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甲’들의 반란, 소비자가 위태롭다

대형가맹점 수수료 협상 난항
소비자에게 부담 전가 우려돼

<대한금융신문=전선형 기자> 올 12월 본격 도입되는 신(新)가맹점수수료체계는 지난 2001년 호주금융당국이 추진한 ‘지급결제 시스템 개혁’과 상당한 유사점을 보인다. 당시 호주금융당국은 높아지는 가맹점 수수료를 내리고 직불카드 사용을 늘리고자 지급결제 시스템 개혁을 시도했다. 물론 그들의 바람대로 직불카드 사용은 크게 늘어났고 낭비되던 사회적비용도 어느 정도 축소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대형가맹점들은 수익 보존을 위해 고객에게 과도한 서차지(Sur-Charge, 별도수수료)를 부과했고 또한 중소가맹점들은 고객몰이를 위해 서차지를 직접 감내하게 되는 등 여러 곳에서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다.

호주와 우리나라의 카드 거래 사정이 다소 상이하긴 하지만 호주의 선례는 신체계 도입을 앞둔 우리나라에게 여러모로 시사하는 점이 크다. 더욱이 최근 우리나라는 신체계 도입에 대한 대형가맹점들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계약관계에 있는 카드사들은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 이번 호에서는 호주의 지급결제 시스템 개혁과 우리나라 신체계 도입에 대해 비교해보고 이후 발생할 있는 문제점들과 그 대안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호주 10년 걸린 걸 우리는 단박에…

2003년 호주가 신용카드 개혁을 이룬 가장 큰 원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가맹점 수수료’ 탓이 크다. 당시 호주의 신용카드 가맹점들은 전표 매입 수수료까지 합쳐 보통 1~2%대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특히 중소가맹점은 매출의 2.5% 이상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등 부담이 컸다.

▲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호주중앙은행 전경.

이에 호주중앙은행은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가 너무 과도하다”며 카드 발급사가 받는 정산수수료를 0.55%(기존 0.95%)로 대폭 축소하기로 한다. 이어 3년 뒤, 2006년 0.05%를 추가 인하해 현재 0.50%를 유지 중이다.

신용카드 개혁이 이뤄지자 호주 내 중소가맹점들은 쾌재를 불렀다. 절반 이하로 떨어진 수수료로 인해 물건가격을 인하할 수 있었고 덕분에 매장을 찾는 고객도 늘었다. 매출도 당연히 상승했다.

하지만 반대로 카드사들은 수익보존을 위한 고심에 빠졌다. 수수료 수익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대안마련이 시급했던 것.

카드사들이 가장 먼저 타깃으로 삼은 건 바로 고객이었다. 우선 호주 카드사들은 회원들의 신용카드 연회비를 올리고 부가서비스 혜택도 대폭 축소했다.

실제로 2003년 이후 호주의 연회비는 부가서비스에 따라 최고 22%에서 최고 77%까지 상승했다. 참고로 현재 호주에서 가장 저렴한 카드 연회비는 약 45달러(한화 4만8000원) 수준이다. 또한 포인트 적립 비율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여기에 대형가맹점들도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서차지를 부과하며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켰다.

우리나라였으면 불법으로 잡혀갔을 일이지만 호주에서 서차지 부과는 합법 사안이다.

2003년 추진된 호주중앙은행의 신용카드 개혁안에는 ‘가맹점이 신용카드로 결제하려는 고객에게, 현금으로 결제하는 고객에게 적용되는 요금 이외의 추가요금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도 함께 포함돼 있었다. 과도한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자 하는 게 의도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대형가맹점들은 이를 악용했다. 소비자에게 과도한 서차지를 부과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실제로 호주항공사 콴타스(Quantas)는 예약시 결제 금액의 3% 이상을, 택시는 요금의 무려 10%의 서차지를 책정하고 있다. 결국 소비자가 ‘봉’이 된 셈이다.

국내 금융전문가들은 호주의 선례를 미루어 봤을 때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결국 축소된 가맹점 수수료는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대형가맹점들의 이익만 챙겨줄 것이란 우려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호주는 10년여의 기간을 두고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이를 단번에 시행하려는 우리나라는 오죽하겠나”라며 “또 신용카드 부가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호주와 우리나라 국민은 판이하게 다르다. 가맹점은 물론이거니와 시민단체들의 격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신체계 전면 도입이 불과 한 달 앞으로 다가 왔지만 대형가맹점들은 협조는커녕 한발 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꿈쩍도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카드사도 어쩔 수 없이 연회비를 높이고 부가서비스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슈퍼갑 vs 카드사’ 양보없는 설전

현재 신체계 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대형가맹점들이다. 카드사들은 시급히 이들과 수수료 인하를 위한 재협상을 시도해야 하는데 여건이 녹록치 않아 보인다.

대형가맹점들이 카드사 수수료 수익의 막대한 비중(2011년 기준 42.5%)을 차지하다보니 그들이 ‘가맹점 해지’를 빌미로 으름장을 놓으면 카드사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형국이다.

그 예시로 삼성카드와 코스트코 간 사례를 들 수 있다.

삼성카드는 코스트코와 업계 최저 수수료인 0.7%로 특별 계약을 체결 중이다.

하지만 신체계 도입으로 인해 수수료 인상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 그러나 코스트코 측은 ‘개별 기업간 체결한 거래’라며 재협상 불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삼성카드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하다. 신용카드 가맹점 표준약관에 따라 카드사는 가맹점 수수료율 조정 1개월 전까지 서면으로 가맹점에 통보해야하기 때문에 이달 중순까지는 코스트코와 협상을 마무리 지어야한다. 하지만 상대가 요지부동 태도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삼성카드 이외에도 대형가맹점과 카드사 간 최저 수수료로 계약을 한 건은 상당히 많다.

금융당국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234개 대형가맹점 중 삼성-코스트코와 같이 특별약정(특약)을 맺은 대형가맹점 계약은 20건이 훌쩍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모두 재협상에 난항을 겪는 것은 마찬가지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행여나 대형가맹점들이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카드사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며 “금융당국에서 조차 이들은 강제 조치할 법적근거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키는 대형가맹점이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또한 대형가맹점들을 압박하고 나섰다.

지난달 권혁세 금융감독원장도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 체계 개편과 관련해 대형가맹점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할 경우 엄정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만약 대형 가맹점의 지위 남용 사례가 있을 경우 관계기관에 통보하고 해당 카드사에도 시정을 요구하는 등 단호히 조치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법적근거가 없는 이상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우려하고 있다. 결국 대형가맹점들의 양보가 절실하다.


끝없는 도돌이표 ‘보험료 카드결제’ 해소되나

‘보험료 카드결제’라는 케케묵은 문제 요소는 신체계 도입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고 있다. 여태까지 보험료 카드결제를 둘러싸고 보험사는 ‘수수료가 너무 비싸다’는 입장을 고집했고 카드사는 ‘결제를 허용해주면 수수료를 내리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실 보험료 카드결제는 법적 강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업계간 협조가 절실하다.

현재 생명보험회사의 경우 국내 17개 주요 생보사 중 5개사(대한생명, 교보생명, ING생명, 푸르덴셜생명, PCA생명)가 모든 보험상품의 카드결제를 받지 않고 있다. 카드결제가 가능한 곳이라 하더라도 결제 대상을 일부 상품(저축성과 보장성보험)으로 제한하고 있다.

손해보험사는 사정이 조금(?) 낫다. 보험료 카드결제에는 제한이 없으나 매달 보험료를 납부해야하는 보험상품(장기보장 보험과 저축성보험)의 경우 매번 본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불편한 절차가 존재한다.

실제 보험사들의 주장대로 카드 수수료율은 3%대. 백화점(2.1%)과 대형마트(1.65%)보다 높은 편이다.

하지만 신체계가 도입되면 기존 1.5~3.5% 수준에서 1.5~2.7%로 대폭 인하된다.

더욱이 실제 매출액에 따른 슬라이딩제까지 적용받게 될 경우 보험회사의 가맹점수수료 부담은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표 참조>

 

최근에는 금융당국에서까지 밀어붙이면서 보험료 카드결제 전면 시행에 탄력이 붙은 모습이다.

금감원은 지난달 ‘소비자의 편의성을 증진시키기 위해 카드결제는 반드시 의무화시켜야 한다’며 생명보험사 7곳과 손해보험사 7곳을 불러 보험료를 신용카드로 자동납부 받지 않는 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당시 금감원은 관계자는 “보험료 카드결제와 관련된 민원이 끊이질 않고 있다”며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해 신용카드로 납부하는 방안을 계속 추진 중에 있다. 업계 간 협의를 통해 빠른 시일 내 실시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드업계는 보험료 카드결제가 활성화 될 경우 새로운 먹거리 대안이 될 수 있다며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여신금융협회 측은 “수년간 보험사들은 가맹점수수료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보험료 카드결제를 계속해서 거부했다”며 “최근엔 언론까지 나서며 보험회사가 소비자의 편의를 무시한 채 지나치게 잇속을 챙기는 게 아니냐고 비난한 바 있다”고 전했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보험료 카드 결제가 활성화되면 카드사의 새로운 수익원이 될 수도 있다”며 “소비자는 물론 업계로서는 환영할 일이다”고 말했다.


소비자 의식변화도 절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신용카드를 이용하며 큰 착각을 하는 것 중 하나는 ‘부가서비스 혜택 무상제공’이라는 인식이다. 실제로 카드사가 혜택을 조금이라도 변경·축소한다고 하면 마치 자기 것을 뺏기는 사람처럼 화를 낸다.

웬만한 신용카드들이 현금을 사용할 때보다 이득을 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못한다. 연회비가 없고 혜택이 많아야 좋은 카드로, 연회비가 조금만 높아져도 나쁜 카드라며 외면한다.

그렇다면 카드사가 소비자에게 무한대로 혜택을 쥐어주면 소비자는 무조건 이득일까. 결론은 그 반대다. 무리한 부가서비스 혜택 제공은 장기적으로 카드사, 가맹점, 회원 모두에게 득(得)이 아닌 손해다.

논리는 간단하다.

카드사들은 카드 회원에게 제공하는 부가서비스 비용을 상당 부분을 가맹점 수수료 형태로 가맹점에 떠넘긴다. 그리고 이 비용은 다시 가맹점에서 제공하는 물품과 서비스 비용에 반영된다.

이같은 순환구조 속에서 비용을 전가하다 보면 고객이 사는 물건에 이미 카드 마케팅비가 녹아들어 물건 값만 올리는 꼴이 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가맹점도 소비자도 피해를 보며 업계 전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10년 전 먼저 신용카드 개혁을 시도했던 호주는 카드 사용에 대한 국민 의식이 우리와 사뭇 다르다.

호주 카드는 최저 연회비가 우리나라에 비해 8배 높음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이용을 위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란 인식이 강하다. 우리와 반대다.

시드니에 사는 택시운전기사 레오 알렉스(31세) 씨는 “내가 소지하고 있는 신용카드 연회비는 55달러(한화 약 6만2500원)이지만 해외여행시 무료보험을 가입해주는 등 얻는 혜택이 많다”며 “여기서 여행자 보험을 들려면 약 300달러(한화 약 32만5000원)가 든다. 연회비에 무려 5배 이상에 달하는 혜택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한 나는 한 달에 3000달러(325만원) 정도를 소비하는데 그 중 절반 이상을 신용카드를 사용한다”며 “내 카드가 여행특화 카드이긴 하지만 이 정도 사용액이면 1년에 멜버른을 왕복할 수 있을 정도다. 신용카드 사용에 매우 만족한다”고 전했다.

또한 신용카드 사용은 각자의 선택일 뿐 카드사의 서비스 혜택 제공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호주 시드니 은행원 롭 치틱 씨는 “나는 직불카드만 사용한다. 신용카드를 쓰면 나중에 갚아야 할 돈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싫어서다”며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 정도의 서비스 값을 한다고 생각하니까 연회비를 내고 신용카드를 쓰는 것이다. 그건 개인의 선택일 뿐, 카드사에게 불평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체계가 도입된 이후 국내 카드업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적어도 지금과 같이 신용카드로 다양한 부가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신체계 도입으로 가장 직접적 타격을 입는 것은 카드사와 가맹점일 테지만 소비자도 빼놓을 수 없는 관계자”라며 “신체계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다자간 양보가 절실한 상황이다. 카드사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무상으로 서비스를 누려온 소비자의 의식변화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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