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은퇴시기와 정년시점 11년 격차 … 세계최고 수준

<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은퇴를 하고 싶지만 경제적으로 은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신의 노후는 행복할 수 있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가계의 은퇴는 60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시작돼 70대 초반에 절반 가량의 가구가 은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80대가 넘어서도 은퇴하지 못하는 가구 비중이 16%나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또 전체 가구의 60%가 소득이 충분치 않아 은퇴 준비가 어렵고 은퇴 후 생활비 부족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 은퇴 시기가 크게 지연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OECD에 따르면 2012년 기준 한국 남성의 유효 은퇴연령은 71.1세로 공식 은퇴연령 60세와 11.1세의 격차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된다.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김진성 연구원은 “국내 가계는 특정 시기에 일괄적으로 은퇴하지 못하고 경제여건과 구직상황 등에 따라 긴 기간에 걸쳐 순차적으로 은퇴가 발생하는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인들은 은퇴시기는 갈수록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50~60대 가구주는 65~70세 전후에 은퇴하길 희망하지만 60대를 넘어서면 70세가 넘어서까지 일하기 원하는 가구가 증가했다.

은퇴 이후 기대 여명(사망시까지의 기간)에 비해 은퇴준비가 부족해지면서 희망 은퇴시기가 계속 늦어지고 은퇴를 못하고 있는 고령의 빈곤 가구는 근로 수입을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IMF 이후 60세 전후에 은퇴하는 가구가 감소하는 등 본격적인 은퇴 시기가 늦어지고 있는 추세다.

은퇴한 가구의 60% 가량이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으며 생활비에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가구는 10% 미만에 불과했다.

은퇴하지 않은 가구 중 절반인 50%는 은퇴준비가 미흡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은퇴준비가 잘 돼 있다고 생각하는 가구는 10%에 불과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미만 가구 중 은퇴준비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가구의 평균 연소득은 4000만원 안팎으로 은퇴 준비가 보통 이상인 가구의 소득에 비해 40% 이상 낮은 수준이었다.

김진성 연구원은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 소득 3분위 가구는 연소득 3000~4600만원 사이로 이들은 소득으로 일상적인 소비를 하고 남은 자금으로 주거비와 대출이자 등을 제하고 나면 실질적인 은퇴준비를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소득 1~3분위(연소득 4600만원 이하) 가구인 전체 가구의 소득 하위 60% 정도는 은퇴 준비가 어렵고 은퇴 후에도 생활비 부족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 은퇴 시기가 크게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50대 이상 노후 위한 차별화 제도 절실
국내 인구 구조상 베이비부머 세대가 올해부터 60세에 도달하기 시작하면서 이들 세대의 노후준비가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의 75%가 노후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며 연금소득 대체율도 39.6%로 국제적인 권고기준인 70∼80%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베이비부머 중 10년 이상 국민연금에 가입해 수급권을 확보한 비율은 36.5%에 불과하고 소득대체율도 소득 중간계층을 기준으로 24.5∼30.8%로 추정되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를 경험한 주요국에서는 은퇴가 임박했지만 아직 노후준비를 하지 못한 계층의 노후를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2년부터 은퇴를 앞두고 있는 연령층의 노후를 위해 50세 이상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Catch-Up Contributions Plan’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제도는 50세 이상 근로자들에 한해 모든 근로자들에게 적용되는 표준퇴직연금의 기여한도를 초과해 기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추가로 기여할 수 있는 퇴직연금 제도는 401(k), IRA 등이 있고 추가 기여분에 대해서도 동일한 세제혜택이 주어진다.

호주도 ‘Superannuation’을 통해 50세 이상의 연령층에 추가적으로 기여를 허용하고 세제혜택을 지원하고 있다. 2014년과 2015 회계기간 기준으로 50세 이상 연령층은 표준기여한도인 3만호주달러보다 5000달러를 추가로 기여할 수 있다.

아일랜드는 PRSA(Personal Retirement Savings Accounts)를 통해 기여가 가능하며 세제혜택이 주어지는 기여한도는 연령이 높을수록 증가한다. 50대 이상은 소득대비 35∼40% 수준까지 기여할 수 있지만 30대는 20%까지만 기여할 수 있어 기여수준을 연령에 따라 크게 차등하고 있다.

캐나다는 RRSP(Registered Retirement Savings Plan)를 통해 기여할 수 있으며 매년 정해진 최대 기여한도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미사용 잔여한도를 추가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김대익 연구원은 “한국은 고령화가 진행된 주요국에 비해 50대 이상 계층의 노후준비가 취약하고 고령층에 대한 사회안전망도 미비해 이들이 자발적으로 노후준비를 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이 보다 절실한 상황”이라며 “외국의 ‘Catch-Up Contributions Plan’ 제도와 같이 50세 이상 계층에 대해 사적연금을 타연령층과 차별해 추가적인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제도 등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은 대부분 퇴직연금제도를 통해 추가적인 기여를 허용하고 있지만 국내는 자영업자가 퇴직연금에 가입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50세 이상을 모두 포괄해 세제혜택을 줄 수 있는 개인연금저축 등을 통해 제도를 운영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또 하나 한국 베이비부머의 실물자산 비중은 81.4%로 자산포트폴리오가 대부분 실물자산에 몰려 있어 노후준비에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

정책당국은 실물자산에 과도하게 편중된 자산 포트폴리오의 조정을 통해 실물자산을 금융자산화한 후 노후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이들 세대가 거주주택을 다운사이징할 경우 취·등록세를 감면해 간접적으로 노후준비를 지원해주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김대익 연구원은 “은퇴를 앞둔 계층에 세제혜택 등을 부여해 노후준비를 지원하는 것이 당장은 재정수지를 압박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이들 세대가 자발적으로 노후를 충실히 준비할 경우 궁극적으로 복지비용의 지출 감소를 가져와 재정수지 강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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