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난 ‘시간’ <1>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신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준 1년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한두 가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대표적인 것이 금주, 금연, 운동, 그리고 외국어 공부일 것이다. 계획이 무엇이든, 새로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들은 ‘맺고, 끊고, 시작되는’ 시점이 최적의 시기이다.

시간은 인류가 언어를 만들어 소통하고 무리를 지어 사회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개념 중 하나일 것이다. 규칙적인 해와 달, 그리고 천체의 움직임은 주기라는 개념을 만들어냈고, 농경을 시작하면서 시간으로 발전한다.

인간이 시간의 개념을 만드는 과정은 우리의 신화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이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에도 시간의 개념이 다수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일상의 시간’, ‘지나보면 순간인 시간’, ‘현재도 여전히 쳇바퀴 돌 듯 흘러가는 시간’인 크로노스(Chronos)이다. 우리가 시계로 확인하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시간관은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신이 이미 예정한 시간’이자,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의 경험이 지속되어 영원이 되는 시간’, ‘내가 주도하여 변화를 낳고 때론 고통이 동반되는 시간’,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가 현재에서 만나는 시간’인 카이로스(Kairos)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카이로스를 상대방과 대화할 때 삶에 대한 강력한 증거를 내가 제시하여 상대방을 설득하는 ‘에트(eth, 히브리의 시간개념)’에 해당하는 시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아킬레우스가 트로이전쟁에 참전하면 영웅이 되나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도 자신의 이름이 기억되길 바라면서 스스로 자신만의 시간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 참전한 그 시간이며, 죽은 자를 데려오거나(오르페우스) 미래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오디세우스) 아니면 영웅다운 영웅이 되기 위해서(헤라클레스) 하데스(지하세계, 죽음의 세계)로 내려간 그리스의 영웅들이 선택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통과의례를 거쳐 새로운 단계에 이르는 시간이자 과거의 오래된 자아를 극복한 시간인 카이로스의 순간들은 우리가 <고전>이라 일컫는 수많은 책에서 찾을 수 있다.

◆공적 시간과 사적 시간
미국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루이스 멈퍼드는 “근대적 산업시대를 추동한 핵심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바로 시계”라고 주장한다.

증기기관에 의한 산업혁명을 주된 역사흐름으로 보았던 사람들에겐 생소한 주장이지만 정교한 시계의 등장으로 대항해시대를 앞당기고 산업혁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사회인류학자인 존 포스틸도 “크로노스의 현시물인 시계와 달력의 시간은 세상을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시장과 국가, 시민사회 등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기계시계가 발명된 14세기 이래 단일하고 ‘공적인 시간’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의 중요한 진전은 19세기 말, 세계를 묶어낸 ‘표준시’의 도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크로노스가 기술의 발전을 통해 부활하였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계몽주의적 근대성을 강조한 인류는 일상화된 ‘공적 시간’과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 시간’의 불일치를 경험하게 된다. 이유는 공적 시간에 사적 시간이 투영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진 시간을 찾아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우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등에서 ‘공적 시간’은 주인공들의 ‘사적 시간’과 중첩되며 갈등을 증폭시켰다.

이와 관련, 카프카는 자신의 일기에서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자는 것도, 깨어나는 것도, 삶을 유지하는 것도,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시계가 맞지 않는 것이다. 내부의 시계는 사악하게 혹은 악마라도 씐 듯이 달려간다. 반면 외부의 시계는 비틀비틀하면서도 자신의 본래 속도를 유지하며 걸어간다”고 말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지 카프카뿐만이 아니라 근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증상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대인들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삶의 중요한 개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과거에는 신이 의미를 부여했다면 현대에는 인간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하고, 극한의 경험을 통해 통과의례의 목적을 성취하는 시간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일상성에서 탈피하여 ‘공적 시간’을 자신의 ‘카이로스’로 대응시켜 시간의 주인으로 살고자 하는 절박한 선택이기도 하다. 마치 하데스를 경험한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이 극한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뜻 깊은 검토와 반성, 재검토의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다.

2016년, 매우 많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금융시장은 초유의 경험들을 어느 때보다 많이 하게 될 해이다. 그런 새해의 각오는 그래서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이면 어떨까”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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