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서 빚던 술 하사받아 빚은 무형문화재
술 거르는 과정 현대화시켜 백일주 맛 높여

▲ 충남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공주의 계룡백일주 공장 전경.
<대한금융신문=김승호 편집위원> 우리 민족에게 100일은 완성을 뜻한다. 숫자 100이 갖는 의미가 완전함이자 극에 달함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궁극의 숫자 100은 우리 민족의 문화는 물론 생활 곳곳에서 사용된다.

신화 속 웅녀가 곰에서 인간으로 환생한 날짜가 마늘을 먹은 지 100일째였으며, 배냇저고리 입힌 갓난아기가 금줄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100일이며, 정성을 다해 기원하는 기도도 100일을 채워야 했다.

이러한 생각은 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전통주 중 정성껏 담은 술은 100일을 채워 발효 숙성을 시킨다. 통상 1~2주면 거를 수 있는 술이지만, 저온에서 오랜 기간 숙성시키면 맛과 향이 더 깊어진다. 그 이유는 숙성기간 동안 물과 알코올이 더 치밀하게 결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의 대표 술인 삼해주와 한산 소곡주, 경주교동법주, 면천두견주 등도 모두 100일 동안의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공주의 계룡백일주도 이름에서 말하고 있듯이 최고의 맛과 향을 위해 100일간 발효 숙성시킨 술이다. 특히 이 술은 궁중에서 빚어 각종 제례에 사용되다가 반가의 가양주가 된 술이기도 하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내는 반정의 1등 공신이었던 이귀를 치하하기 위해 인조가 궁중에서 빚는 술의 주방문을 하사한 것이 연안 이씨 가양주의 출발점이 됐다.

계룡백일주의 특징은 우리 땅에서 나는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이다. 우선 멥쌀로 죽을 써 밑술을 하고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을 빚는다. 덧술을 할 때는 솔잎과 진달래, 국화꽃, 오미자를 넣는다. 이것들은 우리 땅 지천에 널려 있는 식재료들이다.

▲ 우리 땅에서 가장 흔하게 찾을 수 있는 재료인 멥쌀과 찹쌀, 진달래, 솔잎, 오미자 등으로 빚은 계룡백일주의 청주(주세법상 약주)와 소주 제품들.
현재 이 술을 빚고 있는 사람은 이귀의 15대 후손인 이성우씨. 그의 어머니인 지복남(1926~2008) 씨로 전승되어, 지난 1989년 충남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이후 그가 이어받아 빚고 있는 중이다.

특히 그는 가양주 수준에 머물지 않고 백일주를 술의 풍미와 깊이를 다르게 하기 위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술을 빚고 있다. 맑은 청주(주세법 상 약주)를 빚는 과정은 통상의 술과 유사하지만, 마무리는 매우 꼼꼼하다. 창호지로 걸러 이물감을 최대한 배제시켰던 그의 술은 최근에는 15~20도 정도의 저온에서 두 달 반가량 숙성시킨 뒤 5~6도의 저온 숙성조에서 5~10일 가량 저장시키는 동안 가라앉은 앙금이 자동으로 냉각돼 술이 더 맑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두 차례의 여과과정을 거친 계룡백일주는 맑은 황색을 띤다.

이처럼 현대적인 여과과정을 거친 술은 담백하다. 보통의 우리 청주는 단맛이 강조되었다면 계룡백일주는 신맛과 단맛, 그리고 쓴맛이 같이 입에서 춤을 춘다.

또한 우리 술의 단점인 유통기간을 늘리기 위해 살균한 청주의 경우 5도에서 2차 여과를 시킨 술을 62도에서 살균처리 해 2~3년을 버틸 수 있는 술로 만들었다. 이와 함께 계룡백일주에선 백일주를 증류한 40도의 소주를 내고 있는데, 이 술 또한 술의 맛과 향을 모두 잡기 위해 감압식과 상압식을 결합한 증류기를 사용하고 있다. 상압식은 700년 동안 사용된 증류방법으로 1기압 상태에서 술덧을 증류해 소주를 내리는 방법으로 술의 향을 제대로 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자칫 탄내가 나는 단점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압식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현대에 들어 개발된 방법이 감압식인데, 압력을 낮춰 증류시켜 탄내를 차단시키면서 소주의 달보드레한 맛을 감미료 없이 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사장은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난 1996년부터 이 방법으로 백일주 소주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이 소주의 맛은 목 넘김이 부드러우면서도 40도의 묵직한 알코올감, 그리고 단맛으로 마무리된다.

저작권자 © 대한금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