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으로 만나는 '영웅'<1>

 
행동의 결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캐릭터
아킬레우스만큼 용감하면서 중세기사도 갖춰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은 한결같이 공포심을 극복하고 고통에 대한 인내를 배우기 위해 지하세계, 즉 하데스를 향한다. 헤라클레스가 그랬고 오디세우스와 아이네이아스가 그랬다. 목적은 달랐지만 하데스는 그들의 용기와 지략을 시험하는 시련의 시공간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여신 헤라가 부과한 12과제 중 마지막 임무인 하데스의 감옥을 지키고 있는 개 케르베로스를 사로잡아오기 위해 지하세계를 내려갔고 오디세우스는 20년간 떠나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트로이에서 탈출한 아이네이아스는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하데스를 향한다.

이처럼 영웅들은 고통을 감수하고 시련을 극복하면서 성장해가는 인간형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이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당대의 영웅들과 시민들은 모두 참전용사였다. 그런 만큼 호메로스는 승리하는 전사의 이미지를 서사시를 통해 노래하고 싶었다.

아킬레우스, 아이아스, 아가멤논, 파트로클레스, 헥토르 등 모두가 고대의 전사들이다. 그런데 딱 한 사람, 디오메데스는 고대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는 중세의 기사도 정신에 충만했으며, 그런 점 때문에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올림푸스 신들과 싸워 상처를 낼만큼 용감했던 디오메데스는 아킬레우스가 파업하면 등장했던 그리스 연합군의 5분대기조 같은 영웅이다. 아킬레우스가 빠진 그리스 연합군의 전력을 그나마 그가 있어 보충할 수 있었다. 물론 디오메데스는 호메로스의 상상력에 의해 테바이 시대에서 트로이 시대로 소환된 경우다.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몇 세기 전에 테바이를 공략했던 장수였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에서의 균형을 위해 그를 문학적 상상력으로 서사시에서 되살려 놓은 것이다.

그렇게 되살아난 디오메데스는 아킬레우스만큼 용감했다. 하지만 그처럼 우악스럽지도 격하지 않았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아프로디테, 아폴론과 맞서는 용기와 함께 아테나이의 설득에 창을 거둘 수 있는 인내도 갖추고 있었다.

그와 관련한 유명한 일화는 전장에서 글라우코스와 만난 사건이다. 선대의 인연을 들어 적인데도 반갑게 맞이하고 서로의 무구를 바꿔 입는 멋스러움이 그에겐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무구를 청동이었고, 글라우코스는 황금 무구여서 황소 아홉 마리로 백 마리를 얻는 경제적 이득을 취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사고뭉치처럼 ‘힘과 용기’로 모든 문제에 대처했던 고대 영웅들과 달리 앞으로 일어날 결과를 생각하며 움직인다. 또한 전쟁터에서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을 보이는 것은 물론 좌중의 의견을 이끌어내는 설득력도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두고 이후의 그리스인들은 ‘디오메데스의 균형’이라고 그의 덕목을 숭배했다. 호메로스의 상상 속에 등장한 그의 미덕은 기원전 5세기 쯤 그리스 폴리스 문화가 꽃피우던 시절을 이끄는 정신적 토대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정신과 육체의 균형, 그리고 자기 통제를 이끌어내는 합리적 태도까지 그의 덕목은 ‘균형’으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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