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아이젠하워, 오기처럼 동고동락형 소통 행보

▲ KB손해보험 김병헌 사장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한 상에 앉아 같이 밥을 먹는다는 뜻에서 가족을 ‘식구(食口)’라 일컫는 것처럼, 직원들과 함께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가운데 모두가 한 가족, 한 식구라는 생각이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KB손해보험 김병헌 사장이 지난해 10월부터 일주일에 두세 차례,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원들과 도시락 미팅을 갖고 있다. ‘CEO런치소리통’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을 보면 ‘밥 한 끼’보다는 ‘한솥밥’에 더 많은 방점을 찍은 듯 보인다.

“식당에 오고 가느라 시간이 걸려 밥만 먹고 끝나는 것보다, 직원들과 가볍게 도시락도 먹고 서로 개인적인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김 사장의 말에서 ‘식구’라는 단어가 갖는 감성을 중요시하는 그의 태도가 엿보인다.

LIG에서 KB금융그룹으로 최근 소속이 변한 조직원들의 마음을 아우르고자 하는 김 사장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이와 함께 ‘한솥밥’ 이미지를 보다 강화하기 위해 우수성과를 낸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단을 1개소씩 선정해 매월 방문하는 ‘우수지역단 방문’ 행사를 갖고 있다. 그리고 CEO가 항시 조직원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기 위해 사내방송을 통해 설계사들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기도 한다. 도시락소통이 미처 커버하지 못하고 있는 영역까지 레이더를 넓혀서 소통의 폭을 확장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김 사장의 행보를 보면 2차 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아이젠하워 장군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젠하워의 동고동락
“병사들은 지휘관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병사들은 한 번의 눈길만으로도 사령관이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는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이젠하워 장군의 회고록에 담긴 내용이다. 그래서 그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된 후 더 많은 병사를 만나기 위해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의 1/3을 부대 시찰에 할애했다.

물론 아이젠하워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이런 일정을 마련한 것은 아니다. 지휘관 방문 시 통상적으로 펼치는 부대 사열이나 훈시 등을 일체 하지 않고 기자도 동행하지 않은 것만 보더라도 그의 취지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 지 확인할 수 있다.

아이젠하워가 기대하는 가치는 병사들이 지휘관들도 같이 동고동락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만들어 사기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병사들과 같이 거친 밥을 먹고, 야전의 불편함을 감수한 지도자는 동서고금에 여럿 존재한다.

#한니발, 오기, 척계광
리비우스의 《로마사》에는 로마를 위기에 몰아넣었던 카르타고와 그 도시의 명장 ‘한니발’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로마시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한니발, 그는 동고동락 리더십의 대명사라 불릴 정도로 모든 것을 조직원들과 함께 했다.

“추위나 더위도 그는 묵묵히 참았다. 병사의 것과 똑같은 내용의 식사도 시간에 맞춰서가 아니고 공복이 느껴질 때만 먹었다. 잠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혼자서 처리해야 할 문제가 끊이지 않았으므로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처리하는 것이 항상 우선이었다. 그에게는 밤낮의 구분조차 없었다. 잠이나 휴식이 부드러운 침대와 평온함을 의미하지 않았다.”

로마의 역사가인 리비우스가 적국의 장수에 대해 쓴 글이다. 2차 포에니 전쟁 당시 칸나에 전투를 통해 완승을 거두고자 했던 로마의 입장에서 원정군 카르타고는 기대 이상의 분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들처럼 시민들로 구성된 군대가 아니라 용병인 카르타고군의 기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그 이유를 리비우스는 위 문장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리고 당시 카르타고군의 병사들은 “나무가 그림자를 만들어 놓은 땅바닥에서 병사용 망토만 두르고 잠을 자는 한니발의 모습은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병사들은 그 곁을 지날 때면 무기 소리만 나지 않게 주의했다”고 리비우스는 적고 있다. 카르타고 군의 병사들의 눈에 자신들과 동고동락하는 최고사령관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2대 병법서로 꼽히는 《오자》를 쓴 오기 또한 동고동락형 지도자에서 빠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부하와 물 한모금도 나눠 마시고 밥 한 톨도 아껴먹었다. 종기가 난 병사의 고름을 빨아내는 등 그의 격의 없는 행동은 사마천의 《사기》에 전하는 어느 병사의 어머니의 눈물로 유명하다.

“지난번에는 장군이 제 남편의 종기를 빨아주었는데 그 싸움에서 남편은 용맹하게 앞장 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이번엔 아들이 말려도 앞장서 싸울 것이고 그러면 전사할 것이니 울지 않을 수 있습니까?”

명나라 장수 중 왜구의 천적으로 알려진 척계광은 어느 마을을 지날 때 존경의 뜻으로 주민들이 방을 비워주었는데 완곡히 거절하며 아래처럼 말했다고 한다.

“밖에는 천여 명의 병사가 비를 맞고 있는데, 어찌 나 혼자 편하게 쉴 수 있겠습니까?”

강한 군사훈련과 엄한 군 기강을 강조한 척계광 또한 부하가 병에 걸리면 몸소 약을 다려 간호하고, 부하의 집안 형편이 어려우면 자기 돈을 들여 도와주는 등 병사들과 매 순간 함께한 장수로 유명하다.

#맹자의 ‘여민락’
맹자는 정치지도자의 자질 중 ‘여민락(與民樂)’을 강조한다. 이는 같이 즐기고 같이 고생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성과에 대한 보상 및 그 쓰임새와 관련한 ‘여민해락(與民偕樂)’과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자세가 치세의 기본이라고 강조한다.

여민해락과 여민동락은 모두 ‘백성과 함께 즐거워한다’라는 뜻이다. 예컨대 세금을 거둬들여 사용함에 있어, 임금이 백성과 함께 즐거울 수 있도록 사용해야 함을 말한다. 반대로 ‘독락(獨樂)’은 임금 혼자만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같은 지도자는 백성들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KB손보 김병헌 사장이 직원들과 점심 도시락을 먹는 것을 맹자의 ‘여민락’까지 인용하며 비유하는 것은 ‘밥 한 끼’가 아니라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는 기업문화를 만드는 자세가 ‘여민락’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아이젠하워처럼 자주 노출하고 ‘한솥밥’을 먹으면서 그는 동고동락의 리더십을 펼쳐야 ‘여민락’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KB손보를 KB금융그룹의 어엿한 식구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김 사장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여민락’을 통한 소통행보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래야 실적이 보상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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