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서 ‘본다는 것’ <4>

 
‘그냥’이 아닌 ‘목적 갖고’ 봐야 보여
마법 같은 천재의 발상은 존재하지 않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창의’가 대세인 시대이다. 혁신과 변화를 화두로 삼지 않은 기업이 없을 정도로 급격한 변환기의 생존법으로 ‘창의’와 ‘창조’가 중심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창의’를 특별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흔히 착각하며 살고 있다. 무에서 유가 만들어져야 ‘창의’라고 생각하고 예술가의 눈부신 기교는 흘린 땀과 뼈를 깎는 수고의 결과라기보다 타고난 재능쯤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뉴턴이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생각해내고, 모차르트가 위대한 교향곡을 한 순간 머릿속에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악상을 종이에 옮겼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뉴턴은 오랜 관찰과 연구 속에서 만유인력의 개념을 만들어냈고 모차르트는 작품의 개요를 먼저 정하고 이를 수정해가면서 작곡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피아노나 하프시코드가 없으면 작곡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천재성을 지닌 창조자의 이미지로 이들을 바라본다. 천재들은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마법적 순간을 거쳐 위대한 사상과 사물을 극적인 통찰력의 결과로 얻어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잘나가는 광고인 박웅현은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몇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창의’에 대한 일반적 속성을 비유적으로 비판한다. 우선 그는 영국의 시인 존 러스킨의 말을 인용한다.

“네가 창의적이 되고 싶다면 말로 그림을 그려라.”

그리고 앙드레 지드가 쓴 《지상의 양식》에서 “시인의 재능은 자두를 보고도 감동할 줄 아는 재능이다”라는 문장을 인용했다.

그의 또 다른 책 《책은 도끼다》에는 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다.
세잔은 모네, 드가와 같은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파리에서 그림을 그릴 때 남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로 향했다. 유명하지 않은 화가가 주류사회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는 엑상프로방스의 따스한 햇살을 보러 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너희들이 파리에서 어떤 자극을 주고받을지 모르지만 나는 한 알의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그리고 세잔은 사과에 집중했다고 한다. 보는 것은 그냥 보는 것과 호기심 속에서 목적을 가지고 보는 것에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여러분은 오늘도 양파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양파껍질 벗기듯’이라는 관용어도 자주 사용할 것이다. 그런데 그 양파가 몇 겹인지 아시는가? 태어나 지금까지 수없이 보았을 양파가 몇 겹으로 이뤄져 있는지 아시는 분은 몇 분 안 될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여주인공(윤정희 분)이 시를 강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백 번? 천 번? 백만 번? 여러분들은 사과를 한 번도 본적 없어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세잔이 본 사과가 바로 그런 사과인 것이다.

피카소는 아홉살 때 미술 선생이었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비둘기를 수없이 관찰했다고 한다. 사람도 그리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그는 비둘기의 발모양을 모사하고 머리모양을 모사하면서 15세가 되었을 때는 모델 없이도 사람을 그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관찰 속에서 비둘기의 머리는 200여 종류가 있었고, 발의 종류는 100여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겐 한 종류의 머리와 발이 있었을 텐데 그는 조금의 차이도 구분할 수 있는 눈을 어려서의 훈련을 통해 습득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천재는 ‘보고 또 보고’ 반복해서 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수십 번 봐 형태를 기억해 내고, 수백 수천 번 보면서 차이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천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러스킨은 말로 그림을 그리라고 말한 것이다. 말로 비둘기의 발모양과 머리 모양을 설명하고 사과와 양파를 설명하려면 한 두 번의 경험으로는 불가능하므로, 오랜 관찰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가 대세인 시대, 우리의 생존법은 호기심과 목적을 가지고 수없이 바라보고, 수없이 생각하며 사는 것일 것이다. 우선 인터넷으로 검색하지 말고 집에 있는 양파의 껍질을 직접 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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