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만나는 ‘기술’ <3>

 
괴테, 《파우스트》에서 절제된 기계와의 사랑 주문
감정 읽는 인공지능 등장, 인간과의 관계 설정 필요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오랜 기간 타고 다니던 승용차를 폐차한 경험은 자가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평소 기계와의 교감에 둔감한 사람도 폐차장을 향하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면 심정은 남다를 것이다. 가족의 발이 되어 아이들의 성장과정과 주요 애경사를 함께 보낸 자동차, 더군다나 운전자 자신은 출퇴근이나 비즈니스를 위해 쉼 없이 운전하면서 대상과 다양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런 자동차가 수명을 다해 폐차장을 향할 때, 그것도 남의 손에 의해 끌려갈 때 느끼는 감정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100만 원을 넘나드는 휴대폰도 마찬가지다. 비싼 가격 탓에 ‘금이야 옥이야’ 하며 애지중지하는 휴대폰은 더 이상 고전적 형태의 전화가 아니다.

각종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면서 친분을 유지하는 사교의 장이 된 지 제법 오래됐고, 필요한 경우에는 은행 지점과 증권사 매장이 되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운영하는 쇼핑몰의 데스크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각종 게임 앱은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몰입도 높은 오락의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은행이나 관공서의 창구에서 얼굴을 맞대야만 가능했던 본인여부 확인을 비대면으로 처리해주는 매체가 되어 인간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일까지 도맡아 처리하게 됐다.

한마디로 스마트폰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영역의 구분이 본질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21세기적 삶의 플랫폼이 되어 인간에게 다양한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 단 한 번도 인간에게 이처럼 많은 편리성을 제공하면서 차원 높은 교감을 나눈 기계가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휴대폰이 도입되지 고작 25년, 스마트폰 등장 5년 만에 이뤄진 일이다.

이처럼 인간은 기계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제는 없이는 살수 없는 관계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인간의 태도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괴테의 인공지능 ‘호문쿨루스’
“절 다정하게 안아주세요! 하지만 너무 꼭 껴안지는 마세요, 유리가 깨지면 어떡해요. 원래 세상 이치가 그렇잖아요, 자연적인 것은 우주가 비좁다 하지만 인위적인 것은 폐쇄된 공간을 필요로 하지요”

괴테가 스물네 살에 구상해 죽기 직전에 완성한 희곡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호문쿨루스’가 그를 만든 바그너에게 한 첫 마디 말이다.

유리 플라스크 안에서 생명을 얻은 호문쿨루스는 바그너에게 안아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괴테의 상상력에서 나온 호문쿨루스는 인간에게 무제한의 사랑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자신은 폐쇄된 공간인 플라스크가 필요하고, 그 플라스크는 유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세게 안으면 깨진다는 것이다.

괴테의 탁견이 돋보이는 이 글에서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모범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 앞에 바짝 다가선 인공지능과는 더욱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더욱 가까워진 인공지능
그런데 인공지능과 인간의 간격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얼마 전까지 고작 사진 속의 물건을 맞추었던 인공지능이 사진 속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고 있으며 심지어 말투를 듣고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기술까지 개발되었다고 한다.

사진 속 인물의 감정을 읽어내는 인공지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개발했으며, 인간의 글을 보고 말투를 찾아내 두려움과 기쁨, 슬픔 같은 감정을 읽어내는 인공지능은 IBM이 지난해 개발해 최근 업그레이드를 시켰다고 한다.

특히 IBM의 감정해독이 가능한 인공지능 인터페이스(말투 분석기)는 단어 하나하나가 아니라 문장 전체를 보고 미묘한 감정의 차이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하니, 인공지능의 인간 응대능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IBM은 인간의 감정을 읽어내는 감성분석기와 비주얼인식기 등의 인터페이스 개발을 끝내고 텍스트를 말로 옮기는 기능에 포함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추세의 인공지능 개발 속도라면 얼마 안가 영화 〈그녀(her)〉에 나오는 인공지능 ‘사만다’의 등장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등장할 것이다.

호문쿨루스는 분명 절제를 말하지만 인간은 그 절제를 무시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기계와 어디까지 관계를 맺을 것인가?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풀기 어려운 숙제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