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감시 회피 쉬워

소액주주 간섭 불가

얼마전 방한했던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SC제일은행의 한국 주식시장 재상장 여부를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계획이 없다”고 답했다.

한국씨티은행 역시 지난 2004년 씨티그룹이 한미은행 지분을 대부분 인수(99.33%)한 뒤 상장폐지시킨 후 아직까지 재상장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현재 국내에서 영업중인 외국계 은행은 지점형태의 HSBC를 비롯해 모두 비상장된 상태다.

재상장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한 외국계 은행 관계자는 “이미 그룹 차원에서 해외 증시에 상장한 상태인데다 굳이 한국에서까지 상장을 해 투자금을 유치해야 할 정도로 경영사정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선 외국계 은행들이 이처럼 상장을 기피하는 이유에 대해 시장감시를 피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의 경우 상장을 하지 않으면 상장법인으로서의 공시 의무가 사라져 시장 감시를 피하기 쉬우며 소액주주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2004년 한미은행 상장폐지를 위해 씨티그룹이 개최한 임시 주주총회에서는 상장폐지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같은 지적에 씨티은행측은 외국계 은행의 경우 투명성과 윤리규정에 있어서 시중은행보다 엄격한 규제를 받는 것이 현실이라고 반박했다.

씨티은행 한 관계자는 “상장이 폐지됐더라도 공시보다 더 상세한 경영자료를 금융감독원에 보고할 의무가 있다”며 “한국과 미국의 회계기준을 동시에 충촉시켜야 하기 때문에 투명성은 보다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 당국 역시 상장사로서의 공시의무는 없지만 금융기관으로서 상장여부와 관계없이 은행법에 따라 공시하도록 규정돼있기 때문에 시장의 감시는 계속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비상장된 외국계 은행의 경우 은행법상 금융기관 공시 의무가 부과되고 내용도 상장사가 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면서 “매월 제출하는 업무보고자료를 통해 정기적으로 은행 현황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은행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의 경우 은행 홈페이지 등 공개된 장소에 공시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과거 외국계 기업의 행적을 되짚어 봤을 때 과연 감독당국의 지시에 얼마나 부응할지 의문이다.

실제로 SC제일은행은 과거 뉴브릿지 캐피탈에 인수된 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의무채용 비율을 준수하지 않아 매년 벌금을 내왔다.

스탠다드차타드 그룹이 인수한 후에는 2004년 11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14개월간 중소기업대출 준수비율을 단 한 차례도 이행하지 않아 기관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李周石 기자>moozee@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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