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문혜정 기자> 원리금보장형 연금저축신탁 신규가입이 올해부터 중단된다. 노후생활을 보장해야 하는 연금저축이 보수적인 운용으로 수익성이 낮아 ‘국민 재산 불리기’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정부의 판단에서다. 금융당국은 연금저축신탁 판매를 중지하면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펀드로 고객들이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단순 금융상품 아닌 종합자산관리 수단으로 봐야
우리나라는 자산계층의 급속한 고령화와 본격적인 상속과 증여, 저금리에 따른 자산운용의 어려움이 계속 되면서 생애종합자산관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다.

연금저축신탁 상품을 판매해 온 은행권은 이 같은 고령화·저금리 시대에 새로운 종합자산관리수단으로 주목받는 신탁업을 제한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신탁(信託)은 말 그대로 ‘믿고 맡긴다’는 뜻이다. 그래서 단순히 하나의 금융상품이 아닌 자산관리 수단으로 봐야 한다.

신탁은 금융자산뿐만 아니라 부동산, 지적재산권, 유언 등 다른 어떤 금융수단보다 광범위한 자산을 관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다른 어떤 금융수단보다 신탁법, 상속법, 투자관련법 등 그 나라의 기본법들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신한은행 신탁연금본부 김진영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2000년대 후반 신탁제도를 전면 개선했지만 관련 법규 간 상충과 세부규정 개선이 미흡해 아직 그 기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신탁제도는 일본의 신탁제도에서 영향을 받아 출발했다. 현재 일본은 미국식 신탁제도를 도입하면서 이를 반영한 개정이 이뤄졌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신탁법’은 개정했지만 ‘신탁업법’은 폐지된 상태로 다소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김진영 본부장은 “우리나라도 신탁제도의 현대화와 유연성 확보를 통해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신탁상품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적어도 신탁과 관련된 법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구조를 가진 일본의 사례를 통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 수 있는 법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생명보험, 신탁자산에 편입시켜 고령화 문제 해결
신탁업계가 제시하는 하나의 방법은 ‘보험금청구권신탁 및 신탁자산 내 보험계약의 편입허용’이다.

보험이란 미래에 발생될 위험(보험사고)을 회피하기 위해 보험계약자가 수익자를 위해 체결하는 계약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금수령을 위해 자산을 신탁하고 그 자산을 여러 방식으로 운용하면서 그 중 일부를 종신보험에 가입하는 형태는 불가능하다. 사망 시 보험금을 유언대용신탁 등에 넣은 후 어느 시점이 되면 자녀에게 남은 목돈을 주는 방식도 허가되지 않는다.

피보험자의 사후에 보험금을 보험계약자의 의도에 따라 관리하고자 하는 니즈는 오랫동안 보험업계의 화두였다. 2012년 개정된 신탁법에서는 위탁자의 사후 자산관리 기능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수익자 연속신탁의 개념을 도입해 많은 신탁회사들이 ‘유언대용신탁’을 출시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보험금청구권신탁의 성립과 관련해 ‘보험수익자를 신탁회사로 변경하는 행위가 신탁법에서 신탁의 성립요건으로 정하고 있는 재산의 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신탁 관련 법률체계가 우리와 유사했던 일본은 신탁법 및 상속법 등을 개정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했지만 우리나라는 신탁업법이 자본시장법에 들어가면서 개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 법제도의 특성과 일본사례 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 생명보험을 신탁자산에 넣을 수 있게 함으로써 고령화 시대의 자산관리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 대안 없는 연금저축신탁 제한에 안정성 우려
정부는 연금자산의 효율적 관리방안의 일환으로 원리금보장형 신탁의 신규가입을 제한하려 하고 있다.

신탁업계는 “우리나라는 많은 사람들이 투자상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고 특히 노후대비 상품은 안전해야 한다는 신념이 강하다”며 “이러한 신념이 원금보전신탁을 없앤다고 해서 금방 변하지는 않는다. 다른 대안 없이 연금저축신탁만을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신탁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나라 퇴직연금도 원리금보장 상품이 있고 그 규모는 전체 퇴직연금의 90%에 육박한다. 특히 원리금보장 상품은 원금보장을 넘어 이자까지 보장하는 상품으로 외국의 퇴직연금에서는 찾기 어려운 상품이다.

신탁업계는 원리금보장형 퇴직연금이 퇴직연금 정착을 위한 과도기적 상품이었다면 연금저축도 과도기적 상품으로 이해해 대안을 마련하고 점진적인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본부장은 “우리나라 금융권의 자산운용 역량을 한단계 높이려면 자산운용사의 펀드, 증권사의 랩, 은행의 신탁이 서로 경쟁해 다양한 운용솔루션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며 “이것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발전시키는 방안이고 투자자산관리와 은퇴자산관리, 생애종합자산관리를 병행해 발전시키는 방법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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