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룡 위원장 가계부채, 진정 금융권 문제인가?
윤종규 행장 ‘우문현답’, 지나친 말 줄임 아쉬워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3.29. 지주회사 회장 및 은행장에게 보낸 임종룡 금융위원장 문자

"많은 어려움에도 묵묵히 감당해준 은행 임직원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조 증액이 부담스럽다는 것을 잘 알지만 가계부채는 금융권이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입니다. 국가 정책에 대한 넓은 이해를 부탁드리고, 직원들에도 격려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4.1. KB국민은행 윤종규 행장 직원 조회사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대출시장 수익성 악화, 계좌이동제 시행 등의 환경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은행 경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우문현답)”, “아래로부터 ‘보텀업’ 방식의 점포 운영체계 정착이 리딩뱅크 위상을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많은 선배들의 일처럼 ‘한 번 마음먹으면 반드시 이루어 내는 것’이 KB국민은행의 진짜 저력입니다"

4.1. 조용병 신한은행장의 창립 기념사

"흔들림 없는 리딩뱅크의 위상을 확립하고 월드 클래스 뱅크의 기반을 구축하고 신한문화의 창조적 계승 및 발전을 위해 ‘G.P.S. Speed-Up’전략을 추진하겠습니다”, “글로벌 마인드와 역량을 바탕으로 신한만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복잡하고 다양해진 고객 및 시장의 니즈에 따라 치밀한 전략과 디테일한 실행으로 경영활동 전반의 속도를 높여 나갈 것입니다”, “은행의 미션인 미래를 함께하는 따뜻한 금융을 더욱 가속화해 고객과 은행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 관계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3.27 이광구 우리은행장 주총 기념사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성공적인 민영화를 달성하겠습니다”, “우리은행은 항상 다른 은행보다 반발짝 앞서나간다는 영선반보(領先半步)의 자세로 올해 금융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입니다”, “올해 경영목표는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시장에서 우리은행의 강한 경쟁력을 이어 받아 다음 민영화 추진과정에서는 반드시 성공적인 결과로 고객과 주주, 국민들에게 보답하겠습니다"

금융위원장의 문자에 어느 지주회사 회장도, 그리고 은행장도 싫어할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계부채는 금융권이 해결해야할 국가적 과제입니다’라는 문장에 동의할 경영진들이 있었을까?

11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의 문제는 디플레이션 상황을 우려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원칙적으로는 여신을 일으킨 개인의 책임이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가계부채의 문제가 금융권이 해결해야할 과제로 규정되었다.

앞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부채의 책임여부와 관계없이 지주회사 회장 및 은행장들은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국가적 과제는 청와대와 정부가 해결해야할 정책들을 의미한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가용한 예산을 세우고 집행하는 곳이 그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사청문회에서도 조심스럽게 답변했던 안심전환대출 문제가 왜 폭탄처럼 터지고 만 것일까? 이유는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다만 초저금리 시대에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의 생존전략 등에 대한 금융위원장의 행보가 먼저였으면 하는 마음은 가시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윤종규 KB국민은행장의 조회사(#2)는 현실감이 있다. 긴장감이 감지되고, 주어진 문제를 같이 해결하고자 하는 CEO의 고뇌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명쾌한 메시지가 ‘우·문·현·답’이란다. 문장은 줄일 수 있는 대로 줄이는 것이 미덕이다.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는 말을 줄이는 바람에 국민은행의 긴장감은 우화화되고 말았다.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창립식사(#3)에 걸맞은 이야기를 했다. 은행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 그리고 그 전략 구현을 위한 행동방침까지 매우 전략적이다. 말의 어려움은 함축적 메시지를 담기 위한 노고 정도로 이해해도 될 것 같다.

그런데 그 전략에서 왜 은행장이 고객에게 강조하고 싶었던 ‘따뜻한 은행’이라는 가치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은행의 세부 전략은 모두 현재 은행들이 행해야 할 내용들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은행의 미션을 고민한 흔적은 전략에서 보이지 않는다. “복잡하고 다양해진 고객 및 시장의 니즈”라는 말에서 따뜻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의 지난달 27일의 주총 축사(#4)는 민영화에 대한 고민이 농축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겸손하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현재 상황을 단지 반보만 앞서서 타개할 수 있는 것일까? 상황이 겸손을 부른 것은 이해되지만, 현실이 느껴지지 않는다.

1%대의 초저금리라는 현재의 영업 기준은 국내 은행들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다. 게다가 안심전환대출로 4000억원 정도가 수익에서 사라질 상황이다. 수신을 유치하기 위한 유인도 별달리 없다.

연말 상황을 미리 예측할 필요는 없겠지만, 은행 및 금융지주사들의 실적은 명약관화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은행권의 비공식적인 중국 노크가 더 이상 비정상이 아닌 상황이 될 것 같다. 일부 은행의 경우 비상계획으로 추가 조달할 자본의 출처를 중국으로 보고 대비하고 있는 흔적도 감지된다. 그래서 위태롭기만 하다.

몇 마디 말로 화자의 고뇌를 다 담을 수 없을 것이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지만 지난주 금융권의 주요 인사들의 발언에서 느낀 점은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는지에 대한 생각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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