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통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제갈공명은 조조의 100만 대군을 오촉 연합군 10만으로 대적한다. 장강을 사이에 두고 북서풍이 부는 겨울. 적의 화공 위협에 노출된 불리한 진지 구축.
군사력의 절대적 차이와 지형에서의 불리함까지 오촉 연합군에게 우호적인 조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남병산에 제단을 쌓고 머리를 풀고 단식기도를 한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약속한 날, 1년에 한두 번 부는 남동풍이 일어온다. 유일한 공격의 기회를 오나라의 주유는 화공(火攻)으로 마무리한다. 막강한 조조의 100만 대군이 장강에서 무너지는 대목이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보여준 행위를 후세에선 뛰어난 직관 내지는 천운이 따르는 사람 정도로 해석한다.
아니면 《삼국지연의》에서처럼 신의 지혜를 가진 인물 정도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천문을 읽고 지리에 밝은 동양의 지도자들은 천문과 지리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찰의 시간을 보낸다. 그 결과 얻게 되는 직관이 결정적 순간에 빛을 발할 뿐이다. 요즘 식으로 이야기하면 나름의 빅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해서 해당 분야의 통찰력을 얻는 것이다. 직접 관찰할 수 없을 때는 그 지역 사람들의 경험칙을 귀동냥으로 듣고 자신의 데이터베이스를 업데이트하기도 한다.

제갈공명도 그렇게 관찰하고 정리한 자신만의 빅데이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데이터를 적절한 시점에 활용해서 결정적 순간의 승리를 일궈낸 것이다.

◆데이터 배후에 있는 핵심을 파악하라
위대한 지도자는 현재 발생하고 있는 사건이나 현상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찾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현상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 배경을 자신의 빅데이터에서 분석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세조의 반정을 소재로 한 영화 《관상》에서 내경(송강호 역)은 세조의 관상을 읽어내지 못한 것을 탓하며 “파도는 보았으나 부는 바람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 바람까지 읽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현재를 지배하거나 위기를 기회로 바꿔낸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능력을 보이는 사람을 경탄하면서 내심 자신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길 바란다.

이 같은 능력을 우리는 직관에 의한 통찰력이라고 한다. 아마도 모든 경영인들의 로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통찰력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것인가? 제갈공명은 어떻게 신묘한 전술을 구사하고 천기를 누설하듯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인가?

이유는 하나다. 관찰이다. 관찰한 데이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신적인 지혜를 가져다 준 것이다. 그리고 난 뒤 데이터의 이면에 담긴 핵심 내용을 읽어내는 것이다.

나폴레옹 군대가 유럽을 떨게 했던 이유는 예측할 수 없는 나폴레옹 군대의 기동 때문이었다. 나타난 적과 전투를 벌이려고 하면 측면이나 후면에서 새로운 적이 출현하는 식으로 나폴레옹 군은 전선을 자기주도적으로 장악했다. 그러나 상대방은 나폴레옹 군의 기동전술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패닉에 빠질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은 어떻게 이 같은 기동전술을 펼칠 수 있었을까? 그의 참모이자 클라우제비츠와 같은 군사저술가인 조미니의 목격담을 살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나폴레옹은 늘 컴퍼스를 가지고 행군 중에도 직접 거리를 측정하고, 지도상의 자기 군단과 적의 예상 위치를 핀으로 표시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평소 끊임없는 관측을 통해 데이터를 조합하며 자신의 직관력을 키운 것이다. 이 같은 직관을 가지고 예하 군단의 기동을 순식간에 결정하고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나폴레옹 군대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다.(임용한 역 《손자병법》 참고)

롬멜의 경우도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참모장을 지낸 바이얼라인 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신적인 수준의 방향감각과 지형에 대한 감각을 롬멜은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같은 능력은 1차 대전 때부터 체득한 결과라고 한다. 이탈리아 전선에서 중위 계급의 롬멜은 적진 정찰 및 지형 파악을 위해 밤마다 적의 참호선 앞까지 기어가서 방어선의 끝에서 끝까지 직접 관찰하고, 진지에 떨어지는 포의 탄착점까지 확인하면서 잠을 자지 않고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진 데이터를 근거로 새로운 상황에 대한 예측 자료로 활용한 것이다.(임용한 저 《세상 모든 전략은 전쟁에서 탄생했다》 참고)

이처럼 통찰력은 끊임없는 데이터의 수집과 그렇게 모은 데이터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형성된 통찰력도 무기력하게 무너질 때가 있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를 무너뜨린 나폴레옹은 러시아라는 새로운 공간을 전쟁의 영역으로 선택한다. 그가 그동안 수집했던 데이터는 중서부 유럽에서의 경험칙이었다. 동부 유럽의 광활함과 혹독한 날씨는 그의 직관을 짓밟는다. 그 결과 50만의 프랑스군은 이 전쟁에서 철저하게 패하고 만다.

이유는 데이터가 틀렸던 것이다.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서의 데이터는 러시아에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흔히 범하게 되는 실수를 그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데이터가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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