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나는 ‘기술’ <2>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모든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칸트의 정언명령이다. 의무주의적 윤리규범을 내세웠던 칸트의 입장에서 인간을 수단화할 수 없으며, 그런 까닭에 근대국가는 정언명령에 충실한 법률 체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기술의 힘을 빌려 더욱 강력해짐에 따라 칸트의 명제가 흔들리는 순간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인도적인 목적으로 인공장기를 삽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장치를 넣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을 우려하듯 독일의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칸트가 말한대로 목적이여야 할 인간을 기술을 이용하여 강화할 경우, 인간의 자율성이 해쳐진다고 말한다. 즉 수단화된 인간은 자율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하버마스는 아이들에게 과학이나 특정 분야의 재능을 높이기 위해 유전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아이들의 인생과 자유가 제한된다며 강력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인간을 대상으로 한 기술 적용은 이 같은 우려를 비웃듯 늘어만 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예컨대 기계가 사람만이 갖는 권리 및 자격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기계는 인간의 범주에 포함될 것인가? 만약 인간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의 범주에서 인간에 해당하는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면 그 기계는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

◆인공지능 법률상 ‘운전자’ 지위 획득
그런데 현실에서 인간만이 가질 수 있었던 ‘운전자’의 지위가 기계에게 부여되는 일이 실제 발생했다.
인공지능이 처음으로 법적 지위를 인정받은 것이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최근 구글의 무인차프로젝트의 핵심 솔루션인 인공지능 자율주행시스템을 연방법상 ‘운전자’로 볼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그동안 무인자동차의 안전규정과 관련,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무인차의 ‘운전자’ 법적 지위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무인차 상용화가 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 업계 및 관계자들은 특정 인공지능(자율주행자동차)에 부여된 새로운 지위로 한껏 고무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철학 및 인지과학 학계에선 ‘운전자’ 지위에 관련한 인공지능의 존재론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자율주행자동차가 차에 부착된 카메라와 각종 센서를 통해 들어오는 각종 정보를 해석해서 가장 안전하게 차를 주행하도록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을 한다는 점에서 ‘운전자’의 법적 지위를 부여했는데, 이것을 인공지능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보아야 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법적으로 튜링테스트를 통과해야 인공지능으로 인정받는 것은 아니나, ‘생각하는 기계’라는 공적 인정과 관련한 학문적 토론의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운전자’의 지위를 확보했다면, 이를 법률적으로 인간과 같은 존재, 즉 ‘법인’과 같은 성격으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도 발생하게 된다.

◆구글카의 지위는?
인공지능 개발이 시작된 이래 이 같은 담론은 철학계의 주요한 화두였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의 교수인 휴버트 드레이퍼스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몸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언어적 차원에서 인간처럼 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사람만이 눈에 보이는 정보와 몸으로 체감하는 정보를 종합해서 정보를 해석,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에서 ‘운전자’로 인정한 구글의 자율주행자동차는 어떨까?

카메라와 각종 센서로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를 취합해서 가장 안전하게 자동차의 주행을 결정하는 구글카는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할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할 것이다.

미 도로교통안전국도 그런 점을 감안해서 구글카에게 법적 운전자의 지위를 부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구글카는 더 이상 기계가 아닌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기계는 기계일 뿐이다. 하지만 기계가 인간의 범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존재론적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것이다. 기술적 가능 여부를 떠나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 현실의 인공지능에 대해 인간이 먼저 고민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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