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협상안 수용 여부에 대한 찬반투표

민심 요동치며 대규모 거리 시위 이어져

<대한금융신문=김민수 기자>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채무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그리스는 선진국 중 처음으로 IMF 채무를 갚지 않은 나라라는 오명을 얻게 됐다.

그리스 정부는 오는 5일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국제 채권단이 제안한 협상안 수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 투표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IMF 역사상 첫 채무 불이행 선진국
IMF 게리 라이스 대변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그리스가 약 15억 유로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IMF는 그리스를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아닌 ‘체납’으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에 빠졌다고 해석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도 이번 사태를 공식적인 디폴트로 보지는 않았지만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일제히 하향조정했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는 그리스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정크)등급인 ‘CCC-’로 한 단계 낮췄으며, 피치(Fithch)도 ‘CCC’에서 ‘CC’로 내렸다. S&P는 그리스은행, 알파뱅크, 유로뱅크 에르가시아스, 피레이우스뱅크 등 4대 은행의 신용등급도 ‘CCC’로 내렸다.

디폴트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리스에서는 이미 뱅크런(Bank run,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의 4대 은행은 오는 7일까지 영업점 문을 닫고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의 예금인출 한도를 1인당 하루 60유로로 제한했다.

이 중 유로은행(Eurobank)은 지난달 중순까지만 300억 유로 가량의 예금이 인출됐으며, 현재 유럽중앙은행(ECB)의 유동성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런 사태가 심화되자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TV생중계 연설을 통해 국민들에게 “(채권단의) 구제금융 단기 연장안 거부가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가용 유동성을 제한하는 ECB의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그리스 중앙은행이 은행 영업중단과 예금인출 제한 조치를 요청하게 됐다”며 예금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리스 사태 분수령, 국민투표 결과 주목
그리스의 운명을 가를 국민 찬반투표가 오는 5일 실시된다. 이번 투표는 채권단이 제시한 협상안에 대한 국민들의 수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마련됐다.

치프라스 총리는 “구제금융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긴축의 고통과 위기 상황이 이어지길 바라는 한통속이다. 반면 ‘반대’표를 내는 것은 더 좋은 협상을 위한 결정적 발걸음이될 것”이라며 반대표를 호소했다.

전문가들은 치프라스 총리의 바람대로 국민들이 협의안에 반대할 경우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찬성할 경우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어 총리 사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고, 채권단이 시키는 대로 또다시 긴축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국민투표 이후에도 진짜 위기는 남아있다.

그리스는 오는 20일까지 ECB에게 진 빚 35억 유로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ECB에 대한 디폴트는 IMF에 대한 디폴트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현재 그리스 은행들이 ECB의 긴급유동성지원(ELA)을 통해 뱅크런을 견뎌내고 있는 만큼 ECB에 빚을 갚지 못하면 생명줄이 끊기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잠수함 속의 토끼 없던 그리스
그리스는 어떠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경제몰락을 부유층의 탈세 등 만연한 부정부패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그리스에는 잠수함의 산소 부족을 알려주며 죽는 토끼처럼 내부의 위험을 알려주는 존재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 그리스의 탈세 행위는 유명한 수영장 일화에서 알 수 있다.

일광욕을 유달리 좋아하는 그리스인들은 집 앞마당의 수영장을 부유함의 상징으로 여긴다. 개인의 집에 수영장을 가지고 있으면 한해 세금으로 500유로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 수도 아테네 북쪽에 위치한 대표적인 부유층 지역 에칼리 교외에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진신고한 사람은 324명뿐이었다.

하지만 한 공무원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구글 어스의 위성사진을 이용해 세어본 에킬리 교외 파랑색 수영장은 1만697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는 탈세, 청탁 등을 할 때 무조건 돈봉투를 내미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있을 만큼 뇌물을 주고 받는 일이 빈번하다고 알려져 있다.

미 브루킹스 연구소에서도 연간 그리스 GDP의 8% 가량인 200억 유로 가량이 탈세와 부패로 사라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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