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2013년 의료기관별 전체 외래 진료비 중 비급여 비율.(단위: %).[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2013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대한금융신문=장기영 기자> #.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A씨는 최근 경미한 차량 접촉사고로 인해 물리치료를 받으러 집 근처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원에서는 보험 처리가 가능하니 6개월 이상 침이나 부항치료, 첩약 처방을 받으라고 권유했다. A씨는 체질상의 이유로 첩약을 거부했음에도 한의원은 임의로 첩약을 집으로 보냈다.

최근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의 한방 비급여 의료비 보장 여부에 대한 논란이 재점화된 가운데 일부 한방병(의)원의 이 같은 행태가 자동차보험에서 실손보험으로 확대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미 6년 전 정부와 금융당국, 보험업계 사이에 형성된 공감대에 따라 실손보험 보장 대상에서 제외한 한방 비급여 의료비 보장을 표준약관 개정으로 의무화할 경우 이를 악용한 사례가 급증할 것이란 지적이다.

표준약관 개정 보다 시급한 것은 한방 진료를 양방과 같이 표준화해 상품 개발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고 소비자를 현혹해 부당 보험금 수령을 부추기지 않는 한방 의료업계의 노력이라는 게 중론이다.

◆진료 표준화 없이 보험화 어려워

표준약관 개정 절차 없이도 개별약관을 이용해 한방 비급여 의료비 보장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보험업계가 손을 놓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손보험 표준약관이 제정된 지난 2009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당시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보건복지부는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의 실손보험 보장 내용이 서로 달라 소비자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반영해 표준약관을 제정했다.

이 과정에서 생·손보사 모두 한방 입·통원 의료비 중 급여 항목은 보장하고, 비급여 항목은 보장하지 않기로 했다.

의료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이 일부를 지급하고 나머지는 환자가 부담하는 급여와 환자가 전액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으로 나뉜다. 급여 중 건보공단이 지급하지 않는 나머지 금액과 비급여 의료비, 즉 환자 본인 부담액을 보장하는 보험이 바로 실손보험이다.

표준약관 제정 이전까지 손보사는 입원에 한해 한방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했으나, 도덕적 해이와 지급 청구 증가로 위험률 통제가 어려워 입·통원 모두 급여 의료비만 보장키로 했다.

이러한 결정에는 한방 비급여 의료비의 기본 체계 자체가 양방에 비해 미흡해 상품화가 곤란하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예로 한방은 진료 항목 및 행위의 세분화, 표준화가 부족하고 치료 목적을 구분하기 곤란하다는 게 손보업계의 주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따르면 한방 급여 행위 항목은 2295개로 양방 8만2002개의 2.8%, 한방 비급여 행위 항목은 16개로 양방 720개의 2.2% 수준이다. 의약품 및 약제 수가 항목 역시 양방은 1만7564개인데 반해, 한방은 7.1%인 1254개에 불과하다.

또 양방은 비급여 항목이 각 항목별로 고루 분포돼 있으나, 한방은 진료 항목이 불분명한 기타 항목에 편중돼 있다.

건보공단이 발표한 ‘2013년 건강보험환자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급여 의료비 가운데 기타 항목의 비중이 한방병원은 70.4%, 한의원은 79.7%에 달했다. 기타 항목 비중이 9.9%로 가장 낮은 상급 종합병원이나 11%대에 그친 종합병원(11.5%), 일반병원(11.8%)의 7~8배 규모다.

한방 의료업계는 이와 관련해 304만여건의 한방의료기관 진료비 자료를 금감원에 제출했지만, 자료 검토 업무를 맡은 보험개발원은 통계의 대표성이 떨어진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A손보사 관계자는 “한방은 양방에 비해 행위별 수가 항목 수와 의약품 및 약제 항목 수가 매우 적어 진료 행위 세부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주관성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통상 보험화를 위해서는 우연성에 기반한 치료 목적의 질병, 상해가 대상이 되는데 한방은 치료 목적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장삿속에 제2의 車보험 전락 우려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정치권 일각의 요구를 수용해 실손보험 표준약관 개정에 나설 경우 이미 자동차보험을 통해 확인된 한방 비급여 의료비 보장의 폐해가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별도의 진료수가를 적용하는 자동차보험은 진료비 심사를 심평원에 위탁한다. 그런데 원래 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심사하는 심평원의 특성상 비급여 항목은 심사를 하기 어려워 대부분 전액 지급하라고 결정한다. 보험사는 병원에서 부당 또는 과잉 진료를 하더라도 고객이 청구한 금액을 대부분 지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한방은 전체 진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의 비중이 양방에 비해 3배가량 크기 때문에 관련 행위가 횡횡하기 쉬운 환경이다. 한방 비급여 진료비는 전액 환자가 떠안아야 하다 보니 보험사에 부담을 떠넘기자고 부추기는 병원 측의 입김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

2013년 진료비 실태조사 결과를 다시 한 번 살펴보면 한방병원의 전체 진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의 비중은 입원 47.4%, 외래 65%였다. 반면 종합병원의 전체 진료비 중 비급여 진료비의 비중은 입원 17.3%, 외래 20%였다.

일부 한방병(의)원은 이를 악용해 환자를 허위로 입원시킨 후 진료 기록을 조작하거나, 비급여 의료비를 편취할 목적으로 진료비를 허위 또는 과다 청구하고 있다.

물리치료사 면허 등을 불법 대여해 무자격자가 의료 행위를 하거나, 환자와 공모해 진료비 계산서를 이중 작성하는 유형의 탈세 행위도 늘고 있다.

손보협회 내부 문건에 따르면 대표적인 지역이 전국의 한방병원 중 30% 이상이 밀집한 남부지방의 한 대도시다. 대한한방병원협회에 등록된 전국의 한방병원 243개 중 이 지역 병원은 78개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손보협회 관계자는 “해당 도시는 지역 한의대에서 매년 한의사가 과다 배출돼 한방병원이 난립하고 있다”며 “3~5명의 알선 영업조직까지 꾸려 환자를 모으거나 비급여 진료비 편취를 노리는 양·한방 협진 병원도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는 일부 지역, 일부 병원의 문제로 전체 한방 의료업계의 도덕성 문제로 확대 해석하기는 어렵다.

B손보사 관계자는 “한방 비급여 의료비 보장 상품의 판매 여부는 다른 보험상품과 마찬가지로 보험사가 개별약관에 따라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보험사 중에서도 실손보험 가입 비중이 월등히 높은 손보사들은 막대한 손해에 시달리게 되고, 이로 인한 피해는 보험료 인상 등의 형태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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