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출방식, 세제혜택 등 해외와 크게 달라

<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한국형 ISA제도는 영국의 ISA를 벤치마크한 제도지만 가입자격, 연간납입 한도, 인출제한, 편입상품 범위, 세제혜택 방식, 계좌의 법적 구조 등 우리나라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방식으로 설계돼 있다.

특정연령(만 19세)에 도달한 모든 거주자라면 소득 유무에 관계없이 모두 ISA에 가입할 수 있는 해외와 달리, 한국형 ISA는 가입연령 제한 대신 직전연도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거주자만이 가입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연간납입한도는 한국형 ISA도 해외처럼 가입연도부터 5년간 매년 2000만원까지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해외와 달리 연간납입한도까지 납입된 금액 모두에 비과세 혜택을 주지 않는다. 전체 금융소득 중 200만원까지만 비과세 혜택을 부여하고 이를 초과하는 금액은 9% 저율·분리 과세한다.

또 해외에서는 공통적으로 ISA에 인출제한을 두지 않지만 한국형 ISA는 저소득자나 청년층, 중도해지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5년간 계좌를 유지해야 하며 그 기간 동안 원금 및 이자 등의 인출이 제한된다.

편입상품의 범위도 예적금 등 은행 관련 금융상품과 펀드 및 ELS와 같은 파생결합증권으로 한정돼 있으며 주식·채권 등에 대해서는 직접 투자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국형 ISA는 법적 구조 또한 계좌를 신탁으로 설계해 신탁업 인가를 받은 금융기관이라면 모두 ISA를 개설해 줄 수 있다. 따라서 은행, 증권, 보험 모든 업권에서 ISA제도를 이용할 수 있어 업권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금융소비자가 양질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 신탁으로 설계됨에 따라 신탁수수료가 발생해 금융소비자의 실질 수익이 줄어들 확률이 높고 종합신탁업이나 신탁업 인가를 받지 못한 금융기관은 ISA를 개설해줄 수 없어 새로운 진입장벽이 형성된다는 문제가 있다.

소득분배에 치중한 나머지문턱 너무 높아져
국민의 금융자산형성 지원을 목적으로 한국형 ISA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정부의 결단 자체는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계층 간 소득분배 문제를 의식한 나머지 해외사례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설계되면서 정작 저소득층이 제도를 이용하기에 그 문턱이 너무 높게 설정돼 버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형 ISA는 저소득층을 배려해 의무가입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지만 3년 동안 금융기관에 묶여야만 하는 자금을 저축할 수 있는 저소득층은 그리 많지 않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부족한 퇴직자산을 보충하고 생애주기 가운데 언제든지 인출해 쓸 수 있는 ‘예비적 저축’의 적립 지원이 해외 ISA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특징이다.

영국은 ISA 도입 전 개인주식플랜(PEP)과 비과세특별저축계좌(TESSA) 제도를 추진했지만 고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고 의무가입기간이 설정된 두 제도는 저소득층의 가입이 부진했다.

두 제도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금융투자상품과 예적금을 통합하고 의무가입기간(인출제한)을 없애면서 영국 ISA는 저소득층을 포함한 전국민의 관심을 받는 제도로 안착할 수 있었다.

자본시장연구원 천창민 연구원은 “소득공제혜택을 주지 않는 한국형 ISA에서 의무가입기간이 필수불가결한 요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3년으로 설정돼 있는 저소득층의 의무기간은 철폐해 저소득층의 예비적 저축을 적극 장려하여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한국형 ISA의 법적구조는 신탁으로 설계돼 ISA제공기관도 신탁업 인가를 받은 금융기관에만 한정된다.

현재 은행 중 신탁업 인가를 받은 곳은 20개사로 이 중 전북은행, 제주은행, 외국계은행 3곳은 종합 신탁업 인가가 없다. 증권사도 하이투자증권과 IBK증권은 종합신탁업 인가를 받지 못했고 신탁업 인가 자체가 없는 회사가 다수다.

보험사는 총 5개의 생보사(미래에셋, 삼성, 한화, 흥국, 교보)와 삼성화재가 신탁업 인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교보증권과 삼성화재는 종합신탁업 인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물론 대형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종합신탁업 인가를 가지고 있어 금융소비자의 선택권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업권간 공정한 경쟁과 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금융기관이 참여할 필요가 있다.

천 연구원은 이를 위해 낮은 수준의 자기자본을 요구하는 ‘ISA용 신탁업’ 인가단위를 추가로 신설하고, 일반 금융소비자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신탁수수료를 낮추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국내는 신탁 보수에 따른 실질수익 하락 외에 별도의 계좌유지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고 있어 ISA계좌를 유지하는데 신탁 보수라는 정기적 비용이 발생한다면 고객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ISA가 신뢰성 있는 제도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운용기간 확대도 필요하다.

현재 한국형 ISA는 3년을 일몰로 설계될 예정이지만 최소 10년 이상의 제도로 운영돼야 한다. 금융회사 입장에서 3년 이후 없어질 제도라면 굳이 많은 자금을 투자할 이유가 크지 않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고령화에 따른 생애주기에 맞는 포트폴리오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이 ISA의 장점인데 3년 이후 없어질 제도에 이러한 생애주기별 자금운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천 연구원은 “한국형 ISA가 단순히 ‘재형저축Plus’에 머물지 않고 포트폴리오 투자를 통한 금융자산 다변화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안전자산 쏠림 현상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예적금 상품은 1000만원까지만 편입하고 펀드나 파생결합증권 등 금융투자상품은 연간납인한도인 2000만원 모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상품별로 납입한도를 다르게 설정하는 법도 고려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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