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반영한 농협생명의 특별한 이름 짓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큰 귀를 가지고 있던 신라 48대왕인 경문왕의 말 못할 비밀을 알고 있던 복두장이(왕의 모자를 만들거나 고치는 사람)가 끝까지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대나무 숲에서 이 사실을 토해내고 난 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대나무 숲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어려서 동화책으로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설화는 동화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에 실린 이야기다. 그리고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소아시아 지역의 고대 국가 프리지아의 왕 마이다스가 경문왕과 똑같은 신체적 결함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마이다스의 당나귀 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폴론과 숲의 신 마르시아스(또는 판)가 피리불기 경연을 하였는데, 다른 이들은 모두 올림푸스의 신인 아폴론의 승리를 말했으나 마이다스만은 마르시아스가 이겼다고 말한다.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마이다스의 귀를 잡아 늘린다. 마이다스 왕은 이를 터번 같은 모자로 감추었으나 이발을 할 때는 이발사에게 자신의 귀를 보여야 했다. 이 이발사도 신라 경문왕의 복두장이처럼 끝까지 비밀을 지키지 못했다. 그는 갈대숲에 판 구멍에 입을 대고 “당나귀 귀”를 속삭였다고 한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면 갈대숲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화는 우리나라와 소아시아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널리 분포되어 있다. 서양의 경우에는 프랑스·루마니아·러시아·그리스·아일랜드·칠레 등과 같은 지역에서는 당나귀가 아닌 말이나 산양의 귀로 등장하고, 동양의 경우에는 인도·몽고·터키·투르크스탄·키르키즈 등에도 같은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설화가 주는 함의는 무엇인가? 절대 권력자의 신체적 비밀을 대중 앞에서 말할 수 없는 환경, 그리고 비밀스럽게 대나무 숲이나 갈대숲에서 억누른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심리적 안정을 찾았던 모자장인과 이발사. 이 이야기는 커뮤니케이션, 즉 소통의 중요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대나무 숲’과 소통
소통은 사람의 마음은 물론 조직의 문제까지 모두 치료하는 효험 좋은 만병통치약이다. 단지 듣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정도로 만나서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은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오죽하면 정치인들은 물론 경영인들까지 나서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겠는가. 각종 간담회를 열어 직원들의 애로를 경청하거나 의견함을 배치해서 ‘익명성’이 보장되는 애로사항까지 챙기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농협생명의 김용복 사장도 마찬가지다. 김 사장은 노사 간담회는 물론 신입직원 간담회를 열고 현장을 돌면서 설계사들의 고충까지 챙겨 듣고 있다. 지난 21일 신입직원 간담회에서 김 사장은 자신의 집무실도 활짝 열려 있으니 언제라도 의견을 내달라고 당부하면서 “여러분들의 목소리는 농협생명의 미래”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직원이 많아질수록 농협생명이 보다 창의와 혁신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믿음에서 한 말일 것이다.

심지어 김 사장은 간담회 등에서 청취한 건의사항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처리됐는지 그 결과까지 인트라넷에 공지해 전체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다 하는 일에 대해 이렇게 길게 서두를 꺼낸 것은 농협생명의 특별함 때문이다. 똑같은 사내의견함을 설치하더라도 농협생명은 사회적 트렌드를 반영한 ‘이름 짓기’를 했다.

신라의 경문왕의 비밀을 들어주었고 또 바람 부는 날이면 들은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 ‘대나무 숲’이 농협생명에선 각층 마다 설치되어 있다. 푸르고 죽죽 곧게 뻗은 대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나무 숲이라는 이미지를 차용한 ‘의견수렴함’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의사소통을 통해서 공개적으로 처리할 수 없는 조직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대나무 숲’을 통해 접수된 건의사항도 김용복 사장은 빠짐없이 확인한다고 한다. 그 결과의 집행까지 해당부서에서 조치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재까지 ‘대나무 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부족했던 여직원들의 탈의실에 캐비닛이 추가로 설치되었고, 구내식당의 음식 품질도 개선되었다고 한다. 또한 본사 건물의 흡연구역을 이동시키고 농협생명의 일부조직이 입주해 있는 빌딩의 환기시스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나무 숲’이 최근 화제가 되었던 것은 ‘○○○옆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적극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등장한 것은 ‘출판사옆 대나무 숲’이었는데 이곳에서 한 출판사 사장의 악행 등 부조리한 면이 고발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패러디한 ‘대나무 숲’이 여러 곳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 ‘대나무 숲’의 순기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대학교의 대나무 숲들도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졌다.

이 같은 사회적 흐름을 놓치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한 것이 농협생명의 재기발랄함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매사 긍정적인 자세로 모든 일을 즐기려 한다’는 김 사장의 마음 속이 이쯤에서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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