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금융권 임원 인문학 트렌드③]

‘일체유심조’ ‘카르페 디엠’ ‘상선약수’ 뒤이어

KB손해보험 김병헌 사장 ‘호시우보’
NH투자증권 김원규 사장 ‘단료투천’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위기의 순간, 자신의 심리기제를 지키는 튼튼한 방어벽이자 격정의 순간, 자신의 들끓는 감정을 식혀주는 냉각제가 되어주는 말. 그래서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성찰한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경구. 우리는 이처럼 늘 자리 옆에 적어놓고 자기 자신을 경계한 글을 ‘좌우명’이라고 한다.

불완전한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고 부족함을 채우고 과한 것을 덜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는 ‘좌우명’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한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박지원은 말이 모든 일의 시작이므로 말을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귓속말은 듣지 말고, 새어나갈 이야기는 하지 말라”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말하고 난 뒤에 후회하거나 경계하는 것은 남의 의심을 사는 일이니 애초에 단초를 제공하지 말자는 것이다.

영·정조 시대의 실학자인 위백규는 손이 귀한 집안의 첫째로 태어나 주변의 기대와 간섭이 많아지자,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남을 보기보다 나 자신을 보고, 남에게서 듣기보다 나 자신에게서 들으라”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끌려가는 삶 자체를 거부하고 자기 삶을 자신이 이끌고 가겠다고 다짐한 글인 것이다.

동양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던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는 《논어》의 한 구절인 “不怨天 不尤人(불원천 불우인)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를 자신의 삶의 나침반으로 삼았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고도 의연했고, 형장에서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던 그의 인품을 그대로 담고 있는 글이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현대의 철학자 니체의 좌우명은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새 힘이 솟는다”라고 한다. 망치로 내리쳐야 새로운 세상을 열수 있다고 믿었던 그는 정신에 가해진 상처가 새로운 정신을 낳을 수 있고 그 힘을 원동력으로 새로운 정신은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글은 그의 책 《우상의 황혼》의 서문에 적혀있기도 하다.

이처럼 ‘좌우명’은 한 사람의 삶의 좌표가 되기도 하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지 않게 하는 나침반 또는 방향을 잃었을 때 이를 알려주는 경고등과 같은 존재다.

금융권 최다 응답 좌우명
금융권의 대표이사와 임원들이 자신을 지탱하는 글로 가장 선호하는 글은 163명의 응답자 중 13명이 답한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하는 금융권 임원들의 마음은 해군 임관을 앞두고 면접을 보던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나 글을 쓰는 괴테에게도 숙제였던 것 같다.

카터는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면접관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하지 못했던 그날의 일을 평생 잊지 않았고 좌우명으로 삼았으며 괴테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그 결과는 노력하지 않을 때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그 다음은 《화엄경》의 핵심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호라티우스의 시에서 유래되어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대중화된 문장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노자 《도덕경》의 한 구절인 ‘상선약수(上善若水)’가 각각 응답자 5명을 기록해 두 번째로 선호하는 좌우명으로 나타났다.

‘일체유심조’는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뜻이며, ‘카르페 디엠’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이다. 이와 함께 노자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상선약수’는 “지극히 착한 것은 물과 같다”는 의미이다.

그 다음은 “서는 자리마다 주인공이 되자”라는 글로 4명의 응답자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글이다. 이 글은 중국의 선승 임제의 글로써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 하나의 문장이다. 이는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가 서 있는 것이 모두 참되다”라는 뜻이다.

이밖에도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말자”, “진인사대천명”, “감사하는 삶” 등이 각각 3명의 응답자를 기록했다.

아포리즘 좌우명
한편 금융권 임원들이 선정한 자신의 ‘좌우명’ 중에는 문학가나 유명인들의 경구도 상당수 등장했다.

우리은행의 최정훈 상무는 자신의 좌우명을 프랑스의 소설가인 폴 부르제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로 삼고 있으며 신한생명의 배형국 부사장은 아메바 경영으로 유명한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경구인 “간절하지 않으면 꿈도 꾸지 마라”를 자신의 삶의 지표로 삼고 있다.

KB손해보험의 김영장 상무는 하버드대학교의 도서관에 적혀 있는 글귀로 알려진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책을 읽으면 꿈을 이룬다”를 자신의 경구로 삼고 있고, 흥국화재의 김영민 상무는 평생을 길 위에서 일하며 사색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의 아포리즘 글귀인 “가장 큰 피로는 마치지 않은 일에서 온다”를 책상머리에 적어두고 있다.

MG손해보험의 박주병 이사는 체 게바라의 글로 유명한 “리얼리스트가 되어라.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어라”를 마음의 글로 여기고 있고 농협생명의 한 임원은 미국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의 글 “위대한 사람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글을, 롯데카드의 한 임원은 시인 바이런의 글 “미래에 대한 최선의 예언자는 과거이다”를, 우리카드의 한 임원은 영국 속담 “잔잔한 바다는 노련한 뱃사공을 키워내지 못한다”의 변형 글인 “노련한 뱃사공은 거친 파도가 만든다”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사자성어 좌우명
이밖에도 한자문화권에 걸맞게 사자성어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금융권 임원도 다수 등장했다.

KB손해보험의 김병헌 사장은 호랑이 같이 예리하고 무섭게 사물을 보고 소 같이 신중하게 행동한다는 ‘호시우보(虎視牛步)’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으며, NH투자증권의 김원규 사장은 병사들과 죽을 때까지 함께 한다는 속뜻을 가진 ‘단료투천( )’을 삶의 나침반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의 한 부행장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는 뜻의 ‘단구무괴아심(但求無愧我心)’을 마음의 글귀로 간직하고 있으며, 기업은행의 한 임원은 행동할 때는 그림자에 부끄럽지 않게 한다는 뜻을 가진 ‘행불괴영(行不愧影)’을, KB금융지주의 한 임원은 화합하되 횝쓸리지는 않는다는 뜻을 가진 ‘화이불류(和而不流)’를 인생의 잠언으로 여기고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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