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그리고 벤처금융<2>

<대한금융신문=임유 편집위원> 문민의 깃발을 들기도 한참 전인 1986년, 대기업 경제체제가 강고해지기 시작할 시점에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법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따라서 놀라운 일이다.

아무튼 ‘중소기업 창업을 지원해 건실한 산업구조를 구축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중소기업 창업지원법’이 창투사를 낳았다. 이렇듯 초기 창투사는 글자 그대로 창업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회사일 뿐 벤처캐피탈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신기술사에게 벤처캐피탈의 역할이 주어졌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창투사는 창업 중소기업에 투자하지만 신기술사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이를 응용하여 사업화하는 중소기업’인 ‘신기술사업자’에게 투자하게 되어 있었고 2년 이상 된 창투사 중에서 신기술사 자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창업 벤처는 창투사가 맡고 성장 단계에 있는 벤처는 신기술사가 맡는 구조로 역할이 나뉘어졌다기보다 창투사는 창업 중소기업 일반을 맡고 중소기업 중 신기술사업자(벤처)에 대한 투자는 신기술사가 맡는 구조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는 얘기다.

사전은 ‘첨단의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하여 사업에 도전하는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을 벤처기업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현실 법률 세계 어디에도 벤처기업의 정의를 밝힌 곳은 없다. 벤처캐피탈을 가리켜 ‘벤처기업에게 투자(무담보 주식투자 형태)하는 기업이나 그러한 자본’이라 부르는 곳도 없다. 다만 창업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창투사와 신기술사업자에 투자하는 신기술사만 있을 뿐이었다. 1997년이 될 때까지 10년의 세월 동안은 그랬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국민경제를 다시 일으킬 무엇이 절실했던지, 그 무렵 ‘벤처기업육성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육성법)’이 탄생했다.

그러나 벤처육성법은 벤처보다 벤처캐피탈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듯 모든 법률이 다 따르고 있는 용어에 대한 정의를 포기한 대신 벤처기업을 창투사와 신기술사가 투자한 기업으로 규정함으로써 창투사와 신기술사에게 자신들을 탄생시킨 모법조차 언감생심이었던 벤처캐피탈의 영예(?)를 부여해버렸다. 이를 계기로 창투사와 신기술사는 벤처 생태계의 주인 자리를 꿰차는 행운을 얻게 됐다.

당초 10년짜리로 설계된 ‘특별법’은 일몰 연장을 통해 이제껏 목숨을 부지했다. 내년이면 또 일몰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 일몰 연장이 아닌 벤처육성법의 전면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벤처 육성이 특정 정권 혹은 특정 시기에 필요했던 일시적 패션이 아니라 국민경제의 잠재적 성장률을 견인해 내는 사활적 과제라는 점이 받아들여진 것 같아 우선 반갑다. 지원과 육성을 넘어 새로운 희망이 쓰여지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벤처업계의 해묵은 과제인 창투사와 신기술사에 대한 통합 논의가 제자리 걸음을 걷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두 회사는 동일한 벤처캐피탈임에도 근거법이 달라 불필요한 논쟁을 야기하고 있는 만큼 벤처육성법 개정 논의와 맞물려 개선방안이 검토되기를 바란다. 금융은 금융에게 넘기고 정부는 산업적 이해에만 복무하는 것이 개정의 출발점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벤처캐피탈이 산업의 영역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초기에는 투자가 회수(exit)되는 경험과 실적이 없어 민간 자본이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다. 정부기금을 통한 직접 투자가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벤처캐피탈 시장이 투자-성장-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기만 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민간 자본이 이를 대체할 수 있어서다. 지난 20년의 세월 동안 우리의 벤처 생태계가 나름 선순환의 궤도에 진입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지금의 벤처캐피탈 정책은 민간투자 확대와 IPO, M&A 등 회수시장 활성화로 무게중심을 이동해야 한다. 민간자금 참여의 제약요인을 대폭 해소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정비하는 것이 그 구체적 실천 내용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오는 10월이면 신기술사업금융전문회사(이하 신기술금융회사)가 출범한다. 지난 1998년 ‘신기술사업금융업법’이 ‘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통합되면서 기존 신기술사는 ‘금융회사’의 지위를 잃고 ‘여신전문금융회사’의 개별 업무 중 하나(신기술사업금융업)로 전락했던 것인데, 마침내 ‘회사’의 신분을 되찾고 오롯이 신기술만을 담당하는 신기술금융회사로 재탄생한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더구나 등록 요건 중 최소자본금 규모가 20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낮아졌으니 지금보다 더 많은 업체가 신기술금융 시장에 진입할 것은 분명하다. 최근에는 신기술금융회사의 투자 대상을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이래저래 신기술금융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확대될 것은 불문가지고 벤처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규모도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신기술금융회사의 자본금 규모를 둘러싸고 중기청과 금융위 간 이견이 있었음은 알려진 얘기다. 벤처캐피탈 업계도 창투사와 신기술사로 나뉘어 논쟁에 합류했다고 한다. 심지어 자본금 규모에 따라 벤처캐피탈 간에도 이해를 달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어디에도 수요자인 벤처기업의 목소리는 없었다. 그 어떤 집단의 이해도 수요자의 그것을 침범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이런 때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상이 어디든 투자는 본질적으로 금융의 영역이다. 금융회사가 맡는 게 답이다. 투·융자가 따로 존재할 수 없는 한 벤처캐피탈은 금융이 맡아야 옳다는 얘기다. 혹여 부처이기주의가 이른바 ‘통합’을 막는 것이라면 범정부 차원에서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결정해야 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벤처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과 육성은 창업 중소기업에 집중되어야 한다.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한 그들에게 굳이 ‘신기술’을 요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정부는 기금을 만들 뿐 운용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돈 댔다고 배 놔라 감 놔라 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규제는 풀고 사후 감독에만 충실하면 되는 일이다. 다른 금융의 영역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금융감독 수준은 이미 세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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