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 중국통상학과 최필수 교수

▲ 세종대 중국통상학과 최필수 교수

한국은 2013년 말부터 AIIB에 가입해 달라는 러브콜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경제부처 실무선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반면 고위층에서는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신중한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0월, 동남아 아세안 국가들과 인도 및 중동 국가들이 중심이 된 이른바 핵심 21개국이 AIIB 창립 선언식을 할 때도 한국은 빠져 있었다.

결국 한국은 2015년 3월 말 뜻밖에도 영국이 참여선언을 하고 전세계적으로 AIIB가 흥행 돌풍을 일으킨 이후인 4월 11일에야 가입 승인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가 아시아 역내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호주까지 가입한 상황에서 한국의 지분율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많이 늦어진 AIIB 가입 이후 한국은 어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가?

흔히 언론에서는 AIIB 가입에 따라 AIIB가 발주하는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해 우리나라 기업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히 중요한 요소이다. 어느 나라건 국제기구에 돈 내고 가입을 할 때는 그 기구에서 발주하는 사업의 대상으로서 혹은 참여 파트너로서 이익을 얻길 기대한다. 더구나 국내 건설 인프라 투자가 거의 끝나가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건설사들을 부양하기 위해서라도 국제 수주 기회를 많이 확보할 필요가 있다.

AIIB가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이에 참여하는 것은 애초에 무엇을 고민했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와 별도로 ‘동북아 개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병행돼야 한다.

한국은 박근혜 정부 들어 동북아개발은행(NEADB) 설립을 다시 주창하고 있는데, AIIB 설립 및 가입이 이에 대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동북아개발은행이 ADB 체제에서 무시돼 온 오래된 이슈이지만, 한국이 스스로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접어버리기에는 나름대로의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

ADB는 아시아 지역의 개발 이슈를 독점하고 있었지만 투자 집행액은 소요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특히 동북아 지역에 대한 자원 배분에 인색했다.

ADB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총 413개의 프로젝트에 대해 약 249억 달러, 즉 연평균 약 62억 달러를 집행했다. 이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인프라 투자 소요액이 8조 달러라고 ADB 스스로 분석했던 것에 비하면 너무 적다. 게다가 ADB의 주요 관심 지역은 동남아·남아시아·중앙아시아로, 이 세 지역에 대한 지출액 비중은 각각 29.5%, 28.6%, 22.4%인 반면 동북아에 대한 비중은 5.2%에 불과했다.

중국의 동북(東北)과 극동 러시아는 자국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빈곤한, 개발의 이니셔티브를 필요로 하는 지역이며 북한은 불합리한 거버넌스에도 불구하고 인프라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한 나라이다. 군사적 목적이 아닌 순수한 사회 인프라 투자를 적절히 진행한다면 그 자체가 거버넌스의 개선과 동북아 지역의 번영으로 이어질 소지가 크다. 특히 동북아 지역은 ‘북중러’, ‘남북중’, ‘남북러’ 등 다양한 단위의 다자간 협력이 시도되고 있는데 만약 국제 금융기구의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이러한 시도들은 훨씬 더 활성화 되고 이 지역의 개방과 번영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동북아개발은행에 찬성하는 한국과 중국의 역량만으로는 일본과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를 전향시킬 수 없었으며 이들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서 소외시킬 수도 없었다. 저개발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금융의 특성상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높은 신용등급의 정부가 나서야하기 때문이다.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이러한 고착상태에서 중국의 AIIB 설립은 현 상황을 깨뜨릴 수 있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거대 규모의 지역개발은행이 아시아 지역에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AIIB가 동북아 지역 인프라 구축에 일정 지분 이상의 자원을 할당한다면 독립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필요성은 사실상 해소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특히 ADB가 빈곤감소라는 세계은행 체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고, AIIB가 인프라 구축이라는 목적에 특화한다면 두 은행은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특히 빈곤보다 인프라의 미비가 문제가 되는 동북아 지역이라면 ADB의 우산 아래서보다 AIIB 아래에서 더 얻을 것이 많다.

AIIB에 동참한 상황에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주장하고 있는 한국 정부에게는 AIIB의 자원 중 적정량을 동북아 개발에 배정받거나 AIIB와 동북아개발은행의 공존을 추진하는 두 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다.

만약 AIIB가 동북아에 대해 충분한 투자 지분을 약속하고 그 운용도 동북아 역내 국가들과 충분히 협의하여 진행한다고 보장한다면 두 번째 옵션은 해소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언론에 드러나는 바에 따르면 AIIB의 주된 관심 지역은 일대일로 지역, 즉 육상 실크로드의 중앙아시아와 해상 실크로드의 동남아이다. 즉 중국의 관심을 동북아로 돌릴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동북삼성의 지방정부와도 협력 채널을 구축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한중 양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에 있어 역내 최대 경제대국이자 가장 많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일본은 없어도 중국은 있어야 한다.

한편 AIIB의 설립 및 운용에 있어서도 낮은 비용으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높은 신용등급의 회원국이 필요한데 한국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은 중량감 있는 G20 회원국이면서, 홍콩·싱가포르와 다른 비(非)중화권 국가라는 점에서 경제적·외교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만약 한국이 좀 더 일찍 AIIB에 가입했더라면 중국을 상대로 더 큰 레버리지를 활용할 수 있었겠지만 한국이 지닌 이러한 특성은 사라진 것이 아니므로 앞으로 이를 지혜롭게 활용해야 한다. 결국 한국과 중국 정부는 각자 염두에 두고 있는 동북아개발은행과 AIIB를 위해서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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