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임유 편집위원> 미국 최대은행인 BoA(Bank of America)에 의해 1958년 발행된 ‘뱅크아메리카드(BankAmericard)’가 이른바 글로벌 브랜드카드의 위용을 갖춘 시기는 1974년이다.

미국을 넘어 캐나다와 영국 그리고 유럽을 포함한 글로벌연합체(International Bankcard Company)가 만들어지기까지 16년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지금의 ‘비자(VISA)’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인 1976년이다.

우리 국민 해외 카드사용액의 54%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점유율을 자랑하는, 전 세계 150여개국 이상 3000만개 이상의 가맹점에서 사용되고 있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신용카드 회사인 바로 그 ‘비자카드’가 최근 수수료 인상을 선언했다.

이번 인상이 관철되면 비자카드는 우리 국민들한테서만 한 해 약 800만달러의 추가 수수료 이익을 챙긴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인상의 방식과 내용에 문제가 많다며 국내 신용카드 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왜 우리만 인상 하느냐는 ‘차별론’에서부터 일방적으로 인상이 결정, 통보됐다는 이른바 ‘갑질 논란’까지 인상을 둘러싼 불만은 다양하다. 불쾌함과 억울함 그리고 분노와 같은 감정적 대응에 앞서 무엇보다 인상으로 인한 직접적 피해를 우리 국민이 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전말을 되짚지 않을 수 없다.

비자는 이번 수수료 인상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한정한다고 발표하면서도 일본과 중국을 인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비자는 원래 지역별로 운영 규정 및 수수료 체계 등을 다르게 적용해 왔기 때문에 수수료 인상을 아태지역에 국한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일본과 중국이 유럽 국가라면 모르겠으나 같은 아태지역 국가인데도 유독 우리한테만 수수료를 인상하겠다고 하니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차별의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더더욱 의심을 거둘 수가 없다.

혹자는 만만한 상대부터 굴복시킨 후 그 여세를 몰아 타 국가들까지 인상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글로벌 브랜드카드를 갖고 있는 중국(유니온 페이)이나 일본(JCB)은 씨가 먹히지 않으니 한국만이라도 올려 이익을 더 보겠다는 속셈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제까지의 글로벌카드 수수료 전쟁(?)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늘 우리만 피해를 봐왔으니, 생각은 신념에 가깝다.

아무튼 더 이상 역차별은 묵과할 수도 묵과해서도 안 될 일이다. 국제적 관행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우리의 신용카드 위상으로 볼 때 그런 대접 받을 때가 지났기 때문이다. 글로벌 브랜드카드 회사는 국내 신용카드회사와 국내 신용카드 회원에게서 각각 수수료를 받는다. 회사로부터는 분담금 개념의 서비스 수수료와 발급유지 수수료를, 회원들로부터는 국내외 카드사용에 따른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이 중 회원들이 내는 수수료가 제일 크다.

따라서 ‘회사에 부과되는 분담금(0.2% 내외)과 회원이 내야 하는 수수료(1%)를 약 10% 올리겠다’는 비자카드의 이번 인상안의 최대 피해자는 신용카드 회원이다. 우리 국민이라는 얘기다. 이번 인상 발표를 가벼이 볼 수 없는 이유다.

수수료 인상과 같은 중요 사안을 비자의 통보로 결정한다는 점도 유감이다. 아무리 독점적 지위를 갖는 세계 1위의 글로벌 브랜드카드 회사라지만 발급 계약서에 수수료율을 명시하지 않고 자사의 규정에 따라 일방적인 통보로 이를 결정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카드업계는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한 모양이다. 법무법인을 통해 비자카드가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 국내 법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비자카드 본사 및 아태지역 본부에 항의서한을 보낼 방침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 해도 법원이 국내 카드사의 손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다.

본질적으로 국가 간 분쟁인 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도 있어 법원이 쉽사리 결정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에서다. 이처럼 횡포에 가까운 일방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사용할 구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그렇다고 순순히 부당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이 또한 답답한 노릇이다. 만약 비자카드가 예정대로 수수료를 인상한다면 마스터카드 등 다른 글로벌 브랜드카드 회사들도 줄줄이 수수료 인상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업계도 당국도 아닌 시민사회가 나서야 할 것 같다. 우리 국민 주머니를 털겠다는 얘기니 나서지 못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국민적 분노로 번질 경우 글로벌 브랜드카드로서의 존재 기반까지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자의 결자해지가 우선임은 두말 할 나위도 없지만 말이다.

우리 신용카드가(회사든 회원이든) 더 이상의 굴욕적 대우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도 글로벌 브랜드카드를 갖는 것 말이다. 글로벌 브랜드카드의 횡포로부터 국내 신용카드 회원들을 보호하고 국내 신용카드의 발전을 도모하며 궁극적으로 국부의 유출을 차단하는 방법은 그 길뿐인 것 같다.

단언컨대, 글로벌 브랜드카드의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비자와 마스터는 긴장할 것이다. 시장의 요구는 받아들여질 것이며 정상화는 앞당겨질 것이다. 경쟁이야말로 소비자 후생을 높이는 궁극의 방법이라 믿는다.

우리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과 기술은 이미 모든 국가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세계적 수준에 올라 있다. 신용카드 공동망 운영 경험도 충분하다. 여신금융협회라는 주체 또한 튼튼한 자산이다. 자본은 차고도 넘친다. 계획과 준비면 충분하다. 마침 금융당국이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한중일 카드 동맹’ 구축 방안 마련에 나섰다는 얘기도 들린다. 진위에 대한 논란과 글로벌 브랜드카드 진입전략의 상이에도 불구하고 그 발상만큼은 신선해 보인다.

비자카드의 기습적 수수료 인상을 당장 무력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함부로 횡포를 부렸다간 큰 코 다친다는 사실 정도는 알려줄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렇다. 독자적인 글로벌 브랜드카드를 만들든 이른바 ‘동맹’을 모색하든 그 꿈만은 당장 꿀 일이다. 국내 신용카드 산업의 글로벌 성장전략의 일환으로 제대로 된 글로벌 브랜드카드 진입전략을 마련하는 일은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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