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상당수가 노년의 삶 살아가는 나라

사회적 과제 앞에서 금융업이 해야할 일

<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최근 몇 년 전부터 금융회사들이 은퇴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관련 연구소나 부서를 신설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고 있다. 인력 양성을 위해 은퇴 전문가 과정을 개설하고 사내 교육을 하면서 창구 상담원 및 설계사들은 이제 은퇴설계 영역까지 모두 커버하고 있다. 일부 회사에서는 자체 은퇴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대대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은퇴 솔루션을 제공하지 않고서는 금융회사가 존립할 수 없는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은퇴시장, 놓칠 수 없는 시대의 흐름
금융회사들이 걸어 온 흐름을 보더라도 은퇴시장은 그들에게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1960년대부터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과 대기업이 등장하면서 기업대출 등 기업금융에 강한 금융회사들이 시장의 헤게모니를 쥘 수 있었다. 대기업의 성장은 곧 대출이나 공모시장의 활성화로 이어졌으며 금융회사들은 직·간접적으로 기업들에게 종잣돈을 제공하며 동반성장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는 이런 관행을 모두 뒤집어 버렸다. 대우, 기아 등 부실기업들에 발이 묶인 금융회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소매금융을 무기로 내세운 곳들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여기에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활황과 맞물려 투자상품과 대출시장이 크게 확대됐다.

금융회사들은 지금 또 한번 전환점에 서 있다. 바로 급속한 고령화 따른 은퇴시장이다.

시장 초기다 보니 금융회사들은 아직까지 확실한 은퇴 비즈니스 모델을 정립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은퇴시장의 특수성은 비즈니스 모델 구축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기존 프라이빗뱅킹 시장은 회사별로 금액(자산) 기준이 있으며 일정 기준 이상이 되는 사람들만 고객으로 한정한다. 반면 은퇴시장은 자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문제다. 은퇴 비즈니스는 거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과 달리 고객의 범위가 넓어 고객 기준을 설정하기 쉽지 않다.

국내 은퇴 비즈니스의 3가지 특징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회사들의 은퇴 비즈니스는 크게 3가지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콘텐츠 제공형이다.

은퇴 관련 연구소를 두고 있는 회사들은 대부분 은퇴 관련 매거진, 도서 등 대중적인 발간물과 은퇴 이슈를 분석하는 연구 보고서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온라인뿐만 아니라 모바일용 콘텐츠를 공급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이같은 콘텐츠 제공모델은 직접적인 고객 확보보다는 회사의 은퇴 브랜드 제고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은 은퇴 세미나, 퇴직연금 판매 등을 위한 마케팅 지원에 특화된 형이다.

2000년대 들어 저금리가 안착되고 투자상품이 활성화되면서 나타난 마케팅 방식 중 하나가 ‘세미나 마케팅’이다. 세미나 마케팅은 핵심 고객과 일반대중 고객으로 나눌 수 있는데 최근에는 40~60대를 대상으로 한 은퇴 준비자를 위한 세미나가 많이 열리고 있다.

퇴직연금 비즈니스와도 밀접한 연계를 갖고 있다. 일부 금융회사들은 은퇴 관련 부서를 퇴직연금사업 산하에 두고 있으며 이들은 퇴직연금 마케팅에 필요한 각종 자료를 공급하고 가입자 교육을 위한 강사로 참여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연금 관련 상품을 위한 판매강화 모델도 주목해야 할 특성이다.

지금까지 세액공제가 되는 연금저축계좌는 연말에 주로 판매하는 계절용 상품에 가까웠다. 이 때문에 보험회사를 제외하면 증권사나 은행들은 연금상품 판매에 크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몇몇 증권사를 필두로 영업점 실적 평가에 연금저축계좌의 평가 비중을 높이면서 마케팅을 독려하고 있다. 연금상품이 더 이상 한시적인 테마형 상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판매해야 할 주요 상품군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연금통장·큰글씨 등 친고령화 서비스에 주목
금융회사들이 치열해질 은퇴시장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2014년 자산시장은 저금리·저성장·고령화라는 세 가지 변수에 둘러싸여 있다. 저금리와 고령화가 만나면 현금 흐름이 있는 자산과 중위험·중수익 성격의 자산에 대한 수요를 낳는다. 더욱 안정적이면서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률이 가능한 상품군에 대한 니즈가 많아지게 마련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주식과 채권 같은 전통적인 자산군에 더해 은퇴시장에 적합한 다양한 금융상품이 제공돼야 하며 동시에 해외투자 상품도 적극 개발해야 한다.

저금리와 저성장은 국내 자산시장에만 투자해서는 좋은 투자기회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국민연금 등 주요 연기금들이 최근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도 한국 사회의 자산시장 구조가 변했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에는 소득이 늘지 않기 때문에 모아 놓은 돈을 제대로 운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현금흐름형 자산, 중위험·중수익 상품군, 해외투자 상품 등을 어떻게 조합해 자산을 배분하느냐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연금생활비 통장, 큰 글자 안내서비스 등 고령화에 맞춘 생활 밀착형 서비스도 필요하다.

예전에는 은행들이 월급통장 개설을 위해 영업을 했다면 앞으로는 연금통장 유치 캠페인을 벌이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증권사도 CMA(종합자산관리계좌) 상품을 이용해 연금 생활비 통장 비즈니스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시대가 온다면 은행 간, 은행과 증권사 간 상당한 경쟁이 예상된다.

각종 상품 안내장 등 고객용 자료도 친 고령화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아직도 금융회사에서 나오는 자료들의 글씨 크기는 너무 작다. 신문이나 잡지의 글씨 크기를 키우고 있는 일본과 같이 국내 금융회사들도 이제 더 크고, 더 쉽고, 더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대 고객 자료들을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은퇴전문가 양성과 함께 은퇴준비를 위한 고객교육 및 콘텐츠 개발 또한 절실하다.

금융업은 사람이 곧 자원이고 소프트웨어인 산업이다. 은퇴시장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몇몇 금융회사에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내부 교육을 하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은퇴 전문가가 어떤 자질과 지식,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정형화된 개념조차 없는 상태다. 금융회사들은 은퇴 전문가에 대한 개념화 작업부터 할 필요가 있다.

아직까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은퇴 교육을 하는 사업장은 많지 않지만 점차 은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면 고객들은 정형화된 은퇴 프로그램과 관련 콘텐츠를 공급하는 금융회사를 찾게 될 것이다.

‘연금 Vs 거액자산가’ 시장 구분해야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상건 상무는 앞으로 금융회사들이 은퇴시장을 ‘연금시장’과 ‘거액 자산가 시장’으로 나누고 그에 따른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30~40대가 내 집 마련을 자산운용의 1차 목적으로 삼고 있다면 40~50대는 노후준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일반 대중들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같은 연금상품 위주로 자산운용을 하게 될 것이다.

한편 거액 자산가들은 맞춤 서비스를 더욱 선호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이런 추세를 반영해 사모형태의 상품들이 많아지고 있다. 거액 자산가들의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세무, 상속 등과 같은 부가서비스에 대한 수요도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금융회사들은 거액자산가들의 고령화에 맞춘 토털 컨설팅 서비스 체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국민의 상당수가 노년의 삶을 살아야 하는 시대에 진입하게 된다. 과연 이런 시대적 과제 앞에서 금융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

이상건 상무는 “금융회사가 국가의 사회적 과제와 자신의 기업적 이익을 일치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은퇴시장은 자신의 기업적 이익을 증가시키면서도 국가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일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라며 “이타(利他)와 이기(利己)가 만나는 지점에 은퇴시장이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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