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로 IMF 위기 탈출

피로도 가중되면서 외형성장으로 눈 돌려
최고의 수익 내던 우리銀 위기 상황 자초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말이 있다.
조직이나 사람이나 변하지 않으면 도태한다는 뜻이다.

지난 1990년대의 IMF 외환 위기로 비롯된 서슬 퍼렇던 구조조정의 높은 파고를 이겨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변화 관리(체인지 매니지먼트)’였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체인지 매니지먼트에 열정을 쏟았던 기업들은 불과 수년만에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위치로 새롭게 거듭났다.
 
당시 변신에 성공한 거의 모든 기업에는 이른바 체인지 매니지먼트를 전담하는 CEO 직속의 독립 부서가 존재했다.
 
‘경영혁신’ 또는 ‘변화관리’라는 명칭으로 존재했던 이들 부서는 해당 기업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수행하면서 조직과 사람의 변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체인지 매니지먼트에 대한 정열은 사그라졌다. 변화에 대한 피로도가 조직과 조직원 모두에게 넘쳐나면서 이제는 그만하면 됐다는 인식이 팽배해 진 것이다.
 
대신 체인지 매니지먼트의 공백을 외형 확장 또는 성장이라는 키워드가 대체했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은 또다시 구조조정의 험난한 시련을 맞고 있다.
 
앞서 언급한 내용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토종은행인 우리은행의 예를 들어 살펴보자.
 
외환 위기가 시작되면서 국내 첫 대형 시중은행의 합병으로 탄생한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빛은행(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은 불과 얼마 못 가서 관악 사건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공적자금을 다시 투입 받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같은 시기 초대 김진만 은행장이 중도 하차 하면서 합병 당시 실무를 진두 지휘했던 이덕훈 2대 행장이 풍전등화의 한빛은행의 수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합병추진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았던 이 행장은 각종 사고로 벼랑 끝에 내몰린 한빛은행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체인지 매니지먼트를 선택하고 ‘경영혁신단’이라는 은행장 직속의 무소불위 조직을 탄생시킨다.
 
이어 경영혁신단은 조직은 물론 조직원 전체의 변화관리를 주도하면서 위기의 한빛은행을 우리은행으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이 행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황영기 행장은 체인지 매니지먼트로 다져진 우리은행의 내공을 외형 확장으로 전환시키면서 연간 수익만 2조원에 육박하는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권불십년을 증명이라도 하듯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던 우리은행은 글로벌 금융 위기로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문제는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는 국민, 신한, 하나은행은 자체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반해 우리은행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항간에 우리은행과 관련돼 나도는 온갖 소문들을 종합해 보면 자본확충펀드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도 안 된다’는 것이다.
 
내부 일각에서는 각종 악재 등을 감안하면 최소 8조원에서 10조원 정도의 공적자금이 투입돼야 회생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체인지 매니지먼트를 통해 최고의 수익을 기록하는 은행으로 거듭 난 우리은행은 황영기 행장 취임과 동시에 외형 성장으로 경영 전략을 전환한지 얼마 안 돼서 또다시 공적자금을 받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쓸모없는 소모전을 펼친 우리은행의 외형 경쟁은 자승자박이 됐을 뿐만 아니라 은행권의 추가적인 판도 변화까지 예고하는 시한폭탄으로 인식되고 있다.
 
<趙誠俊 기자>sungju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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