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과거 우리나라의 금융시스템은 압축 성장에 필요한 금융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하는데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고령화에 따른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는 기존 조달측면의 금융중개 역할이 크게 약화되고 대신 은퇴 후 적정한 소비를 위해 급속하게 늘어나는 연금자산의 운용능력을 제고할 수 있는 운용측면의 금융중개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금융시스템은 기존의 ‘건전성’ 관점을 넘어 고령화·저성장과 같은 경제환경의 근본적인 변화 속에서 ‘효율성’ 관점의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본지는 고령화·저성장 시대의 금융의 역할과 고령화사회에 먼저 진입한 일본의 사례를 차례로 살펴보며 국내 금융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진다.

턱없이 낮은 금융자산…노후생활에 직격탄
국내 가계의 자산은 금융위기 후에도 꾸준히 증가해 2012년 말 GDP의 7.7배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자산만 증가했을 뿐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기엔 구조적으로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가계 자산은 크게 금융자산과 비금융자산(실물자산)으로 구분된다.

금융자산은 은행, 증권, 보험사 등 금융기관이 취급하는 저축, 투자, 보험 ‘금융상품’과 전월세보증금, 권리금 등 ‘기타금융상품’을 의미한다. 비금융자산(실물자산)은 주택, 토지, 건물 및 상가 등 ‘부동산’과 귀금속, 그림, 자영업자 설비, 재고자산, 건설 및 농업용장비, 동물, 식물 등 ‘기타 실물자산’을 포함한다.

국내 가계 자산 구조를 살펴보면 가장 먼저 총자산 대비 금융자산의 비중이 매우 낮은 점이 눈에 띈다.

국내 가계의 총자산 대비 금융자산 비중은 34.3%로 일본 60.2%, 미국 70.4%, 유로존 58.3%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특히 이 비중은 고연령일수록 뚜렷이 낮아져 노후생활의 유동성 문제가 예견될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치가 급락할 경우 실물자산 비중이 높은 고령자의 소비생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부동산 버블이 절정에 이른 1990년만 해도 실물자산의 비중이 63%를 넘지만 이후 지속적인 부동산 버블 붕괴로 2001년 29% 수준으로 하락했다가 현재 40% 수준까지 회복한 상태다.

금융자산 중 저수익성 안전금융자산 비중이 높은 점도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 노후를 보장할 수 없는 자산구조다.

우리나라(72.4%)와 일본(79.8%)은 원금손실 위험이 거의 없는 ‘현금과 예금’, ‘보험 및 연금’ 등 안전 금융자산에 대한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국내 은행 정기예금 중 단기(6개월~1년) 비중은 금융위기 당시 56.4%까지 올라간 이후 여전히 55%가 넘는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현금과 예금은 12.5%, 보험 및 연금이 31.1%에 불과하고 금융투자상품 비중이 53.5%를 차지한다.

정기예금 금리가 실질 실효금리 제로 또는 마이너스 상태를 보이고 있으며 보험도 이자가 없는 보장성 보험 비중이 크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등 사적 연금 또한 수익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 같은 안정성 금융자산의 집중은 노후 자산을 축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전문가 통한 간접투자가 안정성 높인다
국내 보험 및 연금 비중 또한 대부분 생명보험에 가입된 상태로 ‘사적연금’ 비중이 매우 낮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사적연금은 퇴직 후 안정적 삶을 위한 기업지원의 ‘퇴직연금’과 개인의 은퇴 후 삶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개인연금’으로 구분된다.

국내 가계 금융자산에서 사적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1%(2012년)로 OECD 평균 16.3%보다 크게 낮은 수치다.

비교적 건실한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9.6%로 OECD 평균 40.6%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사적연금까지 포함한 총연금의 소득대체율(45.2%)을 살펴보면 OECD 평균 65.8%보다 20%나 낮아 노후 소득보장 문제가 예견되고 있다.

금융투자자산에서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 상품의 비중이 낮은 점도 눈여겨봐야 할 사항이다.

현재 국내의 금융투자 자산은 주식, 채권 등 직접투자상품의 비중이 높고 펀드 등을 통한 간접투자 상품의 비중은 12.9%로 미국(22.8%), 일본(32.2%), 유로존(25.2%)의 수치와 비교된다.

이렇게 금융투자 자산 가운데 직접투자 비중이 큰 상황은 자칫 노후생활의 안정성을 위협받을 수 있으며 이는 구조적으로도 노후생활에 적합하지 않다.

고령화에 적합한 ‘월지급식 펀드’의 비중 또한 아주 적어 2012년 말 조사된 국내 월지급식 펀드수는 89개, 운용자산총액은 1조6000억원 수준으로 전체 펀드수와 운용자산 총액의 0.8%와 0.5%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2000년대 들어 초저금리·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면서 월지급식 펀드가 꾸준히 성장했다. 일본의 월지급식 펀드는 20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성장해 2011년 말 일본 공모추가형주식펀드(ETF 제외) 순자산액의 76%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전문연구위원은 “중년층 및 노년층의 경우 은퇴 후 오랜 기간 일정 수익을 추구함과 동시에 안정적인 채권, 펀드, 연금 등 장기 안전 금융상품을 선호한다”며 “지금과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특히 자산형성과 운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산을 건전하게 운용하려고 하기보다는 전문가에 의한 간접운용이 권유된다”고 조언했다.

정부·금융社·가계 ‘3박자 맞아야’
이렇게 국내 가계 자산 구조는 고령화 시대에 상당히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총자산 중 높은 실물자산 비중은 고령화 가계의 유동성 문제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치가 급락할 경우 고령자의 소비생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또 예금 및 보험에 집중되고 있는 저수익성 금융자산은 노후를 위한 자산 증식을 어렵게 만들고 있으며 특히 최근 저연령층의 전월세 보증금 부담이 높아지면서 저연령층의 금융저축 여력이 약화되면서 고령화에 대비한 자산축적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매우 낮은 사적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의 비중도 향후 노후보장소득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상당수 가입돼 있는 보장성 보험의 경우 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자산화되지 않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에서 가계 자산이라 할 수 없다.

게다가 금융투자상품 비중 자체는 주요국과 비교해 낮지 않지만 직접투자 비중이 큰 국내 자산구조에서 가격변동 위험이 커질 경우 노후생활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국내 펀드의 경우 매월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고령자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형태가 아니며 대부분 단기 수익률을 목표로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정부, 금융기관, 국민 각 경제주체들이 적절한 가계자산 정책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는 가계 실물자산의 가치를 유지시키는 동시에 급격한 부동산 시장 침체를 방지하는 한편 가계 실물자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 금융기관들이 정부(주택금융공사)의 주택연금뿐만 아니라 주택 등 실물자산을 금융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장려하고 저연령층의 저축 증대를 위한 전월세 부담을 완화해 저축여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대책 또한 마련돼야 한다.

금융기관은 고령화에 따른 개인금융자산 시장의 변화에 대비해 신상품을 개발하고 고령자들을 위한 자산관리 기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특히 노후 준비를 고려하고 있는 40대 미만의 투자성 상품 요구가 증가하고 각종 가격 변수들의 변동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다양한 자본시장 관련 신상품을 개발하고 그들이 총체적으로 노후자산을 관리할 수 있는 자산관리기능 강화의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가계 또한 노후를 대비해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

지나친 실물자산이나 예금 위주의 금융자산 등에서 탈피해 펀드, 사적연금 등 노후생활에 적합한 금융상품을 적절히 배합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다. 또 금융투자상품 투자도 직접투자보다는 리스크 관리 장치가 보완된 간접투자가 바람직하다.

박덕배 연구위원은 “정부는 고령화에 대비해 장기 간접투자상품 개발을 촉진할 수 있도록 장기보유펀드에 대한 세제지원을 강화하고 금융기관들은 노령자들의 노후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개인연금, 펀드 등 고령화 금융상품의 수익성을 제고시킬 필요가 있다”며 “국민들도 고령화에 대비해 지나친 실물자산 및 예금 위주의 금융자산에서 탈피해 사적연금, 펀드 등의 상품을 적절히 배합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