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만나는 ‘영웅’ <1>

 
호메로스도 현대적 재해석 통해 교훈 찾아야
시대와 공간에 따라 영웅의 전형은 서로 달라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페르세우스. 이들은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이다. 이들은 모두 힘과 용기, 그리고 지략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불멸을 꿈꾸며 지하세계로 여행을 떠나 어둠의 세력과 싸움을 벌이고, 불가능한 ‘위업’을 달성하기도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삼국지>에도 힘과 용기와 지략을 겸비하고 전장을 누비는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조조, 관우, 장비, 유비, 제갈량 등 일일이 거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영웅들이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야기의 보고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런 영웅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 중에 영웅들의 이야기, 즉 영웅담을 담고 있는 책이 많은 까닭이다.

동양의 고전 중에는 앞서 말한 <삼국지>와 <수호전>, <열국지> 등이 있으며 심지어 역사책인 <사기>의 〈열전〉은 온갖 영웅들의 전형이 모아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책 중에는 토마스 불핀치가 편집한 <그리스로마신화>는 물론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등의 책은 모두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류의 초창기 저작들에 영웅들의 이야기가 많았던 이유는 공동체를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를 실천할 구성원들의 교육적 효과 때문이다. 즉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인간의 전형을 영웅담을 통해 전체 구성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들의 이야기를 주로 생산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대에 따라 필요로 하는 영웅은 달랐다. 초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힘과 용기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또한 그들은 모두 불멸의 가치인 ‘신성성’을 추구했다. 즉 그 시대가 요구하는 구성원의 덕목이 힘과 용기였으며, 그 힘과 용기를 이용해 공동체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당대에는 영웅으로써, 그리고 사후에는 신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아 전승되었다.

그러나 후기 신화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영웅에 포함되기 시작한다. 공동체가 힘과 용기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지혜로운 영웅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공동체에서의 대우도 신성성보다는 당대의 명성에 그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영웅이 오뒷세우스다. 트로이전쟁의 공간에서 영웅은 힘과 용기의 대명사인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였지만 그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탁월한 지략을 보여준 오뒷세우스 같은 영웅이 사회적인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영웅들은 시대에 따라 그 범주와 내용을 달리하면서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수호하는데 이미지를 제공해왔다.

그런 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21세기에도 이 사회의 특성에 부합하는 영웅들을 필요로 한다. 물론 독일의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갈릴레이의 생애>라는 희곡에서 갈릴레이의 입을 빌어 “영웅을 필요로 하는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말한 바 있다.

갈릴레이가 교황청에 불려가 종교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지동설을 철회하자 “영웅을 갖지 못한 불행한 이 나라여!”라고 그의 제자 안드레이가 말하자 위의 말로 갈릴레이가 화답했던 말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공동체에 무언가 부족한 것이 생기게 되면, 그것을 채워줄 새로운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영웅을 필요로 해서 불행하던, 영웅이 없어서 불행하던 공동체는 끊임없이 새로운 영웅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영웅을 통해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공동체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길 원한다.

그런 점에서 21세기의 대표적 영웅은 ‘스티브 잡스’이다. 인문학과 공학의 절묘한 교차점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했다는 점,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는 사실상의 플랫폼 중 하나인 ‘모바일’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그의 탁월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테슬라를 이끌고 있는 엘론 머스크, 구글을 이끌고 있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 현재진행형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있는 많은 예비영웅들이 곳곳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이들이 쓰는 이야기가 호메로스의 영웅담과 많이 다를 것이다. 공동체가 추구하는 미덕과 탁월함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덕과 시선의 ‘차이’보다 ‘다름’ 속에서 영웅들의 가치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메로스가 쓴 영웅 네 사람은 현대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충분한 의미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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