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금융시장은 핀테크라는 용어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금융과 IT를 접목시킨 온라인 금융서비스에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공인인증서와 액티브X가 깔린 PC 하나만 있으면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가능했던 세상에서 우리는 이미 핀테크의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한국의 자랑이었던 원스톱 금융서비스는 스마트폰이 바꾼 ‘모바일’ 세상에서 맥을 못추고 말았다. 모바일에 익숙해진 세대들은 PC에서 가능했던 모든 것을 스마트폰에서 시도하려고 했지만 로그인조차 힘들었다.

다급해진 정부와 금융회사가 서둘러 규제를 완화하고 개발에 나선지 2년, 국내 금융시장은 디지털금융 혁신이라는 난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본지는 2016년 7월 18일 지령 1000호를 맞아 30대 직장인 김도진씨의 하루일과를 통해 스마트폰이 바꾼 새로운 금융세상을 둘러보았다.

은 행

#30대 초반 직장인 김도진 씨는 금융업무 처리를 위해 더 이상 은행 영업점을 찾지 않는다. 자주 이용하는 계좌조회나 이체는 주거래은행에서 나온 모바일뱅킹을 이용하고 있다. 공인인증서가 아닌 지문인증만으로 접속이 가능해 인증서를 따로 복사하거나 이동시킬 필요도 없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서는 모바일뱅킹에 접속해 무료로 이용 가능한 오늘의 운세를 확인하고 간단한 게임도 즐긴다. 이제 김도진 씨의 은행은 손 안에 있다.

‘손안의 은행’, 인터넷뱅킹과 뭐가 달라?

2016년 7월, 대한민국 은행들의 모바일 브랜드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스마트폰과 IT기술의 발달로 성장속도를 높이고 있는 모바일뱅킹 시장에서 도태되면 은행의 미래도 불투명하다는 목적의식에서 시장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활시위를 당긴 곳은 우리은행이다. 민영화라는 과제 달성을 위한 기업가치 제고와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에 대비한 모바일뱅킹 시장의 경쟁력 확대를 위해 재빨리 모바일 시장의 변화에 대응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5월 ‘위비뱅크’라는 모바일뱅크를 선보였다. 위비뱅크는 대면채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상품 라인업을 구성하고 혜택을 높였으며 여행자보험이나 레저보험 등의 보험상품을 위비뱅크의 환전서비스와 연동시켰다.

위비뱅크의 차별점은 ‘펀(FUN)서비스’다. 위비톡이라는 금융권 최초의 메신저서비스와 연동하고 게임, 음악방송, 오늘의 운세, 할인쿠폰, 응모권 이벤트 등 부가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의 관심을 이끌었다. 고객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더 모바일뱅킹에 머물게 해 플랫폼화를 시도한 결과 위비뱅크는 1년여 만에 신규 가입자 수 77만여명을 돌파했다.

뒤를 이어 신한은행이 ‘써니뱅크’를 선보이며 은행권의 모바일 브랜드 경쟁에 가속도가 붙었다. 써니뱅크는 환전서비스와 자동차금융에 특화했다. 써니뱅크가 제공하는 ‘신한스피드업 환전’은 지난달 기준 환전금액이 3900억원을 넘어서며 환전시장의 핵으로 떠올랐다. 신한은행과 거래가 없어도 우대환율을 제공하고 예약환전, 환율정보, 환율알림 서비스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점이 주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자동차금융도 써니뱅크의 자랑이다. 써니 마이카대출은 출시 4개월 만인 지난 6월 기준 취급액 1000억원을 돌파하면서 1금융권 자동차 금융의 모범사례로 각광받고 있다. 중고차 시세와 실매물 검색서비스를 제공하고 대출 과정을 간편화해 편의성을 높였다. 차량시세나 매물검색, 자동차정보 등 부가서비스도 인기 요소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28일 신규 브랜드 ‘리브’를 통해 뒤늦게 모바일브랜드 전쟁에 뛰어들었다.

리브의 차별점은 소셜네트워크다. 회원들의 모임 중심 서비스를 강화해 집토끼를 지키겠다는 심산이다.

리브는 동호회를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회원명부와, 회원경조사비, 회비장부 관리 기능을 제공한다. 더치페이의 경우 여러 사람의 공동비율을 간편하게 나누고 송금할 수 있게 했다.

화려함으로 치장한 ‘모바일’, 급처방에 불과

모바일뱅킹 시장의 성장과 인터넷은행의 등장은 은행권의 모바일 브랜드 출시를 앞당겼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모바일뱅킹 서비스의 일평균 이용 건수는 4239만건으로 전년대비 36.1% 증가했다. 일평균 이용금액도 2조4962억원으로 36.2% 늘었다.

대면채널보다 비대면채널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일반 소비자들의 모바일 활용이 예상보다 빠르게 확장되면서 브랜드 전략 강화를 통한 모바일뱅킹 영업은 필수가 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행의 주요 사업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금리대출 시장과 소액이체 시장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 모바일뱅크에 관련 서비스를 탑재하고 서비스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은행권의 이 같은 모바일뱅킹 전쟁에 곱지 않은 시선도 존재한다. 기존 금융서비스와 별다른 차별점이 없기 때문이다. 은행권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는 모바일뱅크는 주력 전략이라기보다는 인터넷은행이나 일부 은행의 신규 모바일 브랜드를 견제하기 위한 급한 처방전으로 보인다.

실제로 은행들이 모바일뱅킹 성장을 위해 금리 등 훨씬 뛰어난 혜택을 제공하면 기존 지점이나 인터넷뱅킹 채널이 침체될 것으로 우려해, 신규 모바일뱅킹이 갖춘 금리의 우월함은 크지 않은 편이다. 대신 중금리대출, 환전서비스, 펀서비스, 간편 자산관리 등 부가서비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안도 위험요소 중 하나다. 최근 모바일뱅킹은 지문인증이나 영상통화 인증 등 최신 보안인증 서비스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이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 인증 등 첨단보안기술이 고객정보가 IT사고로 유출될 경우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는 상당한 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모바일결제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72.5점으로 가장 높았고, 공인인증서 등 ‘안정장치에 대한 불신’이 70.7점으로 뒤를 잇고 있다.

은행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변화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은행권의 10년 전 전산시스템과 현재를 비교해보면 부수적인 변화만 있을 뿐 대고객 금융서비스의 흐름을 바꿀만한 혁신은 없었다. 이에 대해 은행 스스로 IT기술의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고 서비스 개발을 게을리 했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내놓는다.

은행들의 모바일뱅킹 전쟁에도 비슷한 맥락이 숨어있다. 형형색색의 보안인증과 부가서비스로 치장하고 자신들의 새로움과 화려함을 뽐내고 있지만 은행의 기본이 되는 예금과 적금, 대출 서비스 등에는 혁신적인 변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않는 변덕 심한 비대면채널 안의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모바일뱅킹에 갖가지 양념을 집어넣고 있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고객이 모바일뱅킹에서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느냐, 부가서비스의 화려함보다는 은행 고유 서비스의 ‘진짜배기’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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