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한국의 퇴직연금은 현재 지배구조상 모두 계약형 퇴직연금으로 운용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난해 8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계약형 퇴직연금의 문제점을 개선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을 주요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될 경우 기존 계약형 제도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이 크게 개선될 수 있게 될까. 기금형 연금의 장단점과 해외사례 분석을 통해 국내 도입 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기금운영위원회 구성해 제3자에 연금운용 위탁
퇴직연금의 지배구조는 크게 ‘계약형’과 ‘기금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퇴직연금제도는 계약형에 해당된다.

계약형 퇴직연금제도는 사용자(기업)가 직접 퇴직연금사업자(금융회사)와 계약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운용과정의 단순함과 비용 절감을 이유로 계약형 지배구조를 선택했다.

반면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노·사·외부전문가 3자가 기금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연금을 위탁 운용하는 방식이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합의를 통해 회사와 별도로 독립된 퇴직연금 기금을 신탁형태로 설립하고, 회사와 독립적이며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수탁자를 선정해 연금 운용을 맡기는 형태다.

일반적으로 의사결정의 최고 기구로 이사회를 두고 있으며 이사회 지원을 위해 아래에 사무국과 소위원회를 두고 있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장점은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회사와 독립돼 있어 수급권이 보장되며 △수탁자가 금융관련 전문가로 선정돼 적극적인 자산운용이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금형은 계약형에 비해 인력 확보, 시스템 구축 등에 많은 비용이 소요되며 퇴직연금 사업자의 사업성 악화로 사업을 축소하는 곳이 증가할 수 있다.

수익성 악화로 대형사까지 퇴직연금사업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기금형 도입은 이런 분위기를 더욱 조장할 수 있으며, 손해를 보면서까지 퇴직연금 역량 강화를 위해 기울여 온 노력이 사장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해외 기금형 연금, 경쟁 유도해 자본시장 활성화
호주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호주의 퇴직연금펀드 자산규모는 1992년 말 1422억 호주달러에서 2013년 말 1조7020억 호주달러 수준으로 증가했다.

호주의 퇴직연금 지배구조는 기금형이 대부분으로 지난 2005년 7월부터 ‘기금선택제’를 도입했으며 기금의 구조는 신탁 구조로 돼 있다.

기금선택제의 유형은 기업형기금, 산업형기금, 공적기금, 소매형기금, 소형기금 5가지로 나뉘는데 가입자에게 다양한 선택의 폭을 제시해 연금 간 경쟁 구도를 조성한다. 가입자에게 운용지시권을 부여해 기금을 선택하도록 하고 1년 단위로 기금 변경 또한 가능하게 만들어 각 기금이 더 나은 성과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호주는 이 같은 기금형 지배구조로 퇴직연금에 대한 근로자의 통제수준과 소유의식을 높이고 퇴직연금시장의 경쟁을 통해 자본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가 퇴직연금제도 도입 시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은 일본의 기업연금은 기금형과 규약형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일본의 기금형 제도는 모기업과 별개의 법인격인 기업연금기금을 설립하고 연금규약에 기초해 연금자금을 관리·운용하며 연금 급부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규약형은 우리나라의 계약형과 유사한 개념으로 노사가 합의한 연금규약을 기초로 생보사, 신탁사 등 기업과 금융회사가 계약을 체결하고 모기업의 사외에서 연금자산을 관리 운영해 연금급부를 지급한다.

일본의 기금형 기업연금은 기금의 업무활동을 위해 대의원회·이사회·감사로 구성된 3개 기관과 기금의 사무처리를 위한 사무국을 별도로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대의원회는 기업연금기금 운영의 중요사항을 결정하는 핵심의결기관이며 이사회는 이사로 구성된 기금의 집행기관이다. 감사는 기금 운영이 장기적으로 건전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자기감사를 시행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최근 일본에서는 이러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에 대해 수탁자 책임의 명확화와 수급권 보호문제 강화 등의 이슈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2012년 저소득 근로자로 구성된 연기금이 위탁한 약 2000억엔의 운용자산을 운용사(AIJ투자자문)가 불법 운용해 원금의 90%가 손실된 사건이 발생하며 이에 대한 보완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계약형 위주 시장 전면적 기금형 도입 부작용 우려
지난해 8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정부는 정책 방안의 하나로 기금형 퇴직연금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 확대, 근로자 수급권 강화, 자산운용 규제 완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 도입 등 4가지 목적이 핵심 과제로 기금형의 도입에 따라 현행 계약형 퇴직연금제도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점들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기금형 도입의 가장 큰 효과는 근로자의 자산관리 참여 확대와 취약한 근로자의 이익 보호장치 확충을 꼽을 수 있다.

기존 계약형 제도는 수급권자인 근로자의 자산관리 참여는 물론 외부 자산운용전문가의 참여 역시 제한적이었다. 또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려는 금융회사의 목적과 근로자의 이익 보호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계약형에서 사용자와 금융회사 간 발생할 수 있는 주인-대리인 측면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계약형에서는 사용자와 금융회사 간 이해관계와 금전관계에 의해 자산운용계약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퇴직연금 계약조건으로 대출금리 할인 요구 등 불공정 관행이 상존하는 주인-대리인 측면의 단점이 존재했다. 기금형으로 운영 시 이 같은 문제들이 보다 투명하게 운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금형 퇴직연금제도가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수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해야 하며 기금운용위원회를 효과적으로 구성하는 한편 이들을 감독할 수 있는 명확한 감독방안과 감독당국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 중 가장 시급한 부분은 전문적인 수탁 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수탁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 양성과 관리감독에 필수적인 연금계리사 등 사회적 인프라 확보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황원경 선임연구원은 “기금형 퇴직연금 운용위원회의 구성방식에 대한 고민과 함께 기금형이 비영리재단 형태로 운영되면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독당국은 관리감독 강화방안 또한 깊게 모색해야 한다”며 “계약형 중심으로 퇴직연금제도가 정착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전면적인 기금형 제도 도입은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는 시범적인 도입과 실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자료제공: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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