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중 손해보험협회 교통사고예방팀 팀장


운전자라면 누구나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한 도로를 운행하면서 아슬아슬한 순간에 직면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경우엔 전조등과 비상등을 켜고 운행하는 것이 운전자 사이에선 상식으로 통하고 있다. 비록 전조등을 켰다 하더라도 본인의 시야확보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과 본인 차량의 안전을 돕기 위해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무언의 의사소통이다.

이런 배려는 해가 있는 환한 대낮에도 이어져야 한다. 전조등을 켜고 자동차를 운전하게 되면 보행자와 다른 운전자들이 그 차량의 움직임을 쉽게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터널이나 지하주차장과 같은 어두운 곳에서 운전자가 충분한 시야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교통사고 예방에 큰 도움을 주게 된다. 특히 조그마한 실수로 인한 접촉사고라 하더라도 큰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오토바이의 경우 전조등의 혜택을 톡톡히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선진외국의 경우 한낮에도 전조등을 켜도록 의무화한 나라가 적지 않다. 세계에서 교통사고율이 낮다고 하는 스웨덴은 1977년, 캐나다는 1989년, 노르웨이는 1988년, 덴마크와 폴란드는 1990년부터 24시간 전조등 켜기를 의무화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주에서 오토바이의 대낮 전조등 켜기를 의무화하고 있고, 자동차에 대해서도 이를 권장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24시간 전조등 켜기를 의무화한 이후 10% 이상 교통사고가 감소하였다. 그리고 미국 교통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주간에 전조등을 켜고 운행할 경우 차종에 따라 교통사고 건수가 5∼44%까지 감소한다고 한다.

유럽연합은 2010년부터 주간 전조등 켜기를 의무화하여 시행할 계획이며 UN에서도 이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반드시 선진 외국의 사례를 따라할 필요는 없겠지만, 주간에 전조등을 켜는 것이 교통사고를 줄이고 이로 인한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데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에서는 안개, 그밖에 이에 준하는 장애로 인해 전방 100미터 이내 도로상의 장애물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전조등을 켜도록 규정하고 있고, 위반시 2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이를 잘 모르고 있으며, 실제 단속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주간 전조등을 켜자’라는 캠페인도 이러한 맥락에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이다. 선진 외국의 실시 사례 및 국내의 연구결과에서도 검증이 되었듯이 주간에 전조등을 켤 경우 연간 약 8.3%의 교통사고 감소효과가 있으며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약 1조 200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운전자들은 전조등을 켜는데 아주 인색한 편이다. 그 이유는 전조등을 켜면 자동차 배터리와 연료가 더 소모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모되는 비용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며, 주간 전조등을 켤 경우 우려되는 연료소비의 증가 및 환경오염 물질의 배출 등 부작용에 대해서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주간 전용 전조등(DRL, Day-time Running lamp)이 하나의 대안이다. 주간전용 전조등은 기존 차량의 전조등에 비해 광도를 훨씬 낮춘(20,000칸델라 ⇒ 1,000칸델라) 방식으로 연료, 오염, 눈부심 등의 문제점들을 거의 해소할 수 있다.

OECD국가 중 교통사고 다발국가로 기록되고 있는 우리도 심각한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여러 교통선진국들과 같이 차량 시동과 동시에 전조등이 켜지도록 하여 24시간 전조등 켜기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동차 전조등은 인재(人災)를 줄이는 생명의 빛이다. 결코 큰 예산이 소요되는 일이 아니다.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제도도입이 절실하다고 본다. 또한 이 제도의 의무화와 상관없이 주간에도 전조등 켜기를 생활화한다면 상대방이 내 차의 움직임을 금방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눈에 띄게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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