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없음’ 깨닫고 오늘에 충실한 삶 살고자

‘푸슈킨·사무엘 울만’ 詩, 경계의 글로 애송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간이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현재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원하는 방향으로 일이 풀릴 때 그럴 가능성은 더 커진다. 또한 얼마를 가졌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삶의 결과는 그렇지 않는 것 같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자문화권에선 이 같은 착각을 경계하기 위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는 문구를 자주 사용한다. 십 년 가는 권력 없고, 열흘 붉은 꽃 없다는 말을 통해 오늘의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이처럼 인간의 부귀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한 가운데 있게 되면 그것을 잊게 되는 것 같다. 전세계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이나, 경제계에서 발생하는 일부 리더들의 모습을 보면 항상 그렇다.
물론 역사 속 인물들도 휴브리스(오만)를 범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금융권 대표이사와 임원들의 애송시 및 애송구절로 가장 많이 들고 있는 문구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히브리어로 “감 쩨 야아보르”. ‘화무십일홍’의 완벽한 서양적 대구다.

이 말의 기원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권력과 부를 한 손에 장악했던 현자왕 솔로몬이다. 솔로몬 왕은 자신의 신뢰를 받는 신하가 최측근으로서 왕의 권력을 빌어 우쭐거리는 모습을 보고 곤경에 빠뜨리게 되는데, 그 곤경이 이 문구의 탄생배경이 된다.

어느 날 솔로몬은 베나이아(신하)에게 ‘슬픈 사람을 기쁘게 하고 기쁜 사람을 슬프게 하는 반지’를 구해오라고 명한다. 반지 정도는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베나이아는 생각하지만, 세상에 그런 반지는 없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를 뒤졌지만 답을 갖고 있는 상인이나 세공업자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6개월의 시간을 보냈지만 왕과의 약속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반지’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 날 어느 노인이 금반지에다 문구를 새겨 솔로몬 왕에게 가져갈 것을 요청한다. 거기에 적혀 있던 문구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이다. 이 일을 경험하고 왕과 신하 모두 권력의 덧없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문구는 교황의 대관식에서도 사용된다. 대관식날 교황은 권력의 무상함을 빗댄 이 문장이 적힌 홀(구리로 만든 지팡이)을 든다고 한다.

푸슈킨과 사무엘 울만
금융인들이 애송하는 외국 시인의 시는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문구가 ‘덧없음’을 말하면서 오늘에 충실한 삶을 요구하듯이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도 절망, 고통, 이별 등의 부정적 가치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것을 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적 삶의 균형을 잃게 된다는 경고를 하는 시다.

따라서 금융권의 임원들이 이 시를 애송하는 것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와 동일한 의미로 해석된다. ‘좋고 나쁜’ 모든 일을 인생사의 일부로 받아들여 오만하지 않고, 또 지나치게 폄하도 하지 않는 삶을 살고자 하는 그런 노력으로 읽혀진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이 우리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맥아더 장군이 일본 점령군 사령관 시절 집무실 벽에 걸어 놓고 애송했다는 사실이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 보도되면서 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시를 국내 금융인들이 애송하는 이유는 맥아더 마음과 똑같았을 것이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고 이상과 열정의 소유 여부가 결정한다는 울만의 메시지가 금융인들의 마음에 꽂혔을 것이다. 맥아더 장군처럼 말이다.

여기서 〈청춘〉의 한 대목을 통해 중장년에 접어든 금융인들의 속마음을 엿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므로.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열정을 잃어버리면 마음이 시든다/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정신은 먼지가 된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