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변조 가능한 ‘간이영수증’ 보상방식으로 인정
삼성화재 출시 이후 현대·DB·KB 등 일제히 카피

간병인 보험의 보험금 청구서류를 위·변조 가능성이 높은 간이영수증으로 받는 삼성화재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성급하게 개발한 상품에 뒤탈이 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간병인 사용일당이란 병원에 1일 이상 입원해 치료를 받으면서 간병인을 사용한 경우 사용일수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올해 초 삼성화재가 처음 내놓은 이래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 상위 손해보험사가 일제히 똑같은 약관을 베껴 출시하면서 업계 전체로 문제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는 지난달부터 간병인 보험 내 ‘간병인 사용 입원일당(이하 간병인 사용일당)’ 담보 가입자가 간이영수증이나 간병확인서, 계좌이체내역 등으로 보험금 청구가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이는 약관에서 요구하는 보험금 청구서류 방식에서 벗어난다. 간병인 사용일당 약관에서는 간병인 사용기간 및 금액이 기재된 영수증으로 보험금 청구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영수증은 사업자등록된 업체가 발행한 영수증으로, 간이영수증을 제외한 카드전표 또는 현금영수증(표 참조)을 제출해야 한다.

 


약관도 인정 않는 서류 달라?


삼성화재가 약관에서 인정하지 않는 보험금 청구방식을 도입하면서 똑같은 상품을 판매중인 타사에서는 당황하는 눈치다. 약관 내 보험금 청구서류에 간이영수증 등이 포함되지 않은 건 가입자의 모럴해저드(역선택)를 방지하지 위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간병인 사용일당은 간병인 비용이 7만원 이상일 때 가입금액의 100%를, 7만원 미만일 땐 가입금액의 50%만 지급하는 상품이다. 가입금액이 10만원이고, 열흘간 하루 10만원의 간병인 비용이 발생했다면 보험사는 100만원을 지급한다. 같은 기간 하루 5만원의 간병인 비용이 발생하면 절반인 50만원을 주는 구조다.

때문에 수기작성으로 위·변조가 쉬운 간이영수증을 보험금 청구서류로 활용할 경우 가입자와 간병인업체간 보험사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삼성화재는 실제 사용된 금액을 확인하기 위해 가입자와 간병인간 계좌이체내역 등도 함께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약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류다. 

가입자가 간병인에게 직접 현금을 줄 경우 간이영수증 외에는 증명할 길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이에 현재 같거나 비슷한 상품을 판매 중인 DB손보, KB손보, 메리츠화재 모두 간이영수증을 보험금 청구서류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보험금 지급(보상)단계에 문제가 생겨 약관에 없는 서류를 받는 건 애초에 상품을 잘못 만들었기 때문으로 본다. 가입자가 제대로 된 보험금 청구서류를 구비할 수 없는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

민원을 우려해 보험금 지급 범위를 무리하게 풀어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초 계획대로 보상이 이뤄졌다면 손실이 나지 않을 상품이 약관에 없는 서류까지 받아서 보험금을 내줘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7만원이라는 보험금 청구 기준도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베껴 쓴 약관이 문제


간병인 사용일당은 손해보험사 가운데 삼성화재가 올해 3월 ‘마이헬스파트너’ 상품에 처음 탑재했다. 이후 6개월의 면책기간(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기간)이 지나 본격적인 보험금 청구가 생기자, 약관과 실제 보상과정에서의 괴리가 발생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실제 가입자들이 사용하는 간병인 중 일부는 약관에서 원하는 서류를 구비할 수 없을 만큼 영세 업체나 직업소개소 등을 통해 파견됐다. 현실적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받지 못하는 간병인에게 현금영수증이나 카드전표 등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삼성화재가 기존 간병인 보험의 약관을 고스란히 베끼면서 발생한 일로 풀이된다. 간병인 사용일당이 판매되기 이전까지 손보사들은 제휴된 업체에서 간병인을 파견해주는 ‘간병인 지원 입원일당(이하 간병인 지원일당)’ 담보만 판매해왔다. 

삼성화재는 현금급부의 상품을 새로 만들면서 간병인 지원일당 약관에서 요구하는 보험금 청구서류를 그대로 따왔다. 현물 급부와 현금 급부간 보상방식이 전혀 다름에도 가입자에게 같은 서류를 요구한 것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실제 보험금 지급이 발생하자 현금영수증 등 발급의무가 없는 업체들도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이영수증과 함께 계좌이체내역 등을 받게 된 배경”이라며 “간이영수증 외에도 업체정보나 입금내역 추가확인을 통해 간병인 사용이 확인되는 경우는 보상해주는 것이 고객 보호 차원에서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카피상품 이어지며 '수면위'


더 큰 문제는 삼성화재가 현금급부 방식을 내놓은 이후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등이 일제히 삼성화재가 만든 약관을 베껴 똑같은 상품을 출시했다는 점이다.

이들 보험사는 판매 이후 면책기간이 도래하지 않아 보험금 청구가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은 간이영수증을 보험금 청구서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같은 약관을 따온 만큼 삼성화재의 보상방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간병인 보험이 현물급부에서 현금급부로 변하게 된 건 보험사가 간병인 파견업체에 지급하는 비용이 매년 늘고 있어서다.

일례로 메리츠화재는 매년 간병인 파견업체에 지급하는 비용을 공시하고 있다. 자동차보험처럼 물가상승률 등 각종 요인을 감안해 매해 보험료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간병인 지원일당이 처음 도입된 2012년에는 8만원이었지만 2016년 10만원을 돌파한 이래 올해는 12만9000원까지 상승했다. 

한 보험사 상품개발 관계자는 “간병인을 직접 파견해주는 현물급부 방식도 보험사가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업체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라며 “이걸 현금급부인 정액보험으로 판매할 경우 더 많은 변수가 생긴다. 아직 간병인 시장이 현금을 지급하기에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만들어낸 상품”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화재는 간병인 사용일당의 약관개정에 나서기로 했다. 보험금 청구서류 등의 현실화가 예상되고 있다. 

박영준 기자 ain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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