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발전과정 총망라, 경제교육 場

국채보상운동 등 역사적 사료 풍부
 
 
화폐, 유물, 고문서 등 국내 금융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경제, 금융발전 과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문박물관이다.
 
지금은 신한은행과 통합한 조흥은행에서 1997년 3월 설립해 당시 명칭은 조흥금융박물관이었으며 2006년 4월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통합하면서 한국금융사박물관으로 변경됐다.
 
통합 이후 신한금융그룹은 6개월간의 리모델링 과정을 거쳐 2007년 재개관했다
 
현재 약 7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설립 이후 금융사와 관련된 사료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수집과 연구, 전시를 통해 2003년 문화관광부가 주관하는 ‘국가문화유산종합정보시스템 구축사업’ 대상 박물관으로 선정된 바 있다.
 
또한 신진 유망 미술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신한갤러리와 더불어 문화의 중심지인 광화문에 위치해 연간 수 만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는 종합문화공간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연세대학교 윤석범 명예교수는 “소멸돼 가는 민족의 유물이 늘어가는 가운데 우리민족의 경제생활 여러 측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박물관의 소장품은 민족생활사를 현물로써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평했다.
 
주요 소장 유물은 개항기 이전에 사용되던 각종 거래 문서 등의 고문서와 금융거래에 사용된 계산도구 등의 도구, 개항기 은행 설립 초기에서부터 현재의 금융사 및 은행 역사 관련 전적, 사진, 기물, 문서, 유가증권, 은행 통장, 광고물 그리고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화폐들이다.
 
‘경제는 어렵고 박물관은 재미없다’란 고정관념을 넘어 다양한 모형, 영상물, 체험 등을 곁들어 경제교육의 현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조선시대 금융사 엿보기
한국금융사박물관은 우리나라 민족은행인 한성은행의 1897년 은행규칙을 비록해 개성 상인들이 썼던 장부나 조선시대 할리목록 등 사료 가치가 높은 유물이 다수 전시돼 있다.
한성은행은 신한은행의 전신으로 1897년 설립된 민족은행이다.
▲ 한성은행 규칙-우리나라 최초의 은행규정이자 법인 규정으로 전체 5장 27개조와 1개조의 부칙이 있고 본부 규칙외에 지소 규칙도 있다.     © 대한금융신문

 
한성은행 규칙<사진>은 우리나라 최초의 은행규정이자 법인 규정으로 전체 5장 27개조와 1개조의 부칙이 있고 본부 규칙 외에 지소 규칙도 있다.
 
초기 은행의 성격, 조직 및 영업활동의 내용을 보여주며 특히 영업 범위에 있어 자본금 규정에서는 정부의 자본금 출자를 규정하고 정부 발행의 공채, 은표, 환표의 대여 또는 매입 업무, 화폐교환 및 태환업무 등을 기재하고 있어 중앙은행의 금융업무를 담당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권의 매매와 양여를 조선인에게 한정한다고 기재돼 민족은행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상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도 다양하다.
소개된 금융 제도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시변(時邊)’과 ‘외획(外劃)’이다.
 
시변은 개성상인들 사이에서 행해진 금융기법으로 오늘날의 콜머니(call money)나 콜론(call laon)과 같은 단기 자금 거래의 일종이며 외획은 오늘날 환거래의 일종으로 지방 수령이 징수한 세금을 국고에 납부하기 전에 제3자에게 먼저 지급하는 제도다. 이는 오늘날과 비슷한 금융 제도가 이미 조선시대에 갖추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현금 대신 쓸 수 있었던 ‘수표’나 ‘어음’, 오늘날의 금융 거래 장부와 같은 ‘일기(日記)’나 계산 도구인 ‘산가지’, ‘주판’등은 조선시대의 상업이 매우 발달됐음을 말해준다.
 
수표나 어음은 상거래가 신용으로 이뤄졌음을, 일기와 산가지와 주판은 조선상인들 고유의 부기법이 마련됐음을 보여준다.
 
특히 전시되어 있는 ‘송도사개치부 일기’는 서양에 비해 200여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복식부기법인 송도사개치부법으로 정리된 귀중한 유물이다.
 
 
■아픈 과거사 ‘국채보상운동’
한국금융사박물관에서 가장 눈여겨볼 자료는 ‘국채보상운동 취지서’과 ‘국채보상 영수증’<사진> 등이다.
▲ 국채보상영수증-1907년(광무11년) 4월 1일 우정면 신곡에서 국채보상금으로 1엔(원) 50전을 영수하고 발급한 영수증. 기본양식은 붉은색 한문으로     ©대한금융신문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일본으로부터 들여온 1300여만원의 외채를 국민 모금으로 갚고 경제 독립을 이룩하자는 취지에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이다.
 
지난 IMF때 벌어졌던 금모으기 캠페인과 비슷한 성격으로 당시 서민들의 강한 애국심을 엿볼수 있다.
 
대구 광문사의 김광제, 서상돈을 중심으로 담배를 끊고 그 돈을 모아 외채를 갚자고 하는 단연운동이 일어나면서 전국적인 국채보상으로 발전했다.
 
남자들은 담배를 끊고 여자들은 각종 패물을 팔아 모든 돈을 기탁하던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전개됐으나 일제의 방해공작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신한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은 국채보상운동금의 일부를 예치하고 한성은행의 초대 은행장인 김종한은 각 지방 수금을 총괄하는 ‘국채보상지원금총합소’의 부소장을 역임하는 등 국채보상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5년 화폐 정리로 인한 심각한 금융공황 속에서 전개된 범국민적인 주권 회복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 밖에도 일제가 제2차 세계대전을 수행하면서 전쟁에 사용할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대일본제국 대동아전쟁 할인국고채권’<사진>도 확인할 수 있다.
▲ 대동아전쟁 할인국고채권-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수행하면서 전쟁에 사용할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 채권판매로 조성된 자금은 조선은행을 통해 일본 대장성 예금부로 전해져 운용됐다.     © 대한금융신문

이 채권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제정된 ‘임시자금조정법’에 의거해 발행됐으며 채권 판매로 조성된 자금은 조선은행을 통해 일본 대장성 예금부로 전해져 운용됐다.
 
 
■‘티끌모아 태산’ 화폐전시실
화폐전시실에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화폐와 더불어 세계 각국의 화폐를 볼 수 있다.
 
물물교환의 수단이던 곡류에서부터 전폐(화살촉), 중국으로부터 유입돼 사용된 동전, 조선시대에 유통된 상평통보, 당오전, 당백전, 우리나리 최초의 태환지폐인 태환권, 조흥은행에서 발행된 지폐, 일제 강점기 조선은행권 및 어음 등 각 시대별 화폐가 전시돼 있다.
 
전시실 한쪽에는 백만이라는 숫자를 체험해보고 100만원의 화폐가치를 알게 해주는 1원짜리 백만개 코너가 방문객을 맞는다.
 
1원짜리 산 앞에 선 순간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대표적인 화폐 유산은 ‘대동삼전’이다.
 
1882년(고종 19년) 제조된 우리나라 최초의 은제 화폐로서 상평통보와 달리 내부에 구멍이 없고 뒷면에는 戶(호)자를 배경으로 대동일전, 대동이전, 대동삼전의 세 종류가 있었다.
발행 직후 부유한 사람들의 부의 축적수단으로 사용돼 서민층에 유통되지 않고 원재료인 은 가격이 올라 곧 제조가 중단됐다.
 
이밖에도 일본 강점기 시절 일본이 국내에 유통한 화폐와 해방이후 한국은행이 최초 발행한 천원권, 화폐개혁 전후의 지폐가 전시돼 있다.
 
<車振炯 기자>jin@kbank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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