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전문용어·군사용어·어려운 한자’ 난무

쉬운 단어, 간결한 문장, 청자 중심 화법 아쉬워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메시지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쉬운 말로 간결하게, 그리고 긍정적인 방법으로 듣는 이의 입장에서 전달해야 한다. 그래야 귀에 거슬림 없이 말의 뜻을 전달할 수 있다. 그리고 글이나 말의 스타일보다는 콘텐츠를 중요시 할수록 메시지의 설득력은 강화된다고 한다.

또한 설득력 있는 콘텐츠는 빙빙 주변을 맴돌지 않고 핵심을 꿰뚫는 메시지를 의미한다. 그것도 말하고자 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고갱이가 담겨 있어야 한다. 핵심을 벗어나 변죽만 울리는 메시지는 듣는 이에겐 공허한 메아리에 그치고 만다.

이와 함께 일상생활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와 이야기로 메시지가 구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국내 금융권처럼 남성이 주도하는 의사결정 문화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실수는 전략을 전쟁에 비유하면서 자주 군사 용어를 사용해, 메시지에 대한 진입장벽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진입장벽을 본인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지나간다.

국내 금융권의 CEO 중 소통에 대해 강조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런데 신년사는 물론 각종 기념사에서 선택하는 단어와 이야기 구성은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급하고 그 ‘하루’를 헤쳐 나가는데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메시지라도 일상과 동떨어진 중후장대한 단어들로 채워진 말은 귀에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국내 금융권은 관행처럼 CEO의 메시지는 무겁기만 하다.

금융권 수장들의 메시지
2016년 새해가 밝았다. 그리고 금융권 수장들은 한결 같이 ‘변화와 혁신’을 주문하는 신년사를 내놓았다. 그것도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사자성어를 사용하면서 절박함을 호소하는 내용들이다.

특히 희망찬 새해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어느 신년사에도 희망을 주제로 삼은 메시지는 없다. 한결같이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혼돈과 위협요소’, 그리고 ‘저성장’, ‘수익성 악화’, ‘구조조정’ 등의 부정적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가장 많이 담긴 단어는 ‘변화’와 ‘혁신’이다. 부정적인 영업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변화’와 ‘혁신’을 통해 잘 극복하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 용어들로 신년사가 채워진 지 이미 10년이 넘은 듯싶다. 지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국내 금융권은 줄곧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와 ‘혁신’에 대해 조직(금융지주 및 은행)에 더 높은 강도의 요구를 하기 위해 선택하는 단어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생소한 단어들이다. 특히 신년사를 한 마디로 정의하고자 하는 CEO들의 요구(과거 은행의 문화)를 담아 사자성어로 표현한 것이 은행의 역사와 동일하다보니,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단어는 이미 고갈된 상태다.

지난 2012년부터 올해까지의 은행권 CEO들의 신년사에 담긴 사자성어를 정리한 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이 단어 중 인터넷 검색을 통하지 않고 그 뜻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문구는 몇 개 되지 않는다.

어려운 단어는 귀에 걸리게 되어 있고, 걸리면 메시지는 벽에 막히게 된다.

누가 듣는 메시지인가
물론 신년사는 CEO가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해를 관통하는 자신의 거시적 전략을 전달하는 메시지다. 따라서 조직 구성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내용일 수 있다. 다소 어려운 단어가 나오더라도 약간의 노력을 들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조직 구성원은 갖추고 있다.

하지만 신년사가 다만 조직 구성원들에게만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발표되는 것일까? 금융권 CEO들의 신년사에 담긴 속뜻을 분석하는 기사들이 연초 언론매체를 장식하는 것은 단순히 기자들의 호기심 때문일까?

금융권과 거래를 하지 않는 국민은 없다. 그래서 금융회사들은 CEO의 동정과 메시지에 심혈을 기울인다.

똑같은 말을 하더라도 CEO가 하는 말이면 신뢰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메시지를 만드는 부서에선 CEO의 각종 연설문과 발표문에 많은 신경을 쓴다.

메시지의 일관성과 전략과의 합일성 등 단어가 갖는 색깔과 의미까지 고려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사전에 점검한다. CEO의 메시지가 ‘메스 마케팅’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금융권 CEO의 신년사가 ‘목표’를 잃은 지 너무 오래된 듯싶다. 조직 구성원들을 고무시키기에는 콘텐츠가 냉혹하고, 일반 소비자의 마음을 사기에는 어렵기만 하다.

어느 금융회사 CEO의 말처럼 디지털 1년은 아날로그 100년과 다름없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은 상전벽해를 해마다 하고 있다. 메시지도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조직 구성원이든, 금융 소비자든 그들의 마음을 사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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