 건전성 규제의 완화는 무분별한 여신확대로 인한 금융기관의 잠재적 부실화를 유발해 궁극적으로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서민금융체계 개편의 기본방향은 순수하게 상업적 원리에 의한 공급확대를 도모하는 것은 그 효과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공공성의 시각에서 공급자의 신용위험 부담을 경감시키거나 수익성 보전을 위한 지원 방안을 마련하되 수요자 및 공급자의 도덕적 해이에 기인한 역선택의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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