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서 만나는 ‘고슴도치와 여우’ <1>

 
2차 기계혁명, 우리 사회 급격한 변화 견인
20세기 위대한 기업의 덕목 유효성 의심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금융감독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금융 산업에서 18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한다. 일자리의 대부분은 은행권에서 사라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금융업인 은행과 증권, 보험사에서 4328명의 일자리가 없어진 반면 상호저축은행과 자산운용사 및 농협과 수협, 그리고 카드·리스사 등의 일자리는 늘어나 그나마 1800여개에 그치게 된 것이다.

스웨덴에선 현금 없이 생활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고 한다. 밥을 사먹을 때도 시장을 볼 때도 버스를 탈 때도 모두 카드가 있어야지, 현금은 오히려 거스름돈 문제로 판매자가 꺼리기까지 한다고 한다. 심지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운 420만명의 스웨덴 사람들은 은행을 찾지 않고도 모바일 금융거래 앱 ‘스위시’로 축의금 등을 간편 거래하고 있다.

위 두 사항은 모두 한 가지 기술의 출현에서 비롯되었다. 바로 ‘핀테크’이다. 핀테크를 적용한 모바일 앱의 증가는 은행 등의 전통 금융 산업에서의 일자리 축소로 이어졌고, 이 흐름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또한 모바일과 핀테크 간 결합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스웨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현금은 빠른 속도로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폐공사는 이미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순금 메달 사업이나 위변조 방지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 보안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같은 변화를 과거에 예측했을까? 예측했다고 해도 이렇게 빠르게 우리 사회를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처럼 급격하게 이뤄지는 혁신의 시대에서 생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특히 과거 좋은 기업 내지는 위대한 기업들이 가지고 있던 덕목은 여전히 유효한가이다.

# 고슴도치와 여우
유명한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는 영국의 철학자인 이사야 벌린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를 분석한 책 <고슴도치와 여우>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경영에서 최고가 되는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지난 2001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한국어판은 2002년)라는 베스트셀러를 쓴 바 있다.

짐 콜린스는 이사야 벌린의 분석틀인 고슴도치와 여우를 기업에 대입시켜, 어떤 형태의 기업들이 최종적인 승자가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기업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 각종 통계를 대입시켜 가며 설명했다. 벌린은 여우를 많은 것을 두루 아는 사람으로 정의했다. 또한 서로 무관하기 일쑤고 심지어 모순적이기까지 하며, 설사 관련이 있다고 해도 도덕적 내지 심미적 일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면에서나 연결되는 행동을 하면서 다양한 목표를 성취하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 유형에 속한 사람은 <역사>를 쓴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를 필두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몽테뉴, 그리고 문학과 과학을 넘나든 괴테 및 발자크, 제임스 조이스 등이다.

이에 반해 고슴도치형 인간은 많은 것을 알지는 않지만 중요한 한 가지를 안다고 한다. 그래서 이해하고 생각하고 느낄 때 기준이 되어줄 중심 비전을 가지고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펼치면서 되도록이면 논리정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

고슴도치형 인간으로 벌린은 단테와 플라톤, 파스칼,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니체, 입센 등을 들고 있다.

# 짐 콜린스의 고슴도치와 여우
짐 콜린스가 이사야 벌린의 아이디어를 이용해 말하고자 한 것은 20세기 후반의 위대한 기업들은 모두 고슴도치 스타일이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큰 생각을 관철시켜야만 역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기는 것처럼 기업도 마찬가지라고 그는 보고 있다. 위대한 사람들이 이렇게 했듯이, 좋은 회사가 위대한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선 고슴도치 콘셉트가 필요하다고 콜린스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한 고슴도치 기업은 GE, 인텔, 머크, 코카콜라, 월 그린즈 등이다.

콜린스가 분석한 2000년 전후의 기업들은 1차 기계혁명과 2차 기계혁명의 사이에 끼어 있는 기업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등의 IT기업들은 인간의 지력을 보충하는 역할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찾아내 완벽하게 채워주려는 기업들은 아니었다.

사무환경을 개선하고, 사무처리 효율성을 높여 시간을 줄여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 것이다. GE 또한 현재는 사물인터넷기업을 지향하고 있지만 당대의 GE는 세계적인 가전업체이자 금융기업이었다.

이처럼 2차 기계혁명에 돌입하지 않았던 시절의 기업들을 콜린스는 분석을 했고, 그 시대의 승자는 고슴도치형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2차 기계혁명의 시대(4차 산업혁명)에 접어든 오늘날의 시점에서도 여전히 고슴도치가 승자로 살아남을 것인가?

기술의 혁신속도가 무어의 법칙만큼 빠르게 우리 생활은 물론 기업의 환경까지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의 방향을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 고슴도치처럼 하나의 큰 전략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인가?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모두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야 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여우형은 영원히 위대해질 수 없는 것인가? 그 해법을 찾는 기업들이 혁신의 시대를 생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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