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에 X-배너 설치 등 가이드 배포…사실상 강제 협조 요청

   
▲ 서울 세종대로 금융위원회 1층 로비에 설치된 금융개혁 정책 홍보용 X-배너. 금융위는 최근 이 배너를 금융사의 건물 출입구와 상담창구 등에 설치토록 했다.[사진제공: 금융위원회]

<대한금융신문=장기영 기자> ‘금융개혁. 글로벌 경쟁력, 이제 금융의 차례입니다.’

최근 서울 중심가에 위치한 한 보험사 본사의 1층 로비에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개혁 로고와 슬로건을 새긴 X-배너가 등장했다.

안내데스크 옆을 장식한 성인 키 높이의 배너는 금융개혁 정책을 홍보하라는 금융위원회의 강요로 설치됐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지난달 말 각 금융업권 유관협회를 통해 배너, 동영상 등을 활용해 금융개혁을 홍보하라는 내용의 ‘금융개혁 홍보 콘텐츠 활용 가이드’를 금융사에 전달했다.

당초 금융협회와 일부 금융사에만 협조를 요청했던 금융위는 대상을 전 금융사로 확대했다.

한 금융협회 관계자는 “원래는 협회와 대형 회원사만 홍보를 추진했는데 자신들도 참여해야 하는지를 묻는 중소형사의 문의가 잇따르자 금융위가 대상을 확대했다”고 전했다.

가이드에는 금융개혁 로고와 슬로건을 담은 X-배너를 건물 출입구와 상담창구 등 고객 주요 동선에 배치토록 돼 있다. 금융위는 X-배너를 직접 제작한 뒤 각 금융협회를 통해 금융사의 규모별로 할당했다.

또 홍보 동영상을 업장 내 모니터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보유 중인 사옥 안팎의 디스플레이에 상영토록 했다. 실제 또 다른 보험사는 본사 엘리베이터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관련 동영상을 내보내고 있었다. 동영상에는 ‘공공·노동·금융·교육 4대 개혁, 대한민국이 달라집니다’, ‘금융의 보신주의와 현실안주를 타파하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삽입됐다.

이 밖에도 금융위는 금융개혁 로고와 슬로건을 현수막과 행사 배경, 간행물, 소책자 등 인쇄물에 반영토록 했다. 인터넷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온라인 홍보도 주문했다.

문제는 금융위가 정부 정책 홍보에 금융사들을 사실상 강제로 동원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협조 요청으로 포장돼 있지만 관리감독을 받는 금융사 입장에서는 명령에 가깝다.

특정 금융업권이나 금융사는 적극적으로 홍보에 동참하는데 다른 업권이나 회사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할 경우 금융위의 눈 밖에 날 수밖에 없다. 당초 홍보 대상에서 제외됐던 중소형 금융사들이 참여 여부를 문의하며 뒤늦게 합류한 것도 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융위가 배포한 X-배너는 금융업권별 특성이나 소비자 노출 빈도를 무시한 채 본사를 중심으로 설치돼 대국민 홍보에 한계가 있다.

수시로 고객들이 드나드는 은행 본점과 달리 보험사나 카드사 본사는 고객이 직접 방문할 일이 거의 없다. 특히 보험사는 대부분의 고객 응대가 보험설계사 등을 통해 외부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본사에 X-배너를 세워두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일선 금융사는 협조 요청이든 일방적인 지시이든 금융당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입장이어서 고충이 따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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