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업 구조조정, 외압 피해갈수 있을까
정치권 실세 입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아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권력의 외압에 의해 은행이 규정과 다르게 대출을 해 준 경우는 해방 이후 그 사례를 다 언급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경제성장기 기업의 발전과 운명을 같이하다 사라진 이름의 은행들은 모두 이 같은 일을 경험한 끝에 역사 속으로 퇴장하게 되었고, 현재 이름이 남은 은행들도 외압에 의한 비정상적인 대출로부터 자유로운 은행은 한 곳도 없을 것이다.

특히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경우나 지분을 국가가 소유한 경우, 그리고 1997년 IMF 구제금융 요청처럼 국가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발생한 경우를 보면 그 배후에는 반드시 권력에 의한 필요 이상의 개입을 확인할 수 있다.

조흥, 제일, 상업, 한일, 서울은행. 이들 은행은 1970~1980년대의 고도성장기를 함께 호흡해 온 은행들이다.

지금은 다른 법인의 이력 속에서 이들 은행의 이름을 찾아야 하는 신세지만 당대 이 은행들은 기업 성장의 토대가 되어 주었다. 또한 동화, 동남, 보람 등의 후발은행과 경기, 강원, 충청, 충북 등의 지방은행들도 국가적 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은행으로써의 한계를 드러내고 퇴장 당하는 운명에 처한다. 그런데 이들 은행들은 모두 정치권의 외압을 경험했다. ‘관치’에 익숙해진 보수적인 문화를 지닌 은행권의 특성상 정치권의 대출과 관련한 입김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규정을 들어 대출을 완강히 거부할 경우, 해당 직원이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발생할 정도였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조선과 해운산업이 휘청거린다. 구조조정의 목소리는 경제계 안팎을 긴장으로 내몰고 있다. 은행들도 대손충당금 문제랄지 부실여신 회수 등을 두고 볼멘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형편에 몰렸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다.

그런데 정부는 한계에 봉착했거나 넘어선 기업들을 하나의 퇴출도 없이 모두 살리겠다고 12조원을 투입한다고 한다. 한국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형태로 긴급자금을 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당연하게도 은행들은 부실여신 회수를 할 수 없게 된다. 굳이 금감원이 은행장들을 불러 모아 여신회수를 신중히 해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정책이 발표되는 순간 은행들은 그 뜻을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정치권 눈치를 보면서 살아온 금융권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이랄까? 이런 상황에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해 이뤄진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규모의 대출이 은행 자의에 의한 판단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최경환 당시 부총리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고 폭탄 발언을 했다.

언론 보도 이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일부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고 수습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외압에 대한 규모와 방식, 그리고 절차가 고스란히 드러나면서 국민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홍 전 회장의 발언의 진위 여부에 따라 후폭풍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정치권력과 부실을 감춘 추악한 자본의 결탁까지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재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해운산업과 조선업에 대한 정부 주도하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시기라는 점이다. 현재 정부가 세운 계획에 따르면 그 부담은 언제 지느냐의 문제이지 모두 국민들의 몫이 된다.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다고 하더라도 임시방편일 뿐 국민의 세금 없이 구조조정 비용을 조달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집권여당의 실세가 언급된 사건이 전직은행장(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AIIB 리스크담당 부총재)의 입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후폭풍의 규모에 따라 은행권이 겪어야할 내홍과 외압의 규모가 정해질 것이다. 이것이 현재 우리 금융산업의 수준이라는 것이 한심할 뿐이다. 20년 전 IMF를 경험할 때부터 항시 거론됐던 문제가 변함없이 발생한다는 것.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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