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임유 편집위원> 최고의 연체이자는, 베니스 상인 샤일록이 받으려 한 ‘1파운드의 살’이 아닐까 싶다. 돈을 제때 갚지 않으면 살점을 도려내겠다는 ‘인육(人肉)계약’이니 아무리 고리(高利)가 무섭기로 비교가 되겠는가. 그러나, 살을 베여 죽나 굶어 죽나 죽기는 매 한가지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나마 안토니오는 계약서에 ‘피(血)’를 빠뜨린 샤일록의 실수 덕(?)에 살점을 베이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의 빚쟁이들은 눈알과 신장을 팔아도 다 갚을 수 없는 빚더미에 신음하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빚이 ‘더미’가 되는 이유는 과도한 연체이자 때문이다. 일정한 금액의 지급을 목적으로 하는 채무에서 그 원금(元金)의 지급이 지체된 경우에 지급해야 하는 손해배상으로서 일반적으로 지연이자(遲延利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종종 배보다 큰 배꼽으로 비유되는 바로 그 연체이자 말이다.

그렇다면, 살을 베이는 것보다 더 무섭고 급기야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이놈의 연체이자는 도대체 누가 왜 만들었을까? 최소한 돈 빌리는 사람이 계약서에 넣자고 하지는 않았을 게고, 이자로는 만족하지 못한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고안했거나(설마 그랬을까 싶지만), 아니면 ‘이자를 내지 않으면 엄청난 패널티가 부과될 테니 알아서들 해!’ 뭐 이런 식의 이자 잘 받기 위한 일종의 협박용(?)으로 도입되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 배경이 무엇이든 간에, 제때 갚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적용되는 이자율이 동일하다면 금융(대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이자를 제때 내려는 사람이 없다면 돈을 빌려 주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제때 갚지 않는 사람에게 일종의 패널티를 부여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바로 이것이 연체이자 탄생의 배경이 아니었나 싶다. 따라서 나는 연체이자가 고육지책일망정 이처럼 나름의 정당성을 갖는 한 최소한 필요악 수준으로는 대접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 필요악이라는 것도 잘못 설계되고 세심하게 운영되지 않는다면 한 순간에 절대 악으로 변질되지만 말이다.

모든 금융회사들이 늘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다. 법정 최고이자율(27.9%)에 육박하는 연체이자율을 적용하고 있는 제2금융권과 대부업체들은 더더욱 새길 일이다. 그 어떤 권리도 무한정 보호받을 수 없고 오로지 일정한 사회적 규범 내지 공감의 범위 안에서 행사될 경우에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연체이자 부과라는 채권자의 권리 또한 사회의 수용 범위 내에서만 그나마 필요악으로라도 위치를 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 자릿수 이자율이 보편적 대출이자율이 된 지 수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최고 연체이자율을 15%로 운영하고 있는 은행들도 경계선 위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은 금융회사들이 대출 이자를 연체하면 지나치게 높은 연체 가산금리를 부과하거나 일부 변제할 때 최근에 발생한 연체이자부터 공제시키는 등 약관을 불리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융회사들은 일반적으로 소비자가 대출을 받은 뒤 이자 납입을 2개월(신용대출은 1개월)동안 지체하면 지체된 기간의 이자에 대해 지연배상금을 부과하고 그 이후에는 대출 잔액에 대해서도 지연배상금을 부과하는데, 지연배상금(이자+가산금)을 구성하고 있는 가산금을 연체 기간에 따라 6~8%씩이나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도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2% 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여전히 10% 전후의 연체이자(지연배상금)를 받는 것은 분명 과해 보인다.

한편 연맹은 연체자의 발목을 잡는 또 다른 족쇄로 빚 갚는 순서를 지목했다. 연체자가 밀린 이자의 일부만 가져오면 은행들은 이자를 과거 것부터 제하지 않고 종종 최근 것부터 제하기 때문에 과거에 발생한 이자가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빚을 완전히 다 갚지 않는 한 ‘장기 연체자’ 신세를 벗어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역시 정당한 비판이다.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되고 시중금리 역시 역사적 최저점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체이자가 아무리 징벌적 속성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연체이자율만 인하를 거부하며 독야청청 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다간 자칫 가난한 사람들 등쳐먹는다는 억울한(?) 소리까지 들을 지도 모를 일이다. 금융회사들이 연체이자율 인하에 당장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인하가 현실화될 지는 모르겠다. 연체이자율 낮추면 제때 이자 내는 사람들이 줄어든다고 주장할 게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며 핀잔을 줄 지도 모를 일이다. 연체이자율이 좀 낮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기한이익이 상실되면(채무자가 정해진 날짜에 빚을 갚지 않으면 금융기관이 만기 전이라도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는 것) 원금 전체에 대해 연체이자가 붙고 연체한 지 3개월이 경과하면 칼같이 신용불량자로 등록되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연체를 감행하는 자들이 늘어난다고 근거 없는 주장만 되풀이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 역시도 어디까지나 예상일 뿐, 난 여전히 금융회사들의 양심을 믿는다. 이제껏 원금이고 뭐고 작정하고 떼 먹는 사람들한테서는 한 푼의 연체이자도 받지 못하면서 한 번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서만 꼬박꼬박 연체이자를 챙겨온 것이 사실이지만 과도한 빚에 허덕이는 수많은 금융 약자들에게 ‘탕감’이라는 단비를 내려준 이도 바로 우리 금융회사들이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적 약자를 지원 대상으로 하는 생활안정자금 대출에 관련된 조항이지만 ‘연체이자는 체납된 융자 원금의 9%를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한 안성시의 조례는 참고할만하다. 물론 9%라는 숫자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금융회사들이 받아들이기에 과도한 수준이다. 그러나 금융의 공익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제도 도입만은 전향적으로 검토했으면 싶다. 예컨대 ‘연체이자는 체납된 융자 원금을 초과할 수 없다’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배보다 배꼽이 커서는 안 될 일이다. 그게 공익이고 정의다. 길게 봐서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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