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금융신문=임유 편집위원> 공공밴(VAN), 정확히는 ‘영세한 중소신용카드가맹점을 대상으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부가통신업자’가 법적(여신전문금융업법 제25조의5) 명칭이다. 너무 길기도 하거니와 제도가 도입된 배경과 요구되는 역할을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한 듯싶다. ‘공공밴’이라 이름 붙인 이유다.

밴(VAN)은 신용카드회사를 대신해 신용카드가맹점을 모으고 신용카드 결제와 관련한 전기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냥’ 회사다. 따라서 영리가 목적인 ‘밴’에게 ‘공공’이라는 명예(?)를 부여하려면 뭔가 남달라야 한다. 우선 ‘공공’이라는 이름에 맞게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경제적 약자’여야 한다. 가맹점 규모가 영세하고 중소여야 한다는 말이다.

법은 영세의 기준을 연 2억원으로, 중소를 3억원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연 3억원 이하를 파는 가맹점만이 공공밴의 대상이다. 밴 서비스를 제공하고 받는 수수료도 중요한 요소다. ‘일반밴’ 보다는 단 몇 푼이라도 싸야 ‘공공’ 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밴 수수료 체계가 발목을 잡는다.

신용카드회사가 가맹점으로부터 신용카드수수료를 받아 이중 일부를 밴에게 나눠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공밴이 밴 수수료를 낮게(싸게) 받는다고 해도 신용카드회사가 이를 가맹점에게 돌려주지(수수료 인하) 않는 한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공공밴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세한 중소가맹점’을 공공밴에 가입하게 할 유인책을 제공하는 것은 따라서 공공밴의 성공을 위한 핵심 요체라 하겠다.

밴이 금융 감독의 영역에 들어 온 지는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관련법에 따라 신고만 하면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인데, 대형(카드 거래가 빈번해 수익성이 좋은) 신용카드가맹점 유치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관행적으로 유지돼 온 이른바 ‘리베이트’가 영세한 중소신용카드가맹점들로부터 거둬들인 과도한 수수료를 재원으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법적 규제 요구가 커져 금융감독원에 등록하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 해 국회를 통과했던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목표로 시작된 경쟁의 재원이 약자에 대한 ‘차별’에서 염출됐다는 점에서 밴의 제도권 편입은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리베이트가 근절되면 밴의 영업비용은 줄어든다. 실제 불법 리베이트에 대한 감독이 강화된 지난 한 해 밴이 막대한 수익을 냈다는 소식은 따라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실 신용카드회사가 밴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줄인다면 밴이 이처럼 막대한 이익을 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밴 수수료를 낮춰야 할 텐데 신용카드회사들은 이러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밴 수수료를 줄이면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신용카드수수료를 줄이라는 압력이 거세질 것이기에 이를 두려워했을 것이라 분석한다. 그러나 결국 신용카드수수료는 인하됐다. 비용(원가)이 줄면 수수료도 낮춰야 한다는 ‘상식적’ 요구에 아무도 토를 달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세가맹점은 0.8%, 중소가맹점은 1.3%로 그 전에 비해 거의 40%가 줄었다.

이론적으로는 신용카드가맹점으로부터 수수료를 덜 받고 밴에게 덜 주면 되니 신용카드회사는 ‘본전’이어야 맞다. 그런데 신용카드회사들은 수익이 악화됐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밴 영업의 기간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대리점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밴 수수료를 줄이지 못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대형 가맹점을 고객으로 둔 대형 대리점들이나 혜택을 보는 것이지 리베이트와는 거리가 먼 중소형 대리점들은 신용카드회사들이 수수료를 줄이면 바로 죽음이라는 주장 앞에 속수무책이었다는 후문이다. 밴을 앞세워 대형 가맹점 영업에 나섰던 사실상 리베이트 관행의 주범이랄 수 있는 신용카드회사들은 이제 할 말이 없게 됐다. 스스로 무덤을 팠기 때문이다.

공공밴은 신용카드회사들로부터 일반밴 보다 낮은 밴 수수료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IC카드단말기 무상 보급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3개 사업자가 이미 수수료를 낮춰 받고 있어 새로 지정될 공공밴 역시 이 체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거래 한 건에 대해 통상 120원 남짓 받았던 기존 밴 수수료와 달리 이들 사업자들은 40~50원 정도만을 받는다고 하니 이러고도 생존이 가능한 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그러나 밴 수수료를 120원을 받든 40원을 받든 영세중소가맹점이 부담해야 할 신용카드수수료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신용카드회사가 가맹점에게서 거둬들이는 신용카드수수료를 줄여주지 않는다면) 공공밴이 밴 수수료를 적게 받는다고 해서 가맹점이 공공밴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격이 동일하다면 서비스가 좋을 것 같은 대형 밴과 계약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용카드수수료 인하 없이는 공공밴의 성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신용카드회사의 대승적 결단을 요구하는 이유다. 인하 여력이 없는 상황임을 십분 이해하지만 공적 역할도 수행해야 하는 금융기관으로서 영세중소가맹점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은 길게 봐서 득이라 믿는다.

아울러 공공밴은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데 진력해야 한다. 서비스의 차별화야말로 공공밴 성공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세중소가맹점을 하나로 묶는 인터넷포탈을 마련하거나 매출 제고를 위한 교육과 컨설팅을 제공하는 방안 등이 차별화의 내용임은 물론이다. 정부의 지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공공밴 설립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이 이달 말이면 효력을 발한다고 하니 아무쪼록 공정한 잣대와 절차를 통해 당초 입법 취지에 맞는 ‘비영리’ 법인이 공공밴으로 선정돼 영세중소가맹점의 지위 향상과 바람직한 신용카드 문화 정착을 선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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