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벤처캐피탈협회 이의준 상근부회장

한 달 전 언론에 가십거리 하나가 오르내렸다. 한 고위공직자의 말실수가 국민적 공분을 사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공직자의 명예는 물론 직장과 연금을 잃는 등 엄청난 재난에 처하게 되었다.

이 와중에 한 전직 국회의원은 “11억 중국 거지 떼”라는 발언으로 중국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다. 과거에도 노인 폄하발언으로 비난을 받은 정치인, 좌초한 유조선의 기름유출로 인한 피해어민의 분노를 자아내 결국 사퇴한 장관 등이 있었다.

동서고금이 마찬가지다. 이태리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2008년 오바마가 당선되자 “잘 생긴 젊은 친구가 선탠을 했네”라고 발언해 양국에 분란을 제공했다. 중국 한나라의 양운은 친구이자 태수인 손회종에게 남을 비방하는 등의 글귀를 보내 죽임을 당했다.

주변에 말 한마디 잘못으로 주변의 원성이나 소송을 자초하는 사례가 흔하다. 정치인이나 공무원, 연예인, 기업인 등이 노인, 여성, 인종을 폄훼하거나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비하하여 곤욕을 치루는 일이 빈번하다.

그저 순간적으로 한 말 한마디로 인한 것이다. 옛말에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는데 말실수는 오히려 가진 것을 송두리째 잃게 한다.

말실수는 설화(舌禍)의 원인이다. 설화는 말이 법률에 위배되거나 사람들의 입장이나 감정에 반하여 그들을 노하게 하며 받는 재난이다. 이는 욕, 음담패설, 비난, 무시는 물론 불친절한 언어나 표정에서 유발된다. 말실수는 결국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다. 구설수(口舌數)는 입과 혀로 운수가 정해지는 것이다.

중국 후당시대의 재상인 풍도는 <전당서>의 설시(舌詩)편에서 입은 재앙이 들어오는 문이고(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혀는 제 몸을 베는 칼(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이라고 하였다. 세치(三寸)의 혀가 몸을 베는 칼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말 한마디의 실수는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상의 다양하고 즉흥적인 표현과 철저한 검색환경에서는 결코 가벼이 넘어가질 않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데 이제는 CCTV, 스마트폰, SNS가 감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한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말실수는 억압된 무의식 즉, 표출되어서는 안 될 억눌린 생각이 무의식 중에 드러나는 말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냥 무심코 한말도 그 사람의 생각을 표현한 것으로 프로이트의 말실수(Freudian slip)라는 것이다.

이러한 말은 순간적 실수가 아니다. 자만과 과시욕 때문이며 특히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적대시하는 마음이 드러난 것이고 조급하게 표현한데서 비롯된다. 말이 많아 실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를 좋게 하거나 그저 농담이라고 하면서 툭 던지는 말이 여러 사람을 웃게 하지만 한편 특정인을 우습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프로이트의 말실수가 아니라 해도 말실수는 말하는 사람이 단어의 뜻을 모르거나 부적절한 상황에서 하는 ‘무지의 결과’일 뿐이다. 자신의 그릇된 말을 남이 이해해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말실수가 일파 만파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생각해보면 상대를 배려하는 말 한마디야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첫걸음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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