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본다는 것’ <2>

 
과거지식의 노예처럼 판단하고 해석하는 뇌
정치적 판단도 당파성과 축적된 감정이 좌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의 뇌는 진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고, 낯설고 생소한 것에는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눈으로 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것,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데 익숙하다.

따라서 눈으로 보고 판단할 때, 우리의 뇌는 직접 눈으로 본 감각기관의 정보를 다 믿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 근거하여 판단하고 해석한다. 이러한 뇌의 경향성은 특정 의견이나 사건에 대한 인간의 반응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어떤 의견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그것이 연상시키는 감정 때문이라고 한다. 살면서 축적된 지식이나 감정이 어떤 의견이 발생했을 때 되살아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 사건이나 내용이 익숙한 것이라면 뇌는 힘들이지 않고 안정적인 태도로 의견을 수용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거부 반응을 일으키기 십상이라고 한다.

아직 진화의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던 17세기, 프란시스 베이컨은 인간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인간이 새로운 것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인다는 점, 그리고 먼저 판단하고 뇌가 이를 증명하기 위해 변명을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인간의 지성은 일단 어떤 의견을 채택한 뒤에는 (…) 모든 얘기를 끌어들여 그 견해를 뒷받침하거나 동의해 버린다. 설사 정반대를 가리키는 중요한 증거가 훨씬 더 많다고 해도 이를 무시하거나 간과해 버리며 (…) 미리 결정한 내용에 죽어라고 매달려 이미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지키려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 《신기관》 1620년)

이 말은 비록 틀린 답을 선택했더라도 자신의 결정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뇌는 끊임없이 해석하며 합리화시킨다는 뜻이다. 최근의 뇌과학에서 밝혀진 내용과 같은 진술이다.

이 같은 뇌의 습관은 정치적 판단과 행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인물에 대한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태도를 보자.

이들은 정치인의 공약이나 행동 등 이성적 요인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당파성과 후보를 향한 감정을 근거로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당파성이라는 것은 이미 축적된 과거의 지식이자 고정관념이다. 또한 후보에 대한 감정도 과거부터 쌓여온 본인의 감정인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판단 내지 행동도 오늘의 사건이나 이벤트가 중심이 되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고착화된 과거의 지식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다는 점은 많은 시사점을 건네준다.

◆백락일고
명마도 백락을 만나야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뜻의 ‘백락일고(伯樂一顧)는 고정관념의 무서움을 지적하는 고사성어이다.

《전국책》에 인용된 이 고사의 내용은 이렇다. 주나라 때 말 감정가로 이름이 높았던 백락에게 어느 날 말 장수가 찾아왔다. 자신이 준마를 시장에 가져왔는데 도통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번만 보아달라고 부탁하자, 시장에 나가 감탄하는 눈길로 쳐다만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때 그 말을 사고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렸다는 것이다.

이 고사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던 당시 시대상에 대한 고발이다. 아부와 아첨에 눈이 먼 관료들의 잘못된 잣대가 인재를 죽인다는 것인데, 요즘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고정관념에 휩싸여 출신대학과 출신지, 그리고 부모의 학력과 재산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에서 인재는 말라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록위마
연전에 우리나라 대학교수들이 한 해를 정리하면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한자성어를 선택한 적이 있었다.

진시황이 죽고 난 뒤 실세가 된 환관 조고는 자신이 옹립한 호해를 앞세워 막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다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기 위해 호해 앞에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말을 한다. 이에 황제는 저것이 어찌 말이냐고 반문하자 조고는 그 자리에 있던 관료들에게 말인지 사슴인지 물었다고 한다.

죽을 각오가 된 사람들은 사슴이라고 했지만, 생존을 위해 눈치를 본 자들은 말이라며 조고의 뜻을 받들었다고 사마천은 전하고 있다.

사슴을 사슴이라 말하지 않고 권력 앞에 무릎 꿇은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사실을 보고도 거짓을 이야기한다. 이런 정치적 행위는 수천 년이 흘러도 변함없이 오늘 날에도 자주 발생한다.

◆축록자불견산
중국 임제종의 선승 허당은 자신의 법어집에서 “사슴을 쫓는 사람은 산을 보지 못하며(逐鹿者不見山, 축록자불견산) 돈을 움켜쥔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攫金者不見人, 확금자불견인)”고 말한 바 있다.

대구를 이루는 위 인용문은 모두 《회남자》와 《열자》의 내용을 차용한 것이다.

여기서 허당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고도 보지 못하는 상황이다. 봐야할 것을 보지 못하고 빠져 있으면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이처럼 인간은 두려움 때문에 보지 못하고 고정관념에 가려 구별해내지 못하고 빠져 있어 못보고 지나가는 존재이다. 진화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다면 인위적으로 교정해야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된다. 똑같아지지 않으려면 두려워하지 말고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그리고 함부로 빠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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