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줄 세우기에 취급 확대 ‘울며 겨자 먹기’
대출 수요 못따라가는 TCB..."책임은 은행 몫"

2022년 5월 12일 16:00 대한금융신문 애플리케이션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매해 50조씩 늘고 있는 은행권 기술금융 시장이 부실 위험에 직면했다. 대출 수요 급증에 비해 건전성을 평가해야 하는 인력이 역부족인 상황이다.

은행들은 기술금융이 들이는 고충에 비해 마진이 낮고 리스크만 높은 시장이라 평가하면서도, 금융당국의 강한 드라이브에 규모를 늘리고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12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3월말 기준 기술금융 대출 누적 잔액은 329조810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4년 시장이 형성된 이후 △2015년말 60조6000억원 △2017년말 127조7000억원 △2019년말 205조5000억원 △2021년 316조3615억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세다.

은행별로 보면 중소기업 특화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 잔액이 98조9104억원으로 가장 많고 △KB국민은행 46조8284억원 △신한은행 45조9811억원 △우리은행 44조4563억원 △하나은행 39조24억원 순이다.

기술금융 대출은 건물·토지 등 부동산 담보가 부족하고 신용도가 낮지만 중소기업이 보유한 기술력을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상품이다. 일반 기업신용대출 보다 금리가 낮고 대출 한도는 많아 기업에게 실질적 금융 지원을 제공한다.

문제는 급속한 시장 성장에 부실 위험도 뒤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기술금융 대출 심사 시 코데이터(舊 한국기업데이터), 나이스평가정보, 이크레더블 등 기업신용평가(TCB)사 5개 기관이 매긴 TCB 보고서를 의무 적용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금융 대출 확대에 맞물려 급증한 기술평가 수요를 5개 TCB사가 소화하는 데는 전문인력과 역량 등 면에서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실제로 TCB사 대표격인 코데이터의 평가자 등 TCB 관련 업무 인력은 현재 100명 남짓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기술평가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면담과 실사 등을 통해 1인당 한달에 최대 20~30개를 평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말하지만, 전문인력 부족으로 인해 1인당 한 달에 수백개를 평가하는 곳도 있는 게 현실이다.

TCB사들이 인력 충원과 전산시스템 고도화를 추진 중이지만, 평가자의 정성적 역량이 중요한 기술금융 특성을 고려할 때 평가서 양과 질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자칫 TCB 보고서에 문제가 발생해 부실이 발생해도 그 책임은 TCB사가 아닌 은행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급증하는 수요에 품질이 검증되지 않은 TCB 보고서가 늘어날 경우 은행의 건전성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대내외적 경제 상황이 악화된 상황이라 기술금융 대출에 대한 기업평가 역량이 특히 더 중요하진 상황”이라며 “기술금융 부실을 막고, 안정적인 미래 먹거리로 전환시키기 위해 은행 자체적인 평가시스템을 고도화하며 대응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술금융에 대한 부실 우려 확대에도 은행들이 취급을 빠르게 늘려나가는 건 당국의 성적 줄 세우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동산 위주였던 담보 시장을 미래성장성 중심으로 개편하고 혁신 창업기업 대출을 지원하기 위해 기술금융 시장 활성화를 지속해서 주도해왔다.

금융당국은 1년에 2번씩 은행권 기술금융 실적평가(이하 TECH평가)를 실시하며 은행연합회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에 매월 은행별 기술금융대출 취급 실적(잔액, 건수)을 공시한다.

TECH평가 결과에 따라 온렌딩(중소·중견기업 지원 정책금융) 한도를 차등 배분하고 신용·기술보증기금 출연료 절감 인센티브도 부여한다.

매해 늘어나는 실적만 보면 은행들이 정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호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울며 겨자 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심사 인프라가 까다로운 기술금융은 (대출을 내준) 기업이 성장하고 나서도 본전”이라며 “마진이 매우 제한적인 시장이지만, 은행별로 실적을 줄 세워서 공개하니 등 떠밀려 시장 확대에 뛰어든 게 있다”고 말했다.

대한금융신문 안소윤 기자 asy2626@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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