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투자증권 안기태 연구원
러시아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對) 러시아 제재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력 수출품목인 유가마저 급락한 것이 주된 요인이다.

원유와 천연가스는 러시아 전체 수출의 69%를 차지한다.

재정수입에서도 원유관련 세수가 50%를 상회한다.

유가 하락은 러시아 실물경기에 즉각 반영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 산업생산지수와 우랄산 유가의 상관계수는 0.6을 상회한다. 국제유가(WTI)가 배럴당 70달러를 하회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산업생산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EU와 갈등이 지속되는 점도 부담이다.

러시아의 대 EU 수출은 전체 수출에서 49%를 차지한다. 이는 브라질(19%), 중국(15%) 등 여타 신흥국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에 대해 금융제재를 가하고 있는 EU(74%), 미국(10%), 일본(8%), 세 선진국 은행들에 대한 러시아 은행들의 대외차입 비중은 92%에 달한다.

러시아 은행들로서는 금융제재가 지속되면 자금조달 압박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러시아가 위기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8년 러시아는 이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외환위기에 직면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유가가 급락한 것이 배경이었다.

아시아 외환위기 이전, 배럴당 20달러에 머물던 WTI는 러시아가 채무상환 연기(모라토리엄)를 선언한 1998년 8월에는 13달러로 하락했다.

1년 사이 유가가 35% 하락한 것이다.

1998년 8월과 비교하면 현재 러시아 경제가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당시 러시아 외환보유고는 125억달러로 GDP 대비 4.6%에 불과했으나 올 10월 현재 외환보유고는 4286억달러로 GDP대비 20.8%에 이른다.

1998년 채무상환 연기 발표 이전에 러시아 경상수지는 적자를 지속했지만 현재는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시장 특히 외환시장은 쏠림현상(herding behavior)이 심하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즉 한 쪽으로 시장 컨센서스가 기울기 시작하면 일거에 대규모 자금이탈이 나타날 수 있다.

1998년 8월 모라토리엄의 경우 러시아 경제상황은 극도로 악화됐지만 이른바 파리클럽(채권국 협의체)을 통해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를 지원해 주고 있었다.

반면 지금은 서방국가의 지원이 아니라 제재가 언제 끝날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외부제재 속에 최근 1년 사이 러시아 외환보유고는 18% 감소했다.

서방의 제재가 지속된다면 더 큰 폭의 외환보유고 감소 가능성이 존재한다.

유가 하락과 함께 러시아 정부가 서방과의 갈등에 대한 강경자세를 지속할 경우 내년 글로벌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요인이 될 전망이다.

실물경기 연관성은 낮지만 한국에 대한 금융시장 영향도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 금융기관들의 대 러시아 익스포져는 21억6000달러로 전체 익스포져의 1.6%를 차지한다. 2013년 대 러시아 수출은 111억원 달러로 전체 수출에서 2%를 차지한다.

다만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의 경우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자동차(10.5%), 건설광산기계(9.5%), 냉난방기(7.5%), 고무제품(6.0%) 등 적지 않다.

미국 경기회복 수혜를 누리고 있는 이들 제품 수출 확대에 일부 부담이 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