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서 만나는 ‘고슴도치와 여우’ <3>

 
인터넷의 유연성만큼 빠르게 변신하는 인간
“고슴도치냐, 여우냐”에 대한 고민조차 없어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인터넷은 지금은 사라진 국가 소련이 인공위성과 대기권을 벗어날 수 있는 로켓을 미국보다 먼저 개발하자 냉전에서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소련의 공격에도 파괴되지 않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되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했을 때 그는 사업에 필요한 의사소통용으로 전화가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일반 가정에서 전화는 거의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더욱이 거리를 걸어 다니며 통화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화는 비즈니스 영역을 벗어나 일반 가정을 점령한데 이어 전 세계인의 손에 전화기가 한 대씩 들려 있을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또한 군사적 목적으로 과학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위해 개발된 인터넷은 이제 고유의 개발목적이 부수적 역할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전 세계인들이 비즈니스는 물론 삶의 대부분을 영위하는 놀이터가 되었다.

오늘날의 인터넷은 너무나 거대하고 변화무쌍해서 고유의 특정 목표 내지 필요성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개방성’과 ‘쌍방향성’은 모바일 미디어와 결합되면서 인터넷을 새로운 경험을 창출해 내는 기간 통신망으로 진화하고 있다.

20세기 중반에 출발한 인터넷은 21세기에 들어 새로운 생산양식의 토대가 되었고 우리는 인터넷이 가지고 있는 무한대적인 유연성을 활용해 각종 비즈니스를 창출해 내는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 디지털 노마드
20세기까지의 승자는 분명 고슴도치였다. 그것은 고슴도치형 인간들이 일궈낸 역사적 성과와 결과물이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무한대로 ‘자기변신’을 할 수 있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로 무장한 21세기의 사회는 분명 다르다. 제4차 산업혁명(내지는 2차 기계혁명)이 만들어갈 사회의 종착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신’의 무한반복 속에서 각각의 단기 균형점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고슴도치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사회는 변화·발전하는 속도에 맞춰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자신에게 맞는 정보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모으는 한편, 도처에 깔린 정보를 서로 융합시켜 새로운 영감을 떠올려야 한다.

이와 함께 업무처리, 영업라인,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인간관계를 다변화시키고 SNS상에서 유대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좋아요’도 눌러줘야 한다. 때로는 새로운 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트위터를 통해 짧은 글을 올리면서 다른 친구들의 글도 리트윗 시켜줘야 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도 얼리어댑터가 되어 먼저 수용하고 업무에 적용하는 방법을 찾아 나서기도 해야 한다. 기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개선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 조직과 소통해야 비즈니스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세상이다.

적정한 규모와 속도 그리고 개입강도가 무엇인지 현재 이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세상이다. 누군가 현재를 살아가는데 적정한 기술이라고 말한다면, 그 즉시 새로운 기술이 적정 기술을 넘어서고 나오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고슴도치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답은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핀테크 등의 신기술이 기준이 되어 사회를 새롭게 구조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적합한 인물은 여우형일 것이다.

‘큰 것 한 가지’에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많은 일을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자료를 최대한 모아 각각의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그런 여우형에게 더 많은 길이 열려 있다.

그래서 영국의 〈더 타임스〉 컬럼리스트 벤 매킨타이어는 “오늘날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여우가 되어 버렸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남들의 의견과 주장 사이를 서핑해 가며 마음에 드는 것은 받아들이고 다른 나머지는 무시하며, 정보를 저장하고 링크를 걸며 추적하고 채집하면서 오락거리를 찾는다.”

그가 정의한 소셜 라이프다. 디지털 혁신이 주도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있다. 스마트폰과 분리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 하는 우리는 이미 매킨타이어의 주장처럼 ‘여우형’으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여우형의 삶이 현재에 적합하다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인터넷의 유연성만큼 여우의 그것이 장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슴도치여야 하는지 여우여야 하는지 조차 생각하지 않고 그냥 여우형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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