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K ‘투 뱅크 전략’ 《도덕경》 내용과 동일

“현명한 리더는 버리는 사람도 물건도 없다”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부산 음식의 특징은 이름의 솔직함에 있다. 냉면과 똑같이 생겼지만 밀로 면을 뽑아 만들었다고 당당히 이름에서 밝히고 있는 ‘밀면’이 그렇고,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돼지의 부속물과 순대로 만드는 순대국이 부산에선 ‘돼지국밥’이라고 불리는 것이 또 그렇다.

부산만의 고유한 음식은 아니지만 부산에서 만들어지면 정체를 굳이 숨기지 않는 ‘솔직 담백함’이 부산만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세환 BNK금융 회장의 화법과 행동도 부산음식을 닮은 것 같다. 부산토박이는 아니지만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아버지의 손을 잡고 부산에 터를 잡은 성 회장은 가식 없이 직원과 고객에게 다가가고 끌어안고 말하면서 자신만의 리더십과 영업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솔직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은 경남은행 인수 때이다. 부산리스를 구조조정하면서 자신만의 깊은 상처, 일종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던 성 회장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영자로서 가장 피하고 싶은 게 구조조정”이라며 “조금 어렵더라도 같이 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당시의 속내를 밝히고 있다.

‘구조조정’ 잘하면 약, 못하면 독
기업의 합병에서 가장 큰 과제는 구조조정이다. 중복기능을 없애고 싶은 마음은 모든 경영인이 느낄 수 있는 유혹이다.

중복되는 기능과 점포를 단일화시키면 그 만큼 비용을 절감시킬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인 비용 절감을 위해 무리한 일정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하면, 조직 전체의 로열티가 떨어져 생산성을 낮추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성세환 회장도 경남은행 인수과정에서 똑같은 유혹을 경험했을 것이다. 중복되는 지원부서와 점포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통상적인 선택인 구조조정이 아니라, 조직 구성원 전체의 마음을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인 이익을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같이 걸어가는 ‘투 뱅크’ 전략이 등장했다.

성인은 버리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 모습이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성인은 항상 사람을 잘 구하기에 버리는 사람이 없고, 항상 사물을 잘 구하기에 버리는 물건이 없으니, 이것을 가리켜 ‘밝은 지혜’라고 하네.”(是以聖人 常善求人, 故無棄人 常善求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도덕경》 27장)

노자는 이 대목에서 ‘무위’의 삶을 실천하는 이상적인 사람으로서 성인을 말하면서, 현명한 리더의 용인술을 은유하고 있다.

노자가 말하는 성인은 행위를 잘 하고(善行) 말을 잘 하고(善言), 셈을 잘 하고(善數), 닫기를 잘하고(善閉), 묶기를 잘하는(善結) 사람이다.(이석명 번역 《도덕경》 참조)

이런 성인은 사람을 각자의 능력과 재주에 따라 적절히 잘 등용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도덕경》 속에선 불선(不善)한 사람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버리는 사람’이 없고 ‘버리는 물건’도 없다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완전하다는 세계관의 투영이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다 나름의 이유를 갖고 존재하므로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이기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 전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사람과 사물의 적절한 쓰임새를 찾을 수 있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성 회장이 《도덕경》의 이 구절을 읽고 같이 걸어가는 ‘투 뱅크’ 전략을 선택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그 선택이 노자가 말하는 성인의 길과 유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노자에 빠진 성세환 회장
이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서일까? 성세환 회장의 2015년은 ‘노자’인 것 같다.

성 회장이 이번 여름휴가 때 읽겠다고 한 책은 최진석 교수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이었다. 《도덕경》에서 노자가 말하고 있는 무위의 철학을 ‘무위도식’이 아니라 철저히 실천적 철학으로 해석하는 최진석 교수의 혜안이 돋보이는 책이다.

이 책에 심취한 듯, 성 회장은 추석 전 한 매체에 현실경제와 노자 철학을 연결하는 글을 실었다. 이 글에서 성 회장은 최진석 교수가 자신의 책은 물론 각종 강연에서 항시 강조하는 ‘무위는 세상을 볼 때 기준을 갖고 보지 말라는 가르침’이라는 대목을 인용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변화하는 세계에 유연하게 맞출 수 있어야 한다’고 적고 있다.

세상을 기준을 갖고 보지 말라는 것, 그리고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 것은 모두 《도덕경》 49장에 나오는 ‘성인은 고정된 마음이 없다’에서 비롯된다. 기준을 갖고 세상을 보는 것은 집착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보도록 강요하므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없고,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게 만들므로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내리게 한다. 그래서 기준이 없어야 하고 자신을 고집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중국경제의 경착륙 가능성 등 경제의 적신호가 곳곳에서 들춰지고 있는 오늘, 성 회장은 세상이 항상 변한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을 인지하고 세상과 함께 변해야 한다는 노자 철학의 진수를 가슴에 담고 어려운 현실경제를 타개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특히 노자의 명(明), 즉 달과 해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밝음의 지혜로 세상을 보는 통찰력을 그는 바라고 있다. 과거의 틀과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보다 멀리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자세를 그는 이 책에서 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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