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

▲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

신용카드와 체크카드가 주요 지급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2분기 국내에서 신용·체크카드를 이용한 물품 및 서비스 결제금액은 약 297조원에 달해 민간최종소비지출의 80.2%를 차지한다.

GDP대비 신용판매 금액 비중을 비교해도 2012년 기준으로 44.7%에 달한다. 이는 국제결제은행 지급결제제도위원회에 가입한 23개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카드산업은 외형적으로 단시간 내 크게 확대됐다. 하지만 국내 카드사들의 경쟁력은 비자, 마스타카드 등 국제 카드사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9개 카드사(롯데·비씨·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카드 및 NH농협은행)들이 경쟁함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못할 뿐 아니라 정부의 적극적 지원정책에 따라 산업발전이 이뤄짐에 따라 경쟁력을 향상시킬 인센티브가 낮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 카드사들은 카드회원에게 연회비 면제, 포인트 제공, 무이자할부, 주유소·극장·식당 할인 등의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제공하며 자사의 카드를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반면 가맹점 확보를 위한 경쟁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연매출 2400만원 이상의 사업자들은 신용카드 가맹점에 사실상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카드사들은 사업자를 대상으로 카드를 취급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없으며 가맹점 관리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해 왔던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카드가맹점 모집을 밴(VAN)사가 담당하고 있는데, 신규 사업자가 점포를 개설할 경우 밴사는 9개 모든 카드사에 대한 가입신청을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해줌에 따라 카드사들이 큰 불편 및 비용부담 없이 가맹점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카드사가 밴사에게 카드 가맹점 관리를 거의 전적으로 위탁함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도 여러 가지다.

첫째, 카드사의 카드시스템 효율화 정책이 밴사의 협조미비로 추진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일찍이 카드사는 매입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카드 결제 시 전자서명기기로 고객의 서명을 직접 전송받을 수 있는 시스템(DECS)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가맹점의 단말기를 전자서명기기가 있는 단말기로 교체해야 하지만 밴사들은 이 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수수료 수입의 감소를 우려해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

둘째, 전자통신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카드사가 밴사에 위탁해 온 업무 변화가 없어 밴수수료의 합리적인 조정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카드사는 밴사에 대해 승인 및 매입 건당 일정금액을 수수료로 지불하고 있는데 카드 거래 건수가 과거에 비해 크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건당 수수료가 크게 인하되지 않음에 따라 수수료 수준의 적정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밴수수료의 수입 상당부분이 대형 가맹점에 리베이트성 자금으로 제공되는 것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셋째, 카드 데이터 보안의 취약성이다.

신용카드 결제는 관련 참여자가 많아 고객 및 결제 정보의 전달·보관·이용과정에서 관련 정보가 유출될 위험이 매우 높다.

밴사의 경우 승인 및 매입업무를 대행함에 따라 고객의 결제관련 정보가 전달되거나 저장 및 이용되는 과정에서 해킹 등을 통한 정보유출의 위험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9개 카드사들이 카드결제 관련 고객정보 보안을 밴사에 의존하고 있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카드사의 가맹점관리 개선방안은 단기와 장기 두 가지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으로 카드사들은 전자통신기술의 발전상황을 고려해 그동안 밴사에 위탁해 왔던 업무들을 검토해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먼저 카드사들은 가맹점으로부터 카드 전표 매입 요청을 받는 대신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거래승인 데이터를 이용해 가맹점의 청구데이터를 직접 만드는 EDC방식을 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EDC방식은 가맹점 또는 밴사의 별도 청구 작업 없이도 카드단말기를 통해 발생한 카드승인거래 데이터를 기준으로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이용하면 카드사가 카드전표 매입 없이도 신용카드 거래승인 시점에 발생된 가맹점 실적을 근거로 가맹점에 결제대금을 입금해 줄 수 있게 된다.

밴수수료 조정과 관련해서도 밴사가 수행해왔던 업무를 재조정해야 한다.

현재 밴수수료는 승인수수료와 매입수수료로 구분돼 있는데 이는 카드사가 밴사에 위탁한 모든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대한 대가다.

따라서 카드사가 밴사에 위탁한 업무를 재조정한 후 적정 수수료 지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카드사들은 국제 신용카드 보안기준인 PCI SSC 인증을 받거나 인증이 불가능한 경우 PCI SSC를 고려한 카드 고객정보 보안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9개 카드사로 구성돼 있는 국내 카드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개선해야 한다.

우선 비자, 마스타카드 등과 같이 신용카드 매입사와 발급사를 분리해 매입사로 하여금 가맹점을 전담해 관리하는 4당사자 카드시스템의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신용카드 네트워크를 1~3개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

또는 현재의 3당사자 카드시스템을 유지하는 가운데 가맹점 공동이용제를 활성화해 가맹점의 협상력을 강화시키는 방안이 있다.

향후 이러한 방법 등을 통해 가맹점 시장이 경쟁적이 될 경우 가맹점들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카드사를 선택하게 됨에 따라 가맹점 확보 경쟁이 생겨나고 이를 통해 가맹점 관리 역량 및 국제적 경쟁력도 크게 제고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