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해상최길수 하이플래너

장애에도 불구 연도대상 은상 거머쥐어
설계사 10년차, 노하우는 ‘신뢰와 성실’

 
<대한금융신문=전선형 기자>누구나 인생의 암흑기가 있다. 하지만 그 암흑기를 잘 견디면 성공으로 가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현대해상 최길수 하이플래너에게는 지난 2000년이 고난의 시간이었다. 평생을 몸 바쳐 일한 회사는 왼쪽 팔에 장애를 입고선 떠나야 했고 믿고 의지하던 어머니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게다가 재기를 꿈꾸며 시작한 사업은 마음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그에겐 인생 최대 슬럼프였다.

“당시엔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도장 작업을 했는데 반복된 작업으로 어깨에 장애가 왔습니다. 장애판정을 받고 나서는 일을 도저히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회사와 상의 끝에 산재로 처리하고 퇴사하게 됐습니다. 그때가 아마 제 나이 36세. 한창 일 할 시기였죠. 게다가 그 무렵 어머니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청천벽력이었죠. 이후 홀로 아버지를 모시며 삶의 재기를 꿈꿨습니다”

최길수 플래너의 재기(再起)의 기회는 다소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다. 바로 설계사로 변신한 회사 동료를 만나면서다.

“현대자동차에 다닐 때 같이 일했던 동료가 일을 그만두고 설계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친구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 길로 현대해상 지점을 찾아갔죠. 바로 등록을 하고 교육을 들었어요. 저의 설계사로서의 제2의 삶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영업 일은 만만치 않았다. 특히 그는 주변 지인도 별로 없어 지인 영업도 어려웠다. 그런 그가 생각한 성공방안은 ‘고객과의 신뢰’였다. 계약기간이 몇 년이 걸리든 우선 고객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생각이었다.

“저는 고객에게 보험상품 가입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아요. 고객이 원할 때 그때서야 서류를 전해주죠. 심지어는 저랑 알고 지낸 지 7년 만에 첫 계약을 하신 분도 있었어요. 그렇게 고객들과 몇 년동안 친구처럼, 가족처럼 다가가니 그들이 정말 필요할 때 가족보다도 저를 먼저 찾게 되더라고요”

그는 인터뷰 중간에도 고객들의 다양한 문의 전화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날에는 새벽 2시에 고객에게 전화가 왔어요. 자동차사고가 났는데 남편보다도 제가 먼저 생각났다는 거예요. 당시 그 고객이 대포차량과 사고가 난 걸로 기억해요. 새벽 2시에 씻지도 못하고 바로 달려갔습니다. 고객의 사고처리를 해주고 집까지 안전히 모셔다 드렸죠”

이런 그의 노력 때문일까. 5년전 있었던 최길수 플래너의 아버지 장례식에 300여명의 고객이 빈소를 조문했고 고객들의 근조화환도 50개가 도착했다. 심지어는 최길수 플래너를 대신해 그의 아버지 산소에 벌초를 대신 해주는 고객도 있었다.

“정말 고객들에게 고마웠어요. ‘아 그래도 제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나’ ‘저의 진심이 통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설계사일이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렇게 지나고 보니 정말 보람되고 잘된 선택이었죠. 앞으로 설계사를 시작하려는 분들이 있다면 ‘신뢰와 성실’ 두 단어만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최 플래너의 하루는 고객에서 고객으로 끝난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객을 만나러 가고 늦은 새벽에도 손에서 전화기를 놓지 않고 고객전화를 기다린다.

“제가 사무실에서 자정까지 대기하고 있으면 언제든지 고객을 위해 뛰쳐나갈 수가 있습니다. 절대로 망설임 없이 고객과 함께 하기 위해 늘 자정이 돼야 안심하고 퇴근을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이처럼 고객들의 곁을 지키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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