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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밤 야근으로 늦잠을 잔 김도진 씨. 헐레벌떡 가방을 챙겨 버스를 타고 스티커카드가 붙은 스마트폰을 단말기에 갖다 대자 ‘삐릭’하고 버스비가 결제된다.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지갑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 씨는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앱카드로 냉면 한그릇을 사먹었다. 남은 점심시간에는 온라인쇼핑몰에서 미리 저장해놓은 카드정보로 간단히 셔츠 한벌을 구입했다. 퇴근길에는 ○○카드 앱으로 세탁물 수거를 신청하자 예약한 시간에 세탁소 직원이 세탁물을 가지러 왔다. 집에 도착해 책상 위에 지갑을 본 김 씨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지갑 없는 세상, 넌 무슨 ‘페이’ 쓰니?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지갑 없이 스마트폰만 있어도 결제가 가능해지면서 국내 모바일결제 시장 규모는 지난 2013년 2조3550억원에서 2014년 3조8830억원, 2015년 5조7200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인터넷 이용자 10명 중 6명이 간편결제를 사용해봤다고 한다.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더 남아있다는 의미다.

카드사들은 기존의 플라스틱카드를 모바일로 옮겨 담은 모바일카드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신한카드 앱카드인 ‘FAN페이’는 지난 4월 누적 발급매수 1000만매를 돌파했다.신한 FAN페이의 발급매수는 2013년 200만매, 2014년 580만매, 2015년 950만매로 점차 증가하다 올해 업계 최초로 1000만매를 넘어섰다. 모바일카드 이용액 역시 2013년 3300억원, 2014년 2조500억원, 2015년 3조8000억원으로 늘어 올해는 5조원에 달할 전망이다.

하나카드의 ‘모비원(mobi 1)’, 우리카드의 ‘모바이(MO BUY) 카드’는 실물 카드가 없는 모바일 단독 카드다.

모바일 단독 카드는 기존의 모(母)카드가 있어야 자(子)카드가 발급되는 카드발급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례다. 모바일 앱이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해 카드를 신청할 수 있으며 실물 플라스틱카드가 없어 카드 발급비용, 카드 플레이트 제작비, 배송비가 제외돼 연회비가 2000원~1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다.

범용성을 장점으로 사용자가 300만명을 넘어선 ‘삼성페이’에 특화된 모바일카드도 등장했다. KB국민카드는 삼성페이와 연계한 모바일 단독 카드 ‘KB국민 모바일 101카드’를 선보였고, 삼성카드도 삼성페이 이용자들의 카드 사용 패턴 변화에 주목해 삼성페이 사용 시 포인트 적립혜택을 두 배로 주는 ‘삼성페이 삼성카드 & POINT’를 선보였다.

하나카드는 스마트폰에서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결제가 완료되는 앱카드 ‘모비페이’를 운영 중이다. 모비페이는 PC를 통한 온라인쇼핑 시 결제화면에 휴대폰 번호만 입력하면 스마트폰에 설치된 모비페이가 자동 팝업되고, 휴대폰 번호를 최초 한 번만 입력하면 재입력할 필요가 없어 고객편의성을 높였다.

BC카드는 간편결제 앱인 ‘페이올(PayAll)’뿐 아니라 오프라인 전용 안전결제 앱인 ‘mISP’, mISP의 온라인버전 ‘BC페이’ 등 다양한 간편결제 앱을 제공하고 있다.

하나카드와 BC카드는 모바일 거래 시 부정사용을 차단하고, 매번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기 위해 더욱 강화된 보안기술을 적용했다.

하나카드는 모비페이에 지문인증 및 보안 신기술을 탑재했으며, BC카드는 mISP에 세계 최초로 FIDO 기반 목소리 인증 결제기술 개발을 도입했다. 목소리 인증은 본인의 음성으로 ‘내 목소리로 결제’라고 스마트폰에 저장한 후 이 멘트와 똑같이 말하면 결제가 되는 방식이다.

KB국민카드도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 인증서비스를 개발했다. 블록체인은 거래장부를 특정 금융사 서버에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에게 공개하고, 추가 거래가 이뤄질 때마다 참여자의 승인을 받도록 한 해킹방지 기술이다. KB국민카드는 블록체인 인증서비스를 홈페이지 및 모바일 앱 간편 로그인, 전자상거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보다 빠르고 간편한 결제를 위한 서비스도 등장했다.

현대카드는 제휴 쇼핑몰에서 ID와 비밀번호 입력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페이샷(PayShot)’ 서비스를 선보였다. 여기에 모바일로 손쉽게 국내·해외, 온·오프라인 결제를 잠그거나 이용금액을 설정하는 ‘락앤리밋(Lock & Limit)’ 서비스와 실제 카드번호와 다른 ‘가상카드번호’ 발급 서비스를 더해 카드이용의 안전성을 더했다.

삼성카드는 최근 24시간 365일, 야간이나 주말에도 카드를 신청할 수 있는 모바일 앱 ‘삼성카드 탭탭(taptap)’을 선보였다. 탭탭은 카드신청-심사-발급을 디지털 중심으로 개편한 것으로 오전에 카드를 신청하면 오후에 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을 정도로 스피드를 강화했다.

세탁, 대리운전… O2O에 승부를 걸다

핀테크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는 대중적 확산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카드사들은 플라스틱카드에 친숙한 소비자들이 모바일카드로 옮겨가도록 하는 것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기존 서비스에 익숙한 고객을 대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다시 익숙하게 만드는 작업은 신규 서비스의 품질을 떠나 고객의 니즈에 부합해야 하는 숙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고객의 니즈가 상당히 다양화된 상황에서 틈새시장이 아닌 대중적인 확산을 실현하기는 만만치 않다.

다양한 카드사의 간편결제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업계는 편리성과 보안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음을 토로한다. 모바일의 상품과 서비스는 편리성과 보안성이 차별화 포인트지만 이들은 양날의 칼과 같은 존재로 보안을 강조하면 편리성이 줄고, 편리성을 강조하면 보안성이 떨어진다.

법적인 규제도 아쉽다. IT기업과 달리 서비스 도입에 규제가 많아 규제 기관의 허가를 받기까지 시간이 지체되고, 결제플랫폼 구축 등 카드사 단독으로 진행하기 어려운 사항도 별도의 주체가 없어 진행이 지연되기 일쑤다.

하지만 세상은 모바일로 바뀌고 있다. 카드 결제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플라스틱카드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만 그것이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다. 카드사들은 유통사와 IT기업들이 출시한 ‘페이’ 시장에서 결제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세탁, 대리운전, 카셰어링, 원룸, 미용, 호텔, 대학등록금 결제 등 온라인에서 서비스를 신청하고 오프라인에서 이용할 수 있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선보이며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그들이 던진 승부수는 5년 후, 10년 후 카드사의 위치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이미 누군가에겐 위기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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